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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Mar 31. 2021

한국 술이 이뤄낸 것, 그리고 앞으로의 숙제


수치로 이뤄낸 한국 술, 정체성이 낮거나 저가로만 치부

올해 1월, 농식품부에서는 2020 해외 한식 소비자 조사를 통해 흥미로운 내용을 발표했다. 바로 외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한식이 한국의 술인 소주(14.1%)로 꼽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외국인은 한국의 소주를 싫어하는 것일까?           

정체성이 없는 한국 맥주

실제로 해외에서 소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술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현재 국내 주류 중 해외에 가장 많은 수출을 하는 품목은 맥주.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맥주는 1억 5천만 달러로 우리 돈 1600억 원 정도를 수출했으며, 소주는 약 1억 1천만 달러로 1, 200억 원, 막걸리는 1200만 달러로 130억 원 정도를 수출했다. 수치만 보면 외국인이 싫어하는 술은 소주가 아닌 맥주여야 하는 셈. 하지만, 정작 한국의 맥주는 외국에서 판매될 때 가성비 좋고 저렴하다는 이미지만 있다. 특히 맥주를 수출할 때 자사 브랜드를 지운 PB상품으로 수출을 진행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즉 '한국 맥주'라는 브랜드 인식이 지극히 적은 상황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조사에서 외국인이 생각하는 최고의 음식이 치킨이라는 것. 한국의 문화로 치맥이 있는데, 정작 치킨을 먹을 때는 한국 맥주가 후보군에서 별로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도쿄에서 활동 중인 약선요리 전문가 신카이 미야코(Shinkai Miyako) 씨는 마트에 한국산 맥주는 종종 보이는데, 한국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운 맥주는 보기 어렵다며, 한국의 국가 브랜드를 생각하면 너무도 아쉽다고 전했다. 


알고보면 소주는 개성있는 디자인에 개성있는 색이다. 물론 이것으로 획일화가 되었었지만...
한국의 대표 술이 된 소주. 이미지는 최악

하지만 소주는 일단 다르다. 병 색깔부터 초록색이고, 술잔 및 디자인 측면에서도 전 세계의 술들과 많이 다르다. 공통적 측면이 많은 맥주와 달리 개성 있는 모습이 연출이 된다. 그렇다 보니 소주는 한국의 대표 술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왜 소주는 비호감 한식 1위가 된 것일까? 


실은 이것에는 미디어의 악영향도 있었다. 바로 드라마, 영화, 뮤직 비디오 등에 등장하는 소주 모습은 모두 힘든 상황에서만 마신다. 그것도 대부분 포장마차 및 저렴한 주점 등으로 묘사된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늘 독주로 소주를 마시거나, 신세한탄, 또는 친구 및 동료와 싸움으로 번지게 되고, 이러한 모습이 외국인의 눈에는 너무 강하게 각인되었다. 즉, 한국의 소주 하면 거친 술이라는 이미지가 박힌 것이다. 문제는 한국의 술은 모두 서민적이고, 외국의 술은 모두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데 있다. 와인 및 위스키는 언제나 최고급 레스토랑 및 바에서 재벌들이 즐기는 것으로 나오고, 소주는 그 반대의 모습만 나오니 이미지가 개선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너무 술 문화를 획일적으로 모는 것은 좋지 않다. 


한국의 전통 소주는 드라마나 영화, 뮤직 비디오 등에서 전혀 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다양한 한국 소주. 늘 초록색병의 소주만 보이는 것은 좋지않다. 다양한 소주가 한류 콘텐츠에 등장해야 우리 술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다.  
와인처럼 소주를 마시는 한국의 술 문화

소주는 증류주다. 해외에서 증류주는 대부분 식후주로 마시는 경우가 많다. 식사를 하고, 건하게 술을 즐기기 위해서 마시는 술이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바로 식중주로 쓰인다. 삼겹살을 구워 먹거나 감자탕, 찌게, 등 한국 음식에 절대 빠지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의 소주 자체가 와인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알코올 도수이기 때문. 외국에서 즐기는 증류주는 대부분 40도 전후. 하지만 한국의 소주는 17도 전후로 13~14도 정도를 나타내는 와인과 알코올 도수에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한국은 이 소주를 와인 마시듯 마신다. 그래서 과음도 많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한국은 전 세계 증류주 소비 1위 국가다. 소주만큼은 세계에서 제일 많이 마시는 나라인 것이다.      


