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욱 Jan 05. 2021

숙취의 전설, 나폴레온과 캪틴큐

80~90년대를 대표하는 두 종류의 양주가 있다. 바로 캪틴큐와 나폴레온. 얼마 전 tvN의 '언제까지 어깨 춤을 추게 할 거야'에서도 등장해서 추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한 술. 하지만 2015년과 2018년 전후로 사라져 버린 추억의 술이기도 하다. 두 술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대중 양주라고 불렸던 점. 양주라고 부르지만 실은 소량의 원액에 소주에 넣는 주정, 그리고 인공향과 색소를 넣어 만든 술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무늬만 양주였던 셈.


그래서 숙취가 정말 심하다고 알려진 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대로 한병 들고 있으면 꽤나 멋을 부릴 수 있던 그런 술이기도 했고, 80년 대 위스키가 대중적이지 않았던 시절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 술들에 대한 숙취의 전설이 시작되기도 한다.


나폴레온. 사진 출처 blog.naver.com/skjin1004/20057911858



기억의 삭제 범위가 넓어진 술  

특히 캪틴큐는 수많은 패러디가 달리게 된다. 대표적으로는 마시고 난 다음날 숙취가 없다는 것, 이유는 다다음날에 일어나니까. 덕분에 미래를 갈 수 있다는 스토리는 애주가 사이에서 회자된 내용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마시면 26일에 일어나야 했고, 마시면 아스팔트를 벅벅 기어야 했으며, 군대에서 고참 것 몰래 마시다가 걸리면 얼차려를 받았고, 무엇보다 솔로일 때 늘 외로움을 달래줬던 술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회상을 한다. 


당시 TV 광고를 가지고도 패러디가 많았다. 이 제품을 만들었던 곳은 당시 L주류. 당시 광고 코멘트 중 하나가  "L사가 드리는 또 다른 양주의 세계"란 부분이었는데, 이것이 "L사가 드리는 또 다른 가짜 양주의 세계"로, "양주의 선택범위가 넓어졌습니다. " 는 "기억의 삭제 범위가 넓어졌습니다."로 대신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만 봐도 당시 얼마나 많은 인기가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오죽했으면 80, 90년대 최고를 지칭하는 용어가 '따봉'하고 '캪'이었을 정도니 말이다.  

나폴레온 광고. 당시 해태주조가 생산했다.


나폴레온과 캡틴큐의 차이는?

그렇다면 이 두 술의 차이는 뭐였을까? 실은 제품명만으로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나폴레온은 말 그대로 프랑스의 술을 추구했기 때문. 바로 대표적인 프랑스 증류주인 코냑이다. 코냑은 보르도 북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와인을 증류해서 주로 영국으로 수출을 했다. 코냑을 보면 숙성 연도에 따라 등급이 나눠진다. 제품명이 나폴레옹이 아닌 나폴레온인 이유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바로 나폴레옹이 코냑의 등급을 나타내기 때문이라는 것. 2년 이상 숙성한 등급 표기는 V.O(Very Old), 4년 이상은  V.S.O.P(Very Special Old Pale), 6년 이상은 나폴레옹, 동급 또는 그 윗급으로 X.O(Exta Old), X.X.O(Extra Extra Old)로 표기한다.  즉, 나폴레옹이라고 표기하면 코냑의 등급이 6년 이상인 최상급으로 가기 때문에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표기법은 제조사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XXO 등급의 헤네시


또 하나는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 대 까지 나폴레옹에 대한 표기를 나폴레옹이라고 하지 않고, 나폴레온이라고 표기했던 것. 즉 프랑스 황제였던 나폴레옹(Napoléon)의 한글 표기는 나폴레온이었던 것이다. 나폴레온이었던 이유는 바로 일본식 발음이 나폴레온(ナポレオン)이었던 것. 그래서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90년 대 초반까지 나폴레온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알코올 도수는 35도였고, 의외로 단 맛이 많아 당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는 기사가 보이며 주로 당시 화이트 칼라라고 불리는 직장인들의 고급 회식 시장을 노린 제품으로 나오게 된다.

캡틴 큐 광고. 당시 롯데주조가 생산했다.
캠핑과 MT에 등장한 캡틴큐

1980년 1월에 출시한 캪틴큐는 말 그대로 바다의 선장이다. 대항해 시대에 영국 해군의 술이기도 했던 술, 그리고 카리브해 해적들이 늘 들고 다니던 술 럼주다. 사탕수수 또는 사탕수수로 설탕을 만들고 남은 당밀을 발효, 이후 증류해서 만드는 술이다. 물론 정통 럼주는 절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색소와 향료가 그 역할을 했을 뿐. 알코올 도수는 35도였다. 이후 광고에는 콜라에 타 마시라는 럼 콜라도 등장한다. 나폴레온과 달리 남성성을 강조한 느낌의 술. 그래서 주로 자연 속 모습을 그리며 캠핑 및 MT에 자주 등장하는 술이 된다. 물론 80년대 MT 때 몰래 가져가면 최고의 아이템인 것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이미지가 고급이다 보니 호송 도중 탈출한 탈주범들이 가정집에 들어가 캪틴큐를 마신 사건도 있었다. 1988년,  탈주한 미결수 10명은 안암동의 주택가에 들어가 28시간 숨어있는 동안 마주앙과 캪틴큐를 마셨다는 것이다. 물론 다시 붙잡힌 것은 시간문제.


라이벌 관계인 나폴레온과 캡틴큐

흥미로운 것은 이 둘의 라이벌 관계에 있어서 신경전이 꽤나 있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폴레온은 약 17.9%(초기에는 20%)의 코냑 원액이 들어갔던 것. 하지만 캪틴큐는 90년 대부터 럼 원액은 아예 싹 빠져버린다. 즉 소주 주정에 색소와 향료, 그리고 감미료로 철저한 맛을 낸 것이었다. 한마디로 둘 다 유사 양주였지만, 그래도 나폴레온이 코냑의 정체성은 가져갔던 것이다. 나폴레온 입장에서는 같은 급으로 취급하지 말라는 것.


이 두 술이 사라지게 된 것은 가짜 양주로 많이 이용당했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래서 캡틴큐는 2015년 사라지게 되고, 나폴레온도 2018년도 이후로는 거의 생산을 하지 않는다.


막상 만나기 어렵다니 그래도 다시 보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떠난 후에야 그리워하는 모습. 사람이나 술이나 다 매한가지인가 보다.


PS: 귀한 나폴레온 사진 협조해 주신 네이버 블로거 '한잔의 여유'님에게 감사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백년전쟁 제2부 부르고뉴 와인과 잔다르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