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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Jun 24. 2021

마시면 슈퍼맨이 된다는 맥주 마케팅

맥주 마케팅의 변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마시는 술은 뭘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할 수 있겠지만 바로 맥주다. 2018년 맥주의 전 세계 총생산량은 1억 9천만 톤, 2,600만 톤인 와인에 비해 무려 7배나 큰 것을 알 수 있다. 세계 인구를 50억으로 본다면 1인당 약 355ml 맥주캔을 107병 마시는 것을 의미한다. 와인은 연간 720ml 병으로 7병 정도, 같은 355ml라고 해도 14병 정도다. 즉, 수량으로만 본다면 맥주 시장이 와인에 비해 7~8배는 큰 셈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격주로 내놓는 '식품시장 동향'에서 영국의 시장조사기업인 글로벌 데이터의 '2020 알코올음료의 주요 경향'에 따르면 총 매출액 규모로도 맥주는 6천643억 달러, 와인은 3천억 달러도 2배 이상 크다. 소주와 같은 저렴한 증류주 시장의 규모는 약 3천881억 달러인데, 그래도 맥주 시장이 1.7배나 크다. 우리나라도 맥주 시장이 전체 주류 시장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으며, 뒤를 이어 소주, 막걸리, 와인, 위스키 등이 뒤따르고 있죠. 그렇다면 맥주는 어떻게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을까?


맥주가 이렇게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맥주가 이렇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술을 만들게 된 이유는 가장 산업화된 술이기 때문이다. 바로 완벽한 기계화, 균질화, 이것을 통한 산업화에 성공을 한 것이다. 산업혁명 시절에 맥주를 만들어 내는 효모를 분리해 냈고, 분리한 효모를 배양하여 발효하니 균질한 맥주 맛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량생산에 있어서 품질 문제가 여기서 해결이 된 것. 맥주는 만드는 시간도 짧다. 일반적인 라거 등의 맥주는 1달, 에일 등은 2,3주면 완성이 된다. 이것에 비해 와인은 적어도 수개월부터 수년 정도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맥주의 원료인 맥아 등은 수년간 저장해도 맛의 변화가 적지만, 와인의 원료인 포도는 수확해서 바로 발효 작업을 진행하지 않으면 금방 상해버린다. 와인은 만들 수 있는 때가 정해져 있다면, 맥주는 내가 만들고 싶을 때 언제든지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빨리 만들 수 있는 만큼 시장에 제품도 빨리 출시가 되었고, 그럼만큼 자금의 회전도 빨랐다. 여기에 파스퇴르가 발견한 저온살균법으로 유통기한이 대폭 늘게 되었다. 재고가 있더라도 무섭지 않은 품목이 된 것이다. 여기에 한번 만들고 수년간은 기다려야 하는 와인, 수십 년을 기다려야 하는 위스키와는 완전히 다른 산업이 된 것이다. 즉, 사업 진행에 있어서 자본과 마케팅력만 있으면 다른 주류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았다.

물론 성공 여부를 제외하고 말이다.


맥주는 자양 강장제?

이러한 상황에서 전 세계의 맥주 기업들은 활발하게 마케팅에 투자하게 된다. 초기 마케팅은 맥주를 영양제, 또는 자양 강장제와 같은 모습으로 홍보를 한다. 산업화가 빨라지면서 수많은 농촌의 농민들이 도시의 노동자로 바뀌었고, 주로 육체노동을 하는 이들에게 힘을 주는 이미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케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맥주에 알코올이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 그래서 맥주는 소화제로 쓰이기도 했으며, 임산부의 수유를 돕는 영양음료로도 등장한다. 물론 약이 부족한 시대의 광고였고, 지금의 시대에 적용하면 큰일 날 이야기다. 


맥주를 마시면 힘이 난다고 광고한 기네스.


이러한 상황에서 맥주가 우리나라에 진출하게 된다. 때는 바야흐로 1871년 신미양요. 우리나라에 통상을 요구한 미군에 대해 그들의 의중을 파악하고자 하급관리인 문정관이 파견된다. 그리고 그는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지 못한 채 맥주만 잔뜩 마시고, 사진만 찍혀서 내려온다. 그것이 기록된 맥주의 첫 모습이다.

자존심을 건드린 일본 맥주의 마케팅

이후 일본과의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협약(조일수호조규)을 맺고, 일본의 맥주가 본격적으로 들어온다. 특히 1900년대 초반부터 눈에 띄는데, 이때 가장 유명한 맥주가 기린 맥주와 에비스 맥주다. 당시 일본은 대일본맥주라고 하여 지금의 삿포로 맥주, 아사히 맥주, 에비스 맥주가 하나의 회사로 통합돼있었고, 여기에 기린 맥주 정도가 경쟁구도였다. 기린 맥주는 1888년 메이지야 (明治屋)라는 거대 유통사와 총판 계약을 맺었고, 한반도에는 1905년부터 진출, 이때부터 맥주는 상류층의 향유 물로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면서 등장한 마케팅 문구  “맥주를 마시지 않는 자는 개화한 사람이 아니다”(不飮麥酒者 非開化之人)란 것이었다. 한마디로 자존심을 건드는 마케팅이었다. 