강압적인 문화의 소주 이미지

하지만 정작 소주 자체의 문화에 문제가 있다는 시각도 많다. 바로 강압적이라는 이미지다. 

잔에 따르면 무조건 다 마셔야 하고, 좀 마시다가 남기면 회사 상사나 선배들이 꺾어마신다며 한마디 하는 문화가 강했다. 심한 사람은 분위기 망친다고 질책까지 했다.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기분까지 확 상해버리는 상황이 많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런 술자리는 늘 도망 다녔다. 술이 곤욕이 되어버리는 순간이었고, 술은 나쁜 것이라고 각인되었던 젊은 날의 초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소주는 이렇게 나쁜 이미지가 고착화된 것일까?


바로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지극히 적기 때문이다. 일반 소주는 주정에 물을 넣고 감미료를 넣어 만드는데, 감미료 맛을 제외하고는 차별화되는 점이 지극히 적기 때문이다. 이렇게 적은 선택권은 맛보는 것보다 취하게 하는데 중점을 두게 한다. 돼지고기만 하더라도 제육볶음을 위해 앞다리살을 구입하고나, 구워 먹기 위해 항정살, 목살, 삼겹살 등이 있는데, 한국의 소주에는 이러한 부분이 지극히 적은 것이다. 


이유는 원료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주원료인 주정은 농산물로 만들어진다. 남미의 감자라고 불리는 타피오카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쌀, 감자, 고구마, 밀가루 등 다양한 잉여 농산물이 주원료다. 잉여농산물이 주요 원료인 만큼 나눠서 원료가 투입되지 않다 보니 맛과 향을 빼는 과정을 거친다. 모든 주정 맛이 같아야 정형화된 제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업화의 결과물인 빠르고, 싸고, 효율적으로 생산된 '무맛 소주'가 한국의 대세인 시대가 된 것이다.      



지역 농산물로 나오는 다양한 소주가 나와야 한다. 안동 맹개마을에서 만드는 순국산 밀소주 진맥소주
획일적인 이유는 소주의 세금 체계

물론 이것은 업체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세금 체계다. 현재 소주의 주세 체계는 가격에 연동되는 종가세. 가격에 세율을 곱하다 보니 주세만 원가의 72%를 내고 있다. 여기에 교육세, 부가세가 추가되면 소주 값은 반 이상은 세금이 된다. 이렇게 가격에 연동되는 주세인만큼 원재료가 싸면 쌀수록 세금을 적게 내고, 가격 경쟁력이 수월해진다.  만약 좋은 농산물로 술을 빚으면 원재료값이 상승하며, 부과되는 세금도 증가되어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저가의 소주만 시장에 유통되고, 그 결과 이렇게 저렴한 소주가 시장의 99%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소주 상황이다. 이렇게 다양성이 부족하고 농업에 기반을 두지 않다 보니 외국인이 매력 없다고 보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만약 지금의 주세 체계를 이렇게 가격에 매기는 것이 아닌, 용량에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세로 바꾼다면, 가격이 높은 것은 내려오지만, 가격이 낮은 것은 올라간다는 단점이 있다. 정부가 세금체계를 바꾸고 싶어도 이러한 부분 때문에 바꾸지 못하는 것도 있다.     


우리 술은 저렴, 와인은 고급이라는 생각도 접어야 할 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안을 내놓는다면 현재의 희석식 소주는 지금의 종가세라는 세금체계로 진행을 하되, 우리 농산물로 만드는 증류식 소주 및 전통 소주에 대해서는 용량에 맞춰 세금을 부과한다면, 우리 쌀, 밀, 보리, 감자, 고구마 등으로 만든 수많은 전통 소주가 탄생할 것이고, 이러한 것을 각각의 지역의 음식과 맞춰서 즐기는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안동소주, 문배주, 화요, 대장부 등 고급 소주들도 가격이 내려갈 수 있다.  그렇다면 미디어에서도 고급스럽게 맛을 음미하며 즐기는 우리 술 문화도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다. 

늘 와인만 고급스럽고, 우리 술은 저렴하다는 미디어의 획일적인 모습도 바꿀 수 있다. 우리 술에 대한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소주가 자체는 죄가 없다. 나쁜 것은 제도이며, 이러한 것을 통해 획일적으로 보이는 것이 문제다. 

앞으로 우리 소주가 제도개선을 통해 전 세계인에게 농업의 가치를 인정받고, 다양성으로 즐기는 모습이 돼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 소주 역시 스카치 위스키, 코냑 등 문화를 자랑하는 멋진 문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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