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으로 확대되는 막걸리의 세계
11만 원 막걸리 VS 19만 원 막걸리
해창 롤스로이스의 등장
작년 가을 주류업계에 떠들썩한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공장도 출고가 11만 원짜리 막걸리가 등장한 것이다. 당시 제품명은 해창 롤스로이스. 알코올 도수 18%로 일반 막걸리에 비해 3배나 높았고, 해남의 유기농쌀, 4번에 걸친 발효와 숙성, 여기에 1~2주일 발효 숙성하는 일반 막걸리와 달리 2달 이상을 숙성한 제품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이 제품이 나온 이후에 반응은 극단으로 치닿았다. 겉보기에는 1,000원 대 막걸리와 큰 차이가 없는 디자인 때문이었다. 정성도 없어 보이고, 대충 만든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그저 롤스로이스라는 럭셔리카의 이름만 차용한 어그로를 끌기 위한 제품으로만 보였다. 하지만 조금씩 해당 제품을 마신 소비자는 이내 맛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중에는 계모임까지 만들어 구매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여기에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인생 막걸리'를 발견했다고 인스타에 소개까지도 한다. 지금 해당 제품은 해창 18도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구하고 싶어도 쉽게 못 구하는 제품이 되어버렸다.
11만 원짜리 막걸리에서 19만 원으로. 서울 골드
이러한 상황에서 약 1주 전, 더 높은 가격의 막걸리가 출시되었다. 이번에는 소비자가 19만 원짜리 막걸리 '서울 골드'다. 방배동 가양주 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서울 양조장에서 출시한 제품으로 보은의 '삼광미'로 월 100병만 생산하는 한정판 제품이다. 100일 저온 숙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오양주법으로 5번을 빚어 만들었고, 설화곡이라는 눈꽃처럼 흰 쌀누룩을 쓰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이 설화곡 중에서도 5월과 10월에 나온 가장 좋은 설화곡을 선별하여 발효와 숙성을 진행한다. 마치 위스키에서 가장 좋은 오크통의 원액만 사용하는 스몰 배치(Small Batch)와 닮았다. 알코올 도수는 15%다.
두 제품의 공통점
두 제품의 공통점은 둘 다 추가로 물을 넣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원액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둘 다 알코올 도수가 현저히 높다. 위스키에서는 이런 제품을 '캐스트 스트렝스(Cask strength)'라고 부른다. 희석하지 않은 맛이다. 원재료의 맛을 숨기는 인공감미료도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 일반 막걸리에 비해 오랜 숙성, 좋은 원료, 무엇보다 소량생산을 주 원칙으로 한다.
작품시장을 지향하는 두 제품
대량으로 생산하기도 어려운 이유는 두 양조장 모두 소규모로 제품을 만드는 곳이다. 큰 매출을 올리기보다는 전통주의 맛과 향,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알리는 것에 중점을 뒀다. 1,000원짜리 막걸리도 있다면, 10만 원이 넘는 고급 제품도 있다는 다양성이 포인트다. 팔리면 좋고 안 팔리면 내가 다 마시겠다는 생각도 있다. 미술품이나 아트 산업과 같은 작품시장과 같은 취지다.
맛은 정말 다른가?
해당 제품을 둘 다 마셔봤다. 일단 둘 다 기존의 막걸리와 맛이 확연히 다르다. 해창 18도는 묵직한 목 넘김에 알싸한 술맛이 있다. 너무 묵직해서 식감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농밀하다. 여기에 쌀이 주는 특유의 담백함과 구수한 단 맛이 녹진하게 녹여져 있다. 마치 맑은 가을날 황금빛의 평야에서 보이는 풍광이다. 익숙하지만 새로운 맛, 그리고 그리워했던 시골스러운 느낌도 살아있다. 해창 18도가 드넓은 자연에서의 풍광이 느껴진다면, 서울 골드는 도심의 멋진 미술관에서 바라보는 조형미가 있다. 역시 농밀하지만 실키한 부드러움과 매끈한 단 맛이 가득 차 있으며 풍성한 과실 향과 꽃향은 잘 가꿔진 수목원에 있는 듯 한 느낌을 준다. 인간이 잘 가꾼 자연의 모습이다.
해당 제품은 혹자에게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일 수 있다. 막걸리 가격이 미쳤다고 욕을 할 수도 있다. 또 맛은 개인의 취향이기에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궁금하지 않다면 굳이 사 마시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미 위스키 한 병에 20억 원이 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으며, 가방 하나에도 수천만 원을 하는 세상이다. 그것도 추운 겨울에 새벽부터 줄 서서 사야 하는 실정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것에 늘 우리 것은 빠져있었다는 것. 그리고 늘 우리 것에는 우리 스스로 인색했다는 것이다.
신년에는 우리 술이 늘 저렴하고 마시고 취하는 시장이 아닌, 느끼고 감상하는 작품시장으로도 확대되기를 기대해 본다. 때로는 1,000원짜리 막걸리에 실컷 웃을 수 있고, 고급 막걸리는 감상도 할 수 있는 시대. 막걸리는 저렴하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된 모습이 진정한 막걸리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