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원 대 맥주의 독일
수년 전 우연찮게 독일을 다녀오던 중, 마트에 들러 맥주 한 캔을 구입할 일이 있었다. 당시 가격은 0.29 유로. 우리 돈으로 약 390원. 맥주가 300원 대인 것이다. 독일이 이렇게 맥주가 저렴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국과 다른 점은 바로 주세가 거의 붙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맥주는 술이 아닌 생활 속의 음료로써 생각하기 때문. 반대로 우리나라는 맥주에 세금이 무려 500ml 당 417.2원이 붙는다. 우리에게 맥주는 근대 개화기, 일제 강점기를 거쳐 고급술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법은 주변 국가에도 적용되는 일이 많다. 맥주 및 와인은 술로써 생각을 잘 안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그들이 생각하는 진짜 술은 무엇일까? 바로 위스키, 코냑(브랜디), 보드카, 아쿠아 비테, 등 발효주를 증류해서 얻은 증류주가 진짜 술이라고 보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18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러한 맥주 및 와인에 알코올이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살았다. 그저 힘이 난다고만 생각했을 뿐.
생맥주. 출처 https://torange.biz/jp/beer-glass-34467
그렇다면, 왜 독일을 비롯한 유럽인은 물보다는 맥주 및 와인으로 많이 마셨을까? 모두가 아는 상식으로 유럽은 물에 석회질이 많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냥 마셔버리면 복통 및 설사는 물론 몸에 쌓여서 하지정맥류 등을 일으키곤 한다. 그래서 끓여서 마시고 정수해서 마신 것이 그들의 문화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유럽에는 석회질이 많은 것일까? 실은 이것은 지질학적 특성이다.
백악기 시절 대륙의 모습. 해수면이 높아 아프리카 북부, 유럽, 미 중서부 등도 모두 바다였다. 사진 나무위키 유럽은 바닷속에 있었다.
유럽 지역의 상당수가 쥐라기, 백악기 시대에는 아예 땅이 아닌 바닷속이었기 때문이다. 1억 년~수천만 년간 바닷속에 있다 보니 각종 생물의 부유물이 땅에 녹아든 것이다. 그래서 유럽의 강을 보면 에메랄드 빛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아름답게 보이나 석회질이 강해 식용으로는 부적절하다. 한마디로 초강력 경수가 많다.
그래서 쥐라기, 백악기 등의 명칭도 모두 유럽에서 왔다. 쥐라기는 프랑스와 스위스 사이에 있는 쥐라 산맥(Massif du Jura), 그리고 백악기는 파리 분지의 지층에서 거대하고 새하얀 석회암층을 통해 지어졌다.
백악기의 한자를 보면 흴 백(白)에 흰 흙악(堊). 즉 석회암 지층을 뜻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의미다. (백악기는 영문표기로 'Cretaceous'. 이것은 백악을 뜻하는 라틴어 크레타(Creta)에서 유래. 그리스의 크레타 섬도 같은 뜻에서 유래)
그래서 그들은 수분이 섞인 음식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밥보다는 빵이었으며, 구이, 훈제, 그리고 수분이 필요하다면 해산물에서 얻어지는 수분, 또는 아예 우유를 스튜 같은 음식을 만들었다. 반대로 우리는 화강암 지역인 만큼 물이 연수였는데, 이로써 밥, 국에 물이 많이 들어간 것은 물론, 술에도 물을 많이 넣어 만들었다.
탄산이 석회성분을 분리시킨다?
유럽에 가면 일반 생수보다 훨씬 자주 보이는 것이 바로 탄산수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렇게 탄산수를 자주 먹는 것일까? 여기 흥미로운 내용이 하나 있는데, 바로 수분 속의 탄산 성분은 석회질을 분리할 수 있다고도 하는 것이다(주 1). 탄산과 석회 성분이 만나 탄산 칼슘염이 되어 가라앉기 때문. 이러한 것은 탄산수에도 적용할 수 있어, 유럽에 탄산수가 많은 이유도 바로 이러한 부분이다.
이 말이 맞는다면 맥주에도 이와 같은 것을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즉, 맥주의 탄산은 석회질을 분리시킬 수 있다는 의미가 되고, 필터링을 거쳐 나온 맥주에는 더 이상의 석회 성분은 없다는 의미가 된다.
즉, 맥주의 물은 더 이상의 석회질이 풍부한 경수가 아닌, 연수가 된다는 의미다.
(주 1) 유럽에 흔히 있는 석회수에는 수산화칼슘이 함유되는데, 이는 복통을 유발하고 맛이 매우 텁텁하다. 하지만 탄산이 함유된 물에는 수산화칼슘이 없다. 탄산수의 주 성분인 이산화탄소(CO2)가 석회질의 주성분인 수산화칼슘(Ca(OH) 2)과 만나면 탄산칼슘(CaCO3)이 만들어지는데 이는 불용성이라 밑으로 가라앉기 때문이다. 따라서 탄산수를 먹으면 맛이 좋을뿐더러 복통도 유발하지 않다 보니 과학적인 수질 측정방법은 물론 화학적인 지식도 없었던 과거에는 경험을 통해 탄산수를 선택하는 편이 더 양호한 수질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유럽에서 탄산수를 음용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출처 나무 위키
(탄산이 석회질을 분리할 수 있다는 내용 등, 재 확인 예정입니다. 독일에서 맥주 박사학위를 취득하시고, 벤처대학원대학교의 맥주 권위자 정철 교수님은 이러한 부분은 관계가 없다는 설명도 하셨습니다.)
