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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May 13. 2021

프랑스 와인이 나에게 어려운 이유

복잡하고 다난한 와인의 세계

프랑스 와인이 어려운 이유


약 15년 전에 나온 술 만화가 있다. 일본과 한국에서 와인 붐을 일으킨 기폭제 역할을 한 '신의 물방울'이었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인 아버지(칸자키 유타카)의 유언장에 적힌 미공개 상태의 12사도(12종)의 와인을 찾아가며, 이에 대한 가장 훌륭한 감상을 남긴 평론가가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는다는 내용이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인도 몰랐던 지식이 나오는 만화'로 알려지면서 본고장에서는 대단한 호평을 받는다. 물론 자신들 제품을 홍보해 주니 이리 이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너무나도 어려운 와인 이름

책은 나름 재미있게 읽었지만, 벽에 부딪힌 부분이 있었다. 바로 너무나도 길고 긴 와인 이름 때문이다. 예시로 제1사도로 등장한 '도멘 죠르쥬 루미에르 샹볼 뮈지니 프리미에 크뤼 레 자무레즈 2001(Domaine G.Roumier Chambolle Musigny 1er Cru Les Amoureuses 2001)'는 한글로 본다면 무려 7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도멘 죠르쥬 루미에르 샹볼 뮈지니 프리미에 크뤼 레 자무레즈 2001

그렇다면 하나하나 한 번 풀어보자. '도멘(Domaine)'은 영어에서도 자주 쓰이는 단어로 바로 도메인의 원조다. 분야, 영역, 식물의 분포지, 생육지란 뜻도 있다. 여기서 식물의 분포지, 즉 포도의 분포지라는 의미로 부르고뉴에서는 '와이너리'라는 뜻을 가진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죠르쥬 루미에르(G.Roumier)'는 와이너리 명칭, 즉 회사명이다.


 '샹볼 뮈지니(Chambolle Musigny)'는 유명한 와인 생산 마을의 이름이며, 프리미에 크뤼( 1er Cru)는 1등급 밭이라는 뜻, 이 1등급 밭 중에서 높은 퀄리티로 특급 밭에 필적하는 것이 바로 레 자무레즈( Les Amoureuses)라는 밭이다. 여기에 2001은 2001년도에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는 의미. 참고로 크취(Cru)는 나중에 영어의 자란다는 'Growth'의 어원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크뤼(Cru)를 영어로 번역하면 그루스(Growth)이기도 하다.


결국 와이너리 명칭, 마을 명칭. 포도밭 명칭, 그리고 제조한 해까지 다 들어간다. 회사 이름 하나도 어려운데 동네 이름에 밭 이름까지 기억해야 한다는 것은 실은 한 숨 밖에 안 나온다. 이러한 현상은 부르고뉴 와인이 특히 심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역 주민들은 그리 어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말로 비유하면 '제주도 고씨 할머니가 최고 밭에서 재배한 좁쌀로 빚은 2000년도 산 오메기술', 이 되는 것이다. 즉 로컬의 의미를 그대로 살리다 보니 일반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머리에 쥐가 날 듯한 것이다. 보르도는 수출용 와인으로 비교적 간단하게 구성되지만, 부르고뉴는 로컬 위주의 판매로 갔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다른 명칭 및 제도

여기에 명칭 및 제도도 지역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 부르고뉴의 와이너리는 도멘으로 불리지만, 보르도 지역은 성(城)이란 뜻도 가진 샤토(Chateau)를 많이 쓴다. 여기에 더 심한 것은 지역 및 마을마다 다른 등급체계다. 보르도 지방의 와인 등급은 와이너리에 붙지만, 부르고뉴는 포도밭에 주로 붙는다. 론 지방은 마을에 붙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같은 보르도라고 하더라도 그 안의 메독, 그라브, 셍떼밀리옹 등 또 다른 체계의 등급기준을 갖는다.

민간 차원에서 개발 및 제도 개선

이렇게 된 이유에는 획일적으로 결정하는 국가주도의 성장이 아닌 민간 스스로 산업의 기반을 쌓아 시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특히 각 지역마다 다른 특색이 있었고, 나라자체가 다르기도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보르도는 백년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300년 간 영국의 영토였으며, 와인 산지 부르고뉴를 지배한 부르고뉴 공국 등은 1790년도까지 해당 공국의 명맥을 유지하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오래된 전통을 가진 지역이면 지역일수록 이름, 명칭 등이 하나로 통일될 수가 없었다.


앞서 설명했지만, 부르고뉴의 와이너리는 도멘으로 불리지만, 보르도 지역은 성이란 뜻의 샤토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여기에 더 심한 것은 지역 및 마을마다 다른 등급체계다. 보르도 지방의 와인 등급은 와이너리에 붙지만, 부르고뉴는 포도밭에 주로 붙는다. 론 지방은 마을에 붙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같은 보르도라고 하더라도 그 안의 메독, 그라브, 셍떼밀리옹 등 또 다른 체계의 등급기준을 갖는다. 이러한 것을 다 알고 있어야 와인 전문가가 된다. 정말 좌절할 일이다.


여기에 까베르네 쇼비뇽, 메를로, 시라, 피노누아, 샤르도네 등 포도 품종까지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 심한 것은 프랑스의 전통 와인은 포도 품종도 기입을 잘하지 않는다. 굳이 포도 품종을 기입하지 하지 않더라도 동네 이름만 대면 "아 그 동네 와인~" 하면서 이미 느낌이 온다는 것이다. 마치 포천 막걸리 하면 "아~포천"하는 느낌과 비슷할 수 있다.

친절하게 품종이 기입되어 있는 신대륙 와인. 사진 호주 와인 옐로우 테일. 지역명으로는 맛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대륙 와인이 포도 품종을 기입하는 이유

그래서 미국, 칠레 등 신대륙 와인은 이러한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같이 동네 이름만 대면 아는 이름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와인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서 그랬다. 그래서 초기 신대륙 와인은 아무리 지역명을 내놓더라도 어떤 와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포도 품종을 적극적으로 기입하기 시작한다. 품종만 보더라도 어떤 맛이 가늠할 수 있게 끔 만든 것이다. 그래서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부분도 있다.

미국 서부 와인이 발달한 이유는 바로 종교의 차이

참고로 미국 와인의 경우 동부보다는 나바벨리 및 소노마 벨리 등 서부가 유명한데, 이것은 기후 이외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바로 동부는 개신도교인들이 개척한 곳이고, 서부는 멕시코로부터 빼앗은 땅이기 때문이다. 이 멕시코는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며, 그래서 가톨릭 교도들이 많았다. 당연히 미사 등에 쓰이는 와인에 관대할 수밖에 없었고, 동부에 비해 뜨거운 태양 및 토양의 조건, 건조한 기후 등 자연환경도 포도재배에 알맞기도 했다.


와인은 참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와인을 무조건 공부할 필요는 없다. 스트레스받아가며 술을 마신다면 그것은 이미 술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취미로 접근한다면 이 역시 일상의 기쁨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와인도 다양하지만, 막걸리도 다양하다는 것. 이렇게 다양성을 알아준다면 과음과 폭음이 아닌 풍성한  '슬기로운 술 생활' 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적어도 내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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