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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Feb 17. 2021

술 때문에 농사를 지은 인류?

술과 농업의 탄생에 대해

술의 주원료는 뭘까? 모두가 알다시피 농산물이다. 막걸리는 쌀을 중심으로 만들고, 맥주는 보리, 와인은 포도로 만든다. 전통적인 소주 역시, 쌀, 밀, 찹쌀 등으로 발효주를 만들고, 그것을 증류해 만들었다. 즉 농업 없이는 술을 생각할 수 없는 상황. 그래서 아무리 오래된 양조장의 유적이라고 할지라도 농업이 탄생한 이후에 등장한 것이 대부분이다.


BBC 관련기사

술은 이미 있었다. 농업 이전에


그런데, 이러한 것을 뒤집을 만한 발견이 하나 일어난다. 바로 농업이 시작하기도 전에 술을 빚었다는 것이다.

농업의 시작은 인류의 역사를 구석기와 신석기로 나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수렵 및 채집 시절의 구석기시대에서 농경으로 바뀌는 이 시기에 인간은 경작을 위해 보다 날카로운 석기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저장해 놓은 곡물은 이내 사유재산으로 변모, 계층 간의 갈등, 나아가 신분제의 확립으로 이어졌다.


당연히 농업을 시작한 후에 그곳에서 생산되는 밀, 쌀, 보리, 포도 등으로 술을 빚었고, 그것을 통해 인간은 영위했다는 것이 당연한 정설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하이퍼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의 고고학자들이 약 1만 3700년 전에 있었던 맥주 양조장(brewery) 유적을 이스라엘에서 발굴한다. 그리고 이 발굴은 기존에 기정 사실화되던 이야기에 또 다른 국면을 맞이 하게 한다. 바로 농업 이전에 술 빚기가 있다는 것이다.


유적이 발견된 곳은 이스라엘 북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카멜산 라케페트 동굴. 여기서 3개의 돌절구를 발견했는데, 이것이 바로 맥주를 양조하기 위해 사용된 것을 확인했다. 절구에 밀, 보리, 귀리, 콩 등의 흔적이 있었다. 탐사팀은 "이 절구들이 구석기 말기, 또는 신석기 초반의 중석기 시대 이스라엘, 시리아 등 지중해 연안과 요르단 계곡 등에서 반유목민으로 수렵, 어로 생활을 하며 신석기 나투피언(Natufian) 들에 의해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벽화 중 일부. 라스코 동굴에는 1,500 여개의 동물 그림이 있다. 높은 천장에 그려진 부분부터 주술적인 목적도 있다고 보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문제는 이 기간이 아직 본격적인 신석기시대로 넘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석기시대는 대략 기원전 1만 년 전부터 9000년 정도로 본다. 이 시기에 경작했던 농업의 유적 등이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 발견된 가장 오래된 양조장 유적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0~8000년 전의 이집트 또는 수메르의 유적. 기원전 8000년 전은 신석기시대가 시작한 무렵이지만, 1만 3천 년 전은 아직은 구석기가 이어지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종교와 예술, 그리고 술이 먼저

그렇다면, 어떻게 농업이 있기도 전에 어떻게 곡물을 획득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자연 상태의 곡물을 수확했던 것. 그리고, 그것을 저장하면서 술을 빚었던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 농업이 시작 전 인간이 가졌던 두 가지 영역이 있다. 바로 종교와 예술이다. 이미 신을 모시는 신전이 있었으며, 이미 인간은 그림을 그리는 등 예술적 영역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술까지 빚을 능력이 있었고, 이러한 술은 장례의식이나 축제 등 중요한 의례를 진행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였다고 추정하고 있다. 즉, 농업 이전에 있었던 신에 대한 존재와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이때부터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다 보니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Reports'에 게재된 연구논문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곡물의 재배가 촉발된 이유는 술일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은 먹고살기 위해 농업을 시작한 것이 아닌, 술을 마시기 위해 농업을 시작했다는 것. 만약 사실이라면 1만 년 전에는 낭만 있는 농업을 영위했던 것이다.


