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욱 Feb 20. 2021

빵으로 만드는 맥주가 있다고?

고대 문화에서 이어지는 빵 맥주 '크바스'

맥주의 기원을 살펴보면 늘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우연히 끓는 물에 빵을 넣었더니 맥주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빵 속의 전분을 맥아의 당화 효소가 당으로 만들고, 공기 중의 효모가 들어가 그 당을 먹고 알코올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람세스 3세의 무덤에서 나온 벽화를 이미지한 그림. 여러 가지 빵을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집트의 벽화를 보면 빵집 옆에는 늘 양조장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보리로 고체를 만들면 빵이었고, 액체를 만들면 맥주였던 것이다. 그래서 맥주를 액체 빵, 리퀴드 브레드(Liquid Bread)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현대에 있어서도 이렇게 빵으로 맥주를 만들 수 있을까? 또는 단순히 고대의 기록으로만 남아있을까?


그들은 남는 빵으로, 우리는 남는 밥으로 술을 만든다

흥미롭게도 여전히 빵으로 맥주를 만드는 곳이 있다. 이 맥주의 이름은 바로 크바스(러시아어 квас). 중앙아시아, 그리고 우크라이나, 폴란드, 러시아 등 동유럽 국가다. 우리의 막걸리 문화와 정말 비슷하다. 우리가 남는 밥을 가지고 막걸리를 만들었다면, 그들은 남는 빵을 가지고 크바스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보이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세례를 받은 989년 우라지미르 공작이 민중에게 먹을 것과 크바스를 베풀라고 한 것에서 보인다. 당시의 크바스는 지금의 맥주보다 알코올 도수가 높았고, 술 취한 사람을 의미하는 말로 '크바스인'이란 말까지 있었다고 한다. 


크바스. 사진 위키피디아


다만 크바스는 술에서 음료로 바뀌게 된다. 금주령을 피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러시아에서도 금주령의 바람이 부는데 이때 크바스는 도수를 낮추게 된다. 덕분에 이 금주령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고, 오히려 더 각광을 입으며 러시아국민보건협회는 자양강장제으로써 무려 병원식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현대의 크바스는 알코올 도수가 0.5~1.5% 정도밖에 안된다. 마치 우리의 식혜와 같은 역할이다. 


우리가 집에서 막걸리를 빚어서 마시듯, 크바스 역시 집에서 많이 만든다. 각 가정에 있는 호밀빵이 원료로, 여기에 맥아, 설탕 등도 같이 넣는다. 알코올 도수가 낮아 그대로 마시기도 하지만, 토마토, 오이, 양파 등 야채 및 햄이나 삶은 달걀을 슬라이스 해서 크바스를 넣어 수프로써 먹기도 한다. 그래서 어린아이도 많이 마신다. 구소련 시대에는 대규모 공장에서 생산되어, 크바스 자동판매기가 설치되기도 했다. 한때 콜라 등의 유입으로 소비가 준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페트병에 넣어서 판매되기도 하는 등 민족주의 열풍으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맛은 각 제조업체 및 빚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구수한 호밀빵의 맛이 나기도 하며, 살짝 짠맛이 있는 경우도 있다. 또 설탕을 넣는 경우도 있어서 너무 달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또 우리의 생막걸리처럼 생크바스도 있다. 


이러한 크바스가 우리나라로 와서 이어진 것이 바로 보리탄산음료다. 맥콜, 보리텐 등이 대표적이다. 원래는 갈색이지만, 맥아를 구워서 색을 검게 했다. 콜라처럼 보이기 위함이었다. 물론 맥콜, 보리텐 등을 빵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보리텐과 맥콜. 보리텐은 최근에 레트로 열풍으로 다시 등장했다. 출처 각사 홈페이지



우리에게도 있는 유사한 문화

제주도에도 비슷한 문화가 있다. 바로 쉰다리라는 음료다. 보리 및 좁쌀로 2일 정도 짧게 발효해서 마시는 음료로 제주도 막걸리, 또는 제주도 식혜로 불리고 있다. 또 우리 전통주에서도 발효를 빨리 해서 도수를 낮춰 마신 술들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계명주(鷄鳴酒). 황혼녙에 빚어서 닭이 울기전까지 발효시켜 마신다는 술. 그리고 일일주, 삼일주 등 즉석에서 만드는 술들이 많았다. 이러한 술들의 특징은 크바스처럼 도수가 굉장히 낮았다는 점. 또 맥주의 역사에서 빵으로 술을 빚었다면, 우리 역사에서는 떡으로 술을 빚기도 했다. 


결국, 동서양 모두 남는 밥, 떡, 빵으로 열심히 술을 빚었다. 민족과 국가로 매번 다투는 모습만 보이는 국제정세지만 알고 보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사피엔스라는 것. 


그런 의미로 혐오와 차별로 만무하는 이 시대에 인류라는 공통점을 찾아주는 의미 있는 술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크바스 만드는 영상
이전 03화 유럽이 맥주를 좋아하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