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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Dec 03. 2020

백년전쟁 제2부 부르고뉴 와인과 잔다르크

술들의 전쟁 영프의 백년전쟁

KBS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야에서 소개한 영프의 백년전쟁 두번째 이야기 잔다르크와 부르고뉴와의 악연(?)을 소개 해봤습니다. 이야기형식으로 진행되나보니 디테일이 좀 부족할 수 있는데, 가볍게 읽어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계사를 바꾼 술 시리즈 백년전쟁 제2부,  잔다르크와 부르고뉴 와인 이야기

리다오 김성완 사회자)지난주에 우리가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국의 왕실에서 주로 프랑스어를 사용했고, 그 언어가 남은 것들이 돼지는 피그라고 하면서 돼지고기는 포크라고 하고, 소는 카우라고 하면서 소고기를 비프라고 한다는 이러한 부분이 당시의 시대상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죠? 무엇보다 영프의 백년전쟁이 일어난 계기가 바로 보르도 와인 산지를 놓고 벌린 싸움이란 이야기도요.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일까요?

오늘은 100년 전쟁 제2부로, 바로 프랑스 2대 와인 산지인 부르고뉴 이야기를 한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르고뉴 와인 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이 있는 곳 아닙니까?

맞습니다. 로마네 꽁띠라는 가장 비싼 와인이 있는 곳이지요. 늘 가볍게 수천만 원은 호가하는 와인이죠.


부르고뉴 지역의 로마네 꽁띠 와인. 가볍게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왜 이렇게 와인이 비싼 겁니까?

일단 프랑스 와인의 대표 산지 보르도는 수출 위주, 영국 중심으로 진행을 했죠. 그러다 보니까 규격화가 되고, 수량이 많고 하다 보니 이쪽은 대기업화가 된 것이에요. 거대한 성이 있고, 기계화된 공장에 등등인데 이 부르고뉴 쪽은 포도밭이 작고 쪼개져있어요(개인들이 작은 밭을 소유). 그래서 큰 밭을 잘 운영하지 않아 '수제'라는 성격이 더욱 강해집니다. 그리고 이곳은 포도 품종을 제한합니다. 


레드 와인은 '피노누아'라고 화이트 와인은 '샤르도네'. 이것으로만 만들어요. 즉, 제한이 많죠. 작은데 만들지 않고 수량에 제한이 있으니 가격이 높아지면 천정부지로 높아지는 부분도 있지요. 물론 맛과 향도 훌륭합니다. 


부르고뉴의 밭은 왜 이렇게 쪼개져있는 것이죠?

약 150년 전에 포도 병충해가 프랑스를 뒤덮는데, 이때 땅을 가지고 있던 지주들이 모두 도망을 간 거예요. 왜 이 포도 병충해가 수십 년을 갔거든요. 그런데 국가가 땅을 거두어들였는데, 끝까지 남은 사람들이 와인 제조자들. 그래서 이 와인 제조자들에게 땅을 조금씩 나눠줬는데, 그래서 부르고뉴가 작은 땅에 많은 와이너리들이 생기게 된 계기죠. 


그런데 이 부르고뉴 와인 산지가 백년전쟁 때는 어떠한 역할을 했나요?

네. 바로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살린 성녀가 바로 잔다르크 아닙니까?

이 잔다르크 가족을 죽이고, 잔다르크를 잡고, 잔다르크를 화형 시킨 장본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이 땅을 가지고 있었던 나라가 부르고뉴 공국이었기 때문이죠. 

영화 잔다르크 샤또 딸보의 딸보 장군도 등장한다. 잔다르크의 일생을  살짝의 판타지의 느낌을 담아 사실감 있게 잘 다뤘다. 


부르고뉴는 프랑스 땅인데 왜 잔다르크를 잡고 처형하고 했던 것이죠?

당시에 프랑스는 지금과 같은 중앙집권 국가가 아니었죠. 봉건국가라고 해서 왕은 영주의 위에 있는 존재이긴 했는데, 실권이 그만큼 적었어요. 그래서, 이 부르고뉴는 프랑스를 배신하고 영국 편에 섭니다. 그래서, 영국군과 함께 동레미라는 지역에서 잔다르크 가족들을 죽이고, 사로잡은 다음에 영국에 팔아넘기고 또 거기서 재판을 하는데, 그 재판에서도 잔다르크는 화형을 당하게 하죠. 


