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존중의 시대
얼마 전 한국 전통주 업계에는 낭보가 하나 전해졌다. 안동 진맥소주와 한국 최초의 크래프트 토종 진(gin)이라고 불리는 부자진(buja gin)이 샌프란시스코 국제주류품평회(SFWSC)에서 더블골드메달, 그리고 브론즈 메달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직원만 수천, 수만 명이 되는 대기업이라면 마케팅 및 홍보력의 결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 두 업체 모두 수작업 중심으로 제조되는 아주 작은 양조장 들이다. 특히 진맥 소주는 직접 재배한 안동의 통밀을 원료로 증류 후 2년 숙성을 통해 출시되고 있으며, 부자 진(buja gin)의 경우 이름 그대로 아버지의 허브 농장에서 수확한 한국산 허브와 쌀 증류주를 원료로 만든 제품이다. 즉, 두 제품 모두 한국의 농업의 가치를 살린 프리미엄 제품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증류주 시장은 그동안 저가 제품이 메인 시장이었다. 맛과 향을 중시하기보다는 주로 가성비를 추구했으며, 이러한 가성비를 추구하는 문화는 소품종 대량생산 중심인 시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저렴하게 만들기 위해 주정에 물을 넣어 주로 조미료로 맛을 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가성비 시장이 소비자에게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부담 없이 하루의 노곤을 풀 수 있다면,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가성비만을 추구하는 시장에 너무 치중되어 있다는 것이고,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좁은 시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성비와는 먼 한국의 전통 증류주 문화
전통적으로 한국의 증류주, 또는 전통 소주는 이렇게 가성비와는 거리가 멀었다. 17세기 초 안동 장 씨가 기록한 음식 디미방에만 하더라도 쌀소주, 찹쌀 소주, 밀소주(진맥 소주) 등이 그대로 나오고 있으며, 궁중에서는 내의원이 은솥으로 증류, 소주를 만들기도 했으며, 이러한 모습은 훗날 진도 홍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봉준 장군이 마시고 원기를 회복했다는 죽력고, 조선의 감기 예방용 술인 배와 생강의 소주 이강주, 그리고 춘향이가 이몽룡을 잡고자 최후의 승부수로 던졌다는 감홍로 등 스토리 풍부한 전통주 및 전통 소주가 우리 주변에 많다. 우리에게도 스카치 위스키, 프랑스 코냑만큼 멋진 문화를 품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술은 잘 모르고, 외국의 술에만 많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우리는 왜 서양의 것만 갈망했을까?
이렇게 된 것은 우리의 생활 모두가 서양화되고, 지금의 경제, 정치, 그리고 산업까지 그들을 따라가는데만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G7 정상회의에 초대될 정도로 국격이 높아졌으며, K-Culture라는 한국의 모든 문화는 이제는 단순한 트렌디함을 넘어 힙함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 때는 우리가 그들에게 배웠다면, 이제는 그들도 우리를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꼼꼼히 따지고 소비해야 시장이 발전한다
그래서 우리 것을 돌아봐야 한다. 무작정 많이 구입해서 마시자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까탈스럽게 꼼꼼히 체크를 해 봐야 한다. 어떤 재료로 어떠한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 더 자세히 바라보며 칭찬과 비판 모두가 이제는 필요한 시기다. 이렇게 해야 전통주 산업, 나아가 소주 산업도 발전할 수 있고, 보다 우리 농산물에 근거한 술이 많아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우리 농업의 부가가치 창출 및 나아가 농업 전반에 걸쳐 성장을 이뤄낼 수 있다.
전통주는 최근에 비대면(온라인)으로 구입 가능한 이점과, 그리고 전통주 바틀 샵의 등장으로 관련 산업을 또 한 번 업그레이드했다. 여기에 소규모 양조장, 한식주점 등 수많은 창업 아이템, 그리고 비즈니스 찬스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전통주 시장이 성장하는 이유는 본질적인 상사가 정해준 뻔한 회식의 술이 아닌, 내 취향에 맞는 술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주 시장 성장, 애국주의 국수주의와는 거리 있어
결국 전통주의 성장은 단순한 국수주의가 아닌,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내 스타일을 알아가는 거대한 소비 흐름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다. 술이라고 다 같은 술이 아닌 것을 소비자들이 더욱 알아가고 있는 현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