이대로라면 한국의 수제 맥주 산업은 벼랑 끝으로 떨어집니다. 떨어지면 힘들게 꽃 피운 다양한 맥주 문화도 사라지고 우리는 또 외국 평론가로부터 또 맛없는 한국 맥주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1호 여성 브루마스터이자 한국주류안전협회 김정하 이사의 발언이다. 김정하 씨는 2003년부터 수제 맥주 바네하임을 제조, 해당 산업의1세대를 이끌어 왔다.
바네하임 김정하 대표
수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수제 맥주는 트렌드를 이끌었다. 이태원, 경리단길 등을 중심으로 제공된 수제 맥주는 기존의 획일화된 한국 맥주 맛을 깨트리며 밀레니얼 세대들의 아이콘이 되었었다. 이렇게 꽃을 피게 된 이유는 기존에 식당 내에서만 소비만 할 수 있던 하우스 맥주가 2014년도부터 외부 유통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고객이 매장의 손님에서 전국구로 바뀌게 된 것이었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식품의학품안천처에 등록된 곳은 150여 곳이 넘었고, 제조되는 맥주의 종류는 1000종류 이상으로 추정될 만큼 기존에 없던 맥주의 다양함 속에 크래프트 맥주는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그런데 이러한 수제맥주가 왜 힘들다는 평가를 받는 것일까?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한국의 수제 맥주
김정하 이사는 수제 맥주의 판매처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수제 맥주의 성지라고 불리는 이태원, 경리단길 등의 상권이 코로나로 인해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이태원 클럽에서의 대규모 감염자가 나오면서 이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게다가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실시하고 있는 지금, 거래처가 거래를 끊는 것이 아닌, 아예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아사 상태의 국내 크래프트 맥주 산업
현재 코로나로 인한 주류시장의 가장 큰 수혜자는 실은 동네 편의점 등 소매점이다. 요식업 매장에서 마시는 일이 없으니 수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편의점에서 구매, 집에서 홈술, 혼술 소비로 이어지는 것이다. 실례로 편의점 내 주류 매출은 맥주, 소주 등도 증가했지만 와인, 위스키 등의 성장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31일 GS25에 따르면 지난 28일부터 주말인 30일까지 GS25의 소주와 맥주 매출은 전주 동요일 대비 각각 14.1%, 6.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와인 매출은 8.3%, 안주류 매출은 11.5% 늘었다.
특히 편의점에 일본 맥주가 빠지면서 수제 맥주들이 많이 입점하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수제 맥주는 다시 부활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김정하 씨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편의점에 납품한 수제 맥주는 99%가 캔 맥주 형태. 이렇게 캔 맥주로 만들려면 수제 맥주라도 시설 규모가 상당해야 하며, 대규모 자본 투자가 이뤄진 곳이라고 설명한다. 즉, 현재 150여 곳이 넘는 수제 맥주 양조장 중에 이렇게 제대로 캔 시설을 가지고 있는 불과 4,5곳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나머지 업체들은 아예 편의점 진출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태고, 아사상태인 양조장도 많다. 사단법인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전년대비 매출이 50% 이상 빠진 곳은 물론, 90% 빠진 곳도 허다하다고 설명한다. 산업 자체가 아사상태에 빠진 것이다.
인터넷 판매가 금지된 수제 맥주
그렇다면 수제 맥주 양조장에 탈출구는 없는 것일까? 김정하 이사는 충분히 있다고 한다. 바로 성인인증을 통한 인터넷 판매를 통해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며 홈술, 혼술 문화의 확장을 이끄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수제 맥주는 인터넷 판매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 인터넷 판매를 하기 위해서는 전통주, 또는 지역 특산주로 분류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맥주는 이 영역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지역적 특성을 가진 농산물로 술을 빚어도 인터넷으로 판매할 수 없다. 맥주 자체가 전통주는 물론이고 지역 특산주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정하 이사는 현재 한국의 과실로 만든 와인, 브랜디(과실 증류주) 등도 지역 특산주 면허를 바당 인터넷 판매를 하고 있는데, 유독 맥주만 빠진 이유에 대해서는 빠른 개선의 여지가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익산 쌀을 이용한 도담도담 맥주
수입맥아보다 2.3배 비싼 국산 맥아, 인터넷 판매 허용된다면 사용하고 싶어
수제 맥주 양조장은 국산 원료로 맥주를 만들고 싶어 한다. 문제는 맥주의 최대 원료인 맥아 역시 국산과 수입의 가격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국산 맥아가 수입 맥아보다 2~3배 정도 가격이 높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입 맥아는 1kg당 1,000 원 내외. 하지만, 국산 맥아는 2,300원으로 가격이 높다. 미국 및 호주처럼 대규모 농업플랜트가 아닌, 농부가 한 땀 한 땀 들여서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에 맥주 양조장 입장에서는 원가 부담이 상당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김정하 이사는 만약 인터넷으로 수제 맥주를 판매하게 허용한다면, 2배가 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사용하려는 수제 맥주 양조장은 상당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사회적 가치를 담은 우리 맥아로 맥주를 만든다면, 소확행, 워라벨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알아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국산 맥아를 연구하고 있는 군산 농업기술센터 먹거리연구소 이선우 주무관은 국산 맥아로 맥주를 만들어도 수입 맥아에 전혀 손색이 없다고 말하였다.
순국산, 수입산을 구분할 수 있는 맥주 제도 만들어야
현재 맥주 제조에 있어서는 대기업은 물론 수제 맥주 양조장도 99% 수입산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은 우리 보리 산업이 가격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맥주용 맥아 제조를 포기한 것에 있다. 여기에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발표되면서 수입 농산물 수입이 자유화된 것이 크다. 그래서 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의 맥주는 대부분 국산 원료였지만, 지금은 모두 수입산으로 대체된 상황이다. 독자적인 국산 맥아 개발을 다시 시작한 것은 불과 2,3년 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 농산물로 만든 맥주는 인터넷으로 판매할 수 있게 해야
이러한 국산 맥아를 다시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수제 맥주 양조장들이 사용해 주는 것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상품이 나와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소비자들과 세심하게 소통할 수 있는 인터넷 판매 창구를 열어줘야 한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소맥 시장에서는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고 소비하는 문화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우리 소비자가 국산 맥아로 만든 맥주를 쉽게 찾고 구입할 수 있는 시장의 제도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먼저 만들어야 하고, 접근성 좋은 인터넷 판매가 시급한 일이다. 100년 가까이 독과점 상태였던 한국 맥주 산업에 이제 막 꽃피는 수제 맥주의 다양성을 잃어버릴 수는 없다. 그리고 그 모든 근본 원료는 우리나라 농산물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국산 원료 100% 의 맥주가 인터넷에 판매된다면 이렇게 바뀌는 것도 결코 꿈에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