즉, 아직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지금의 프랑스 국민은 '스스로 프랑스인'이다 이러한 것이 없는 것이었죠. 원래는 게르만인이 세운 부르쿤트라는 나라에서 시작을 하거든요. 


그렇다면 부르고뉴 지역은 이렇게 와인으로 유명해진 것입니까?

우리가 유럽 역사를 보면 중세 유럽은 대부분 수도원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모든 엘리트들이 모여서 공부하고 연구하는 마치 대학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그리고 당시에 전쟁이 많다 보니 영주나 왕 들이 전쟁에서 전리품으로 이 수도원에게 많이 바치죠. 그래서 상당히 타락해 갔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르고뉴란 곳은 좀 달랐어요.


일하면서 기도하라라는 철저히 금욕주의적 생활(베네딕토의 시토회)을 많이 했었고, 그러다 보니 이 와인 제조에 매진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상당히 인정을 받은 부분이 있었던 것이죠.


보졸레 누보 와인 들. 부르고뉴 지역에 있지만 피노누아라는 부르고뉴 품종으로 재배하지 못해 부르고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한다. 


최근에 나온 왜 햇와인 보졸레 누보라고 있지 않습니까? 이 와인은 뭡니까?

이 와인은 프랑스 보졸레 지역에서 나온 와인인데 이제 막 발효시켜서 3개월 정도 숙성해서 내놓은 신선함을 추구한 와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원래 여기도 부르고뉴라는 지역이었어요.


그런데 부르고뉴는 '피노누아'라는 품종을 고집했는데 여기서는 그것을 기르지 못해서

가메라는 다른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다 보니, 부르고뉴란 지역에서 한마디로 잘린 것이죠. 

너희는 부르고뉴라는 이름 쓰지 말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누보 - 뉴라는 뜻을 가지고 보졸레 지역의 새로운 술, 보졸레 뉴보란 이름으로 마케팅을 새롭게 하고 홍보를 한 것이죠. 즉, 부르고뉴에서 토사구팽(?)을 좀 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ㅎㅎ


부르고뉴는 계속 영국 편을 듭니까? 

아닙니다. 또 영국을 배신을 합니다. ㅎㅎ 그리고 다시 프랑스 편에서 싸우고요,

영원한 편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결론적으로 줄을 잘 섰다고 할 수 있을 수 있네요. 


프랑스를 구해줬는데 결국 화형을 당한 잔다르크가 좀 짠해요. 

그렇죠. 실은 이용을 당한 부분이 크니까요. 잔다르크가 위대하게 한 일 중 하나가 바로 당시에 도팽이라 불리던, 우리나라 말로 이야기하면 왕세자죠. 후에 샤를 7세가 되는 인물입니다. 

문제는 왕이 아닌 왕세자였다는 것. 당시에 파리도 영국에게 빼았기다 보니까 즉위식을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디를 영국에게 되찾냐면 프랑스 북부의 랭스란 지역을 빼았습니다.  이 랭스가 뭐냐면 랭스 대성당이 있는 곳으로 프랑스 역대 왕이 모두 즉위식을 

올렸던 곳이에요. 그리고 이것이 어디냐면 바로 샹퍄뉴에 있죠. 이 지역의 영문명이 바로 샴페인. 


그래서 샴페인이 축제의 술이 된 이유는 바로 이렇게 프랑스 왕의 대관식이 열린

랭스 대성당이 있기 때문인 것이죠. 노트르담 대성당도 바로 이 랭스에 있습니다. 


프랑스는 부르고뉴 군에게 잡힌 잔다르크를 구출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프랑스가 나중에 부르고뉴 군에게 잡힌 잔다르크를 데려오지를 않아요.