삿포로 맥주가 맥주계의 최고 권위라는 동아일보의 광고


피부병을 낫게 하는 맥주? 

맥주 시장이 다소 안정을 찾자 이번에는 맥주가 피부병을 낫게 한다고 광고를 한다. 독일에서는 독일에서는 옛날부터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마셨고, 공장의 노동자는 아예 무료로 마실 수 있는 쿠폰에 교부되었다는 것. 맥주의 당화 효소는 누룩으로 위에 들어가는 순간 소화를 잘 시킨다고 나와있다. 그리고 소화제가 이러한 맥주 효소로 나왔다고 설명한다. 맥주의 효모는 혈액을 깨끗이 하며, 신체를 건전하게 한다, 보통의 피부병을 낫게 한다고 나와있다. 


1930년 9월 17일 자 조선일보. 맥주의 효과 피부병에도 좋다. 애주가가 아닌 애음가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1920년대 맥주는 상당한 고가였다. 맥주 한 병에 쌀이 두 되인데, 이것이면 조선사람 한 사람이 4~5일 먹을 식량이었다. 그렇다 보니 맥주를 훔치고 돌아다닌 것이 기사에 나올 정도였다. 


혀끝보다는 목구녁


1937년 6월 28일 매일신보의 맥주 스토리


1930년대 들어와서 일제는 영등포에 맥주를 세운다. OB맥주의 전신인 쇼화 기린 맥주와 하이트 맥주의 전신인 조선 맥주다. 조선 맥주는 말이 조선이지, 실제로 삿포로 맥주 및 아사히 맥주를 만드는 곳이었다.

이 시대에 맥주를 만든 이유는 간단하다. 보다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기 위함이였고,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맥주를 어떻게 즐길 수 있는가'였다. 대표적인 내용이 매일 신보에 나온 '혀끝보다도 목구녁'이라는 내용이다. 

혀로 맛보는 것이 아닌 목넘김으로 맥주를 평가한다는 내용이다. 특이한 것은 맥주의 온도. 당시에 일반 가정집에 냉장고가 없고, 온도계 자체가 흔하지 않다보니 맥주의 온도를 체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우물에 넣어놓으라는 말. 우물 정도의 온도가 되면 충분히 시원하게 마실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쇼와기린 맥주와 조선 맥주는 미군정의 적산재산에 속해지며, 민간에게 넘겨지는데, 그것이 바로 OB맥주와 크라운 맥주(조선맥주)였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TV 광고는 모두 생방송이었다는 것. 녹화 기술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각기병에 좋은 맥주?

맥주가 각기병에 좋다고 나온 기사도 있따. 마산일보 1964년 8월 21일 글이다. 흥미로운 것은 단숨에 마셔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맥주가 액체빵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독일에 대한 이야기인데, 맥주를 물처럼 마신다는부분인데 재미있는 내용은 그다음에 있다. 바로 공원이나 큰 도로에서의 수도꼭지를 틀면 맥주가 나온다는 것. 독일 군인이 튼튼하고 각기병에 걸리지 않는 이유도 맥주 때문이라고 전한다. 


영양성분은 우유와 비교한다. 맥주 4홉(720ml)의 영양성분은 맥주 525ml에 해당하고, 계란 4개 반쯤과 비슷하며. 그 밖에 B1, B2 등에 무기질이 함유되어 있다. 또 맥주를 백일주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백일만에 마실 수 있다는 것에서 나왔으며, 홉을 넣어 향기를 내고, 50도 전후로 끓인 후, 냉각을 시켜 효모로 10일간 발효시킨다고 나와있다. 


마산일보 1964년 8월 21일 기사. 맥주를 액체 빵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맥주가 각기병 치료에 좋다는 내용은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다. 실제로 맥주 효모는 B1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각기병에 좋다는 것은 확실하다. 다만, 지금의 맥주는 맥주 효모를 품고 있지 않다. 모두 멸균 처리했거나, 또는 필터로 걸러내기 때문이다.


만약 효모가 있다고 해도 지금은 맥주에 각기병 치료 등을 이야기하면 큰일 난다. 좋은 약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 안전처에서 효능 등에 대한 과대광고가 나오는 즉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결국, 기능성을 주제로 한 마케팅은 이제는 옛이야기. 확실한 것은 술이 몸에 좋다고 광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나에게 확실한 것은 하나 있으니 바로 정신건강에 좋을 때는 있다는 것.

몸에 좋은 것을 기대하지 말고, 편안하게 한 잔 하면서 현실의 힘듦을 잊어본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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