농업혁명인 인간 불행의 씨앗

참고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인류 역사에 있어서 농업혁명은 인간 불행의 씨앗이며 역사상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평한다. 농업을 통해 농산물을 지배하게 된 것이 아닌, 오히려 그 농산물에 지배를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유재산이 생기면서, 그것을 빼앗고 빼앗기는 부족 간, 국가 간 전쟁으로 확장되고, 승리한 곳은 신분 상승이, 반대로 패배한 민족은 노예가 되어 버리곤 했다. 결국 국가 간의 전쟁은 어떻게 보면 필수가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래서 농업이 시작되기 전 수렵과 채집 상태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수렵과 채집 시절부터 인간에게는 술이 있었다는 것. 어쩌면 농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술이라는 상상도 못 했던 스토리를 꿈꿔 본다.


대략적인 구석기, 신석기 구분표.


참고 : 고고학에서의 석기시대 구분을 비전공자 입장에서 살짝 놀려놓습니다.


돌과 금속의 구분

석기시대라는 시대 구분은 덴마크의 고고학자 크리스티안 위르겐센 톰센(Christian Jürgensen Thomse)에 의해 붙여졌다. 그는 인류는 돌 이외의 금속을 몰랐다는 석기시대와 철을 아직 사용하지 않은 청동기 시대, 그리고 철기시대 순으로 발달했다고 1836년 '북방 고고학의 입문(Legetraad til nordisk Oldkyndighed)'라는 저서에서 정리했다.


그리고 그 시대 구분은 스칸디나비아와 그 주변지역에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세 가지로 구분하면서 고고학의 정리가 되어가고,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모두 적용되는 것이 아닌, 청동기 지역을 경유하지 않는 지역도 존재한다.


절멸 동물과 타제석기의 구석기, 현생 동물과 마제석기의 신석기

톰슨이 정리한 일정 원리에 따라 정해진 삼시대 구분법은 이후 다른 기준에 따라 세분되어,

또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영국의 고고학자 존 라복(John Lubbock 1834 - 1913)에 의해 1865년에 신석기시대는 두 개로 구분되었다. 절멸 동물과 타제석기를 사용한 구석기시대(Palaeolithic Period), 현생 동물의 존재와 마제석기를 사용한 시대를 신석기시대(Neolithic Period) 두 개로 구분 지었다.


이러한 고전적인 시대 구분이 세계적인 채용, 적용되어, 신석기시대에 새로운 토기의 발명 및 농공과 목축의 개시에 요인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연구를 하는 것에 따라 각 지역에서는 신석기시대에 다양한 전개 및 발전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고, 모든 요인이 딱 들어 맞지 않는 지역도 나오게 되었다. 예를 들어 농업이 시작되고 있는데 토기가 나오지 않는다던지, 마제석기가 있는데 농업이 보이지 않는다던지의 고고학적 사실이 새롭게 나오게 된다.


식료 채집은 구석기, 식량생산은 신석기

여기서 영국의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Vere Gordon Childe 1892 - 1957)는 기본 요소를 '식료 채집부터 식량생산으로의 전환'이라고 하며, 농공 및 목축의 두 모습 중 하나만 있으면 신석기시대라고 했다.


여기서 타제석기와 마제석기의 과도기로 어디도 들어가지 않는 곳을 중석기 시대(Mesolithic Age)로 하자고 1909년 잭 드 모르간(Jacques de Morgan)에 의해 제창되었다. 하지만, 이후의 조사 및 연구 발전에 따라 중석기, 신석기시대의 본래의 개념은 풍화되었다.


게다가 구석기시대를 그 시기에 활약한 인종의 구분에 의해 전기 구석기시대, 중기 구석기시대, 후기 구석기시대 3 시대로 구분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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