돈만 주면 데려올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안 데려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이렇게 지위가 높은 귀족이나 왕은 잘 죽이지 않았습니다. 비싼 값에 팔 수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프랑스 왕실은 잔다르크를 내버려둡니다. 왜 왕위가 위험해질까 봐. 너무 인기가 많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결국은 화형을 당하게 되죠. 


약간 임진왜란 시절의 이순신 장군하고 좀 비슷해요. 역사를 보면 그렇게 선조가 이순신 장군을 질투하잖아요. 그런 것과 마찬가지죠. 성녀로 취급받게 된 것도 실은 제1차 세계대전 전후입니다. 왜냐면 애국심을 고취시킬 필요가 있어서였죠. 


백년전쟁은 부르고뉴, 샴페인, 보르도 등등 정말로 술 산지들의 전쟁이었네요.

맞습니다. 시초가 된 노르망디 공국이라고 있죠. 1066년도에 영국을 정복한 프랑스의 신하 국가. 그런데 여기가 유명한 술이 있습니다.  바로 시드르(cidre)라고 불리는 사과 발효주죠. 이것이 영국에 가서 무슨 술이 되었느냐 바로 사이더(cider) 일본에 와서 사이다가 된 것이죠. 그래서 원래 사이더는 사과 발효주를 뜻하는 술이었죠.


왜 노르망디 지역에서는 와인을 안 만들고 사과술 사이더을 만드나요?

간단합니다. 춥습니다 ㅎㅎ 포도는 건조하고 따뜻해야 하는데, 여기는 그렇지 못하죠. 

비도 많고, 날씨도 춥고 하니까 한랭성 기후에도 잘 자라는 사과를 심은 것이죠.

그래서 남유럽에서 많이 발달한 술이 와인이죠. 위로 올라가면 사과술, 북유럽으로 올라가면

비교적 추위와 상관없이 얻을 수 있는 당인 벌꿀 술이 유행하게 됩니다. 


결국 백년전쟁은 어떻게 되죠? 프랑스가 이기죠? 

네 ㅎㅎ 이깁니다. 그런데 마지막 전통 장소가 어디였냐면 또 와인 주산지인 보르도였습니다. 보르도 때문에 이 100년 전쟁이 일어났다면 백년전쟁의 마지막도 이 보르도였던 것이었어요. 

이 보르도를 지키고자 당시 영국 최고의 장군인 탤버트 장군이 들어와서 싸웠는데 전사를 하게 됩니다. 

샤또 딸보. 백년 전쟁 당시 최고의 장군으로 뽑히는 영국의 텔버트 장군의 이름을 담았다. 히딩크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면서 이 탤버트 장군이 죽은 보르도에 와인이 생깁니다. 바로 히딩크 와인이라고 불리는 샤또 딸보 와인. 굉장히 유명한 와인이죠. 적군의 이름도 와인의 이름으로 만드는 프랑스 와인 문화가 전 나름 매력적으로 느껴졌고요. 


백년전쟁 이후 각 나라의 운명은 어떻게 됩니까?

일단 영국에서 더 이상 프랑스어를 쓰지 않습니다. 그 전에는 왕실에서는 프랑스어였죠. 

하지만 백년전쟁 전후로 프랑스어를 금지를 시키고요. 즉 우리는 영국인이다!라는 민족주의가 고취돼요.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영국 땅이던 보르도 지역, 영국 편을 들었던 부르고뉴 둘 다 프랑스에 편입되면서 이제부터 와인 대국의 역사가 제대로 시작되는 것이죠. 


즉, 프랑스를 와인 대국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영국이었다. 아니러니 하게도.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양국의 기사 및 귀족들이 많이 죽자 왕권이 강화되고 영국은 내전의 길로 가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헨리 8세, 엘리자베스 여왕 등이 출연하면서 절대 왕조의 길을 걷게 되죠.


백년전쟁이 전쟁 당시에도 백년전쟁으로 불렸나요?

아닙니다. 19세기에나 등장한 용어예요. 그전에는 그냥 계속 휴전했다가 싸우고 했으니

어떻게 보면 전쟁은 그냥 일상생활이기도 했던 것이죠. 


부르고뉴 와인인데 브루고뉴라고 나왔네요~ 수정 요청하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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