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을놓고 피할 수 없는 경쟁
막걸리와 사케, 세계문화유산이 되는 것은 어느 쪽?
지난주 문화재청에서는 흥미로운 발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막걸리 빚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예정이라는 것. 5월에 무형문화재 위원회가 열리고, 6월쯤 정식으로 지정할 예정으로 보인다. 이번 무형문화재 지정은 막걸리 빚기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이미 와인에서는 이 부분이 활발하다. 프랑스의 샹파뉴, 생떼밀리옹, 부르고뉴, 루아르의 일부 지역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여기에 이탈리아의 피에몬테, 헝가리의 토카이, 칠레의 발파라이소, 독일의 라인, 오스트리아의 빈 등도 와인 산지도 등재된 상황이다. 오랜 전통의 술은 유네스코가 문화유산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일본도 사케와 일본식 전통 소주를 등재시킨다는 목표
이웃나라 일본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13년 특유의 계절감을 가진 음식 문화인 화식 문화(와쇼크、和食、わしょく)를 2013년 세계 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음식문화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일본의 일식문화를 전 세계에 크게 알리면서, 사케라고 불리는 일본식 청주의 수출도 박차를 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10년 연속 성장, 2009년 72억 엔 대비, 2019년에는 무려 222억 엔을 돌파했으며, 최근 10년 사이에 무려 3배가 넘는 수출 실적을 나타냈다. 중요한 것은 최근 10년 사이에 단 한 번도 마이너스 성장이 없다는 것. 일회성 성장이 아닌 장기전략으로 전 세계에 수요를 확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일본 정부에서는 지난 1월 신성장 전략으로 아예 사케와 일본식 전통 소주인 쇼츄(焼酎)를 꼽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발표했다. 스가 요시히데(菅 義偉) 총리가 취임 후 첫 일본 정기 국회 시정 연설을 통해, 일본 고유의 술을 통해 세계적인 문화 콘텐츠 대국으로 발돋움시키겠다는 정책을 밝힌 것이다.
실례로 일본 정부는 2013년 국토교통성, 대장성, 문무과학성, 관광청, 여기에 외교부 관계자까지 모여, 사케 양조장 투어리즘이라는 양조장 투어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여기에 발맞춰 일본의 사케 및 소주 양조장은 견학 및 체험, 관광상품화를 적극 출시, 일본의 사케 소비 촉진 및 수출 도우미 역할을 진행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0년 일본의 축구영웅 나가타 히데토시는 대학교에서 사케를 알리는 교수로 임용되기도 했다. 나카타 히데토시는 이미 10년 전부터 꾸준히 해외에 사케를 알리는 역할을 홍보대사 역할을 했던 것. 이러한 것을 인정받아 도쿄 유명 사립대학인 릿쿄대학(立教大学)에서 사케와 발효, 농업론이 주요 내용인 '전통산업과 마케팅'이라는 과목을 맡게 되었다. 술이 대학교의 전공과목으로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가치 추구는 일본 국민들 스스로 사케에 대한 자부심을 높이는 사례를 만들어 주고 있다.
한국은 농식품부 찾아가는 양조장
한국은 2013년 농림축산 식품부에서 전국의 문화적, 지역적 가치가 있는 양조장을 발굴, 우리 체험, 견학 등 문화 산업으로 연결되는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을 진행, 호평을 받기도 했다. 추억이 담긴 막걸리 양조장의 문화를 살린다는 취지였다. 아쉬운 것은 일본은 모든 중앙정부가 하나가 되어 추진했다면, 한국은 농림축산 식품부만 외롭게 진행했다는 것이다. 술에 대한 인식이 국가의 격을 나타내는 문화 상품이 아닌, 그저 마시고 취하기 위한다는 보수적인 인식이 타 부서에 팽배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당연한 것이지만, 한국의 술 문화는 많이 마시고 취하는데 본질을 두지 않았다. 계절과 절기에 맞춰 술을 빚었으며, 그때마다 재료는 제철 재료로 술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문화 속에 우리들의 어머님은 이러한 술 빚기 방법을 기록으로 남긴다. 대표적인 것이 17세기 안동 장 씨가 기록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이다. 음식을 알고, 맛보는 방식이라는 이 책은 우리 국어 역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남기는데, 바로 한글로 기록한 문헌이기 때문이다. 일본 최고의 역사서 고사기에는 일본에 술 빚는 법을 전래해 준 백제인 수수코리에 대한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다.
세금의 관점에서 농업의 관점, 이제는 문화의 관점으로 확대된 막걸리
2009년까지 탁주를 비롯한 전통주의 산업 진흥은 국세청에서 이뤄졌다. 술을 세금의 입장으로만 국가에서 바라본 것이다. 이것이 농림축산식품부로 이관이 되고, 비로소 술이 농업이라는 관점에서 진행이 되었다. 이제는 국가를 대표하는 문화라는 관점으로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이번 지정으로 저렴한 서민의 술이라고만 치부하던 막걸리가 이제는 문화 상품으로 더욱 견고히 설 수 있다는 배경이 마련되었고, 가성비 중심의 산업에서 부가가치를 중시하는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집에서 막걸리 및 전통주 빚기가 더욱 성행한다면, 이제는 음식을 만드는 스타 셰프뿐만이 아닌, 맛있는 막걸리를 빚을 수 있는 스타 막걸리 장인이 등장할 수 있다. 과음과 폭음도 줄어들 것이다. 집에서 빚는 막걸리로 만취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MZ세대들이 만든 SNS 콘텐츠까지 올라간다면, 전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마련되게 되는 것이고, 해외 시장까지 발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될 것이다. 이것을 통해 막걸리의 격이 올라가고, 콘텐츠 마케팅 선순환이라는 지금 시대와 맞는 시장 흐름이 완성이 된다. 문체부의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전통예술 플랫폼 조인선 감독은 이번 지정을 통해 한국인의 전통 라이프 스타일의 정체성이 뚜렷해졌다고 평했다. 음주가무 문화에서 술만 문화재에서 빠져 있었던 것. 이것을 통해 ‘막걸리 빚기’가 공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해당 공연에 맞는 음악이 나오게 되고, 난타와 같은 세계적인 공연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여전히 수입 농산물이 원료인 막걸리
다만, 우려되는 부분은 있다. 여전히 막걸리는 가성비만을 추구하는 만큼 60~70%가 수입쌀로 만들어지고 있다. 단지 100원 가격 인상에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막걸리가 세계 무형문화유산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들 스스로가 막걸리 문화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조사 측에서는 적극적으로 우리 농산물로 원료를 바꿔야 한다. 이를 통해 이제는 막걸리가 단순히 추억의 술, 서민의 술이 아닌 이제는 가치소비로 이어지는 술이어야 하며, 그 가치는 지역 문화와 우리 농산물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것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으면, 국민들은 막걸리에 실망할 수 있으며, 유명무실한 문화재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될 것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선점도 일본에 빼앗길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