또 하나 맥주를 즐겨 마신 이유는 유럽의 숲속에 흐르는 강은 정령이 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영화 해리포터, 헨젤과 그레텔, 백설공주 등을 보면 숲에 사는 다양한 유령 및 요정이 있는 것만 봐도 숲과 물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최근에 밝혀진 연구에 의하면 물이 오염이 되다 보니 비교적 맥주를 많이 마셨다는 주장도 있으며, 또 기호에 따라 마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중세시대부터 유럽은 인구가 도시에 집중, 제대로 된 하수 시설이 없던 만큼, 물이 오염되는 것은 당연하였다.
독일과 체코의 필스너 원조 논쟁
비교적 마시기 물이 나오는 지역으로는 체코의 플젠(Pilsen) 지방을 들 수 있다. 바로 연수가 나오기 때문. 그러면서 1842년 발효 능력이 좋은 바이에른의 라거 효모가 도입되고, 바이에른의 순한 홉, 미네랄 함량이 낮은 연수로 빚은 필스너(Pilsner) 맥주가 탄생하게 된다. 이러한 맥주 중 체코 부드바르(Budvar) 지역에서 나온 맥주는 미국으로 가서 버드와이저(Budweiser)가 되고, 한국의 카스, 하이트, 클라우드와 같은 맥주도 결국 이 필스너 공법의 맥주가 된다. 즉, 현존하는 맥주 중 90%가 이러한 맥주 스타일로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왼쪽은 체코 부데요비츠키 부드바르(Budejovicky Budvar)에서 나오는 버드와이저. 오른쪽은 미국에서 나온 버드와이저.
버드와이저가 두 개다?
그래서 체코의 부드바르(Budvar)와 버드와이저(Budweiser)는 상표권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부드바르(Budvar)의 독일식 지명이 버드바이스(Budweis)로, 버드와이저(Budweiser)란 버드바이스(Budweis)에 접미사 'er'을 붙여 '버드바이스 맥주'라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마치 플젠(Pilsen)의 맥주가 필스너(Pilsner)라고 불리는 것과 같다.
문제는 미국에서 만든 버드와이저도 있다면, 체코에서 만드는 버드와이저도 있다는 것. 그래서 이 두 제품은 무려 100번이 넘게 법정 다툼 및 행정 조치를 통해 지역에 따라 서로의 제품명을 나누기로 한다.
체코의 부드바르 맥주(체코산 버드와이저)는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버드와이저 부드바르(Budweiser Budvar)’, 북미 지역에서는 ‘체크바르(Czechvar)’, 그 외의 국가에서는 ‘부데요비츠키 부드바르(Budejovicky Budvar)’로 부르고, 미국산 버드와이저는 체코, 폴란드, 러시아 등 동유럽에서는 ‘Budweiser’ 또는 ‘Bud’ 상표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체코 쪽이 유리한 상황으로 이끈 셈.
필스너 우르켈. 독일어로 필스너 원조라는 의미다. 독일과 원조 논쟁 중인
플젠 필스너
체코는 독일과도 계속 필스너 원조로 논쟁 중이다. 필스너도 체코의 플젠 지방의 맥주라는 의미인데 독일이 하도 많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독일은 물론 다른 유럽 지역에서도 필스너라는 상표를 붙이자 나중에는 상표가 아닌 맥주의 종류가 되어 버렸다는 것.
이에 너무 많은 필스너 맥주가 등장하자, 체코 쪽은 독일 법원에 소송을 낸다. 이에 독일 법원은 필스너가 플젠 지방의 맥주가 원조인 것은 맞으나 이미 맥주 종류로 너무 많이 쓰이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판결한다. 이에 필스너 원조는 플젠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맥주가 나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수출명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 여기서 우르켈은 독일어로 오리지널, 원조라는 의미로, 독일인에게 필스너 원조는 체코임을 알리는 나름의 경고성 메시지(?)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알고 보면 1인당 맥주 소비량 1위는 체코
이것 외에도 체코가 필스너 원조를 따지는 이유가 또 있다. 바로 전 세계 1인당 맥주 소비량 1위가 체코이기 때문이다. 체코의 1인당 연간 소비량은 약 142.3리터, 아일랜드는 114.7리터, 그리고 독일이 109.1리터로 3위다. 의외로 선전하는 나라가 오스트리아로 106.5리터다. 한국은 50리터 전후로 체코의 1/3 정도의 수준이다. 여기에 맥주를 최초로 발명했다는 전설적 왕이 감브리아스 왕인데 이것이 바로 체코의 축구 리그를 뜻한다. 우리 것에 비유하면 케이리그(K-리그)를 맥주왕 리그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참고로 감브리아스 왕은 목이 말라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그때 성서에 등장하는 듯한 천사가 나타나 맥주 만드는 법을 알려줬다고 한다. 맥주 만드는 법을 알려준 만큼, 감브리아스 왕은 기독교 외에 모든 종교를 금지하기까지 한다. 체코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로 감브리아스 맥주도 있다.
최근에 김치의 원조 논쟁으로 중국과 말이 많았다. 그런 의미로 김치를 중국에 수출할 때는 아예 중국어로 김치는 한국이 원조란 말을 붙이는 것은 또 어떻까? 맥주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중국과 김치 논쟁을 생각하니 체코 플젠 사람의 울화가 치미는 것이 이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