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를 볼 때마다 늘 궁금한 것이 있었다. 바로 알코올 도수가 40도라는 것. 일부 위스키 들은 50도가 넘는 스페셜 버전도 있지만 대중적인 위스키는 대부분 40도에 맞춰져 있다. 발렌타인, 조니 워커, 시바스 리갈, 윈저, 로열 샬루트 등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위스키가 40도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대표적인 이유로는 위스키 종주국인 영국 정부의 정책 변화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정책. 도수를 낮춰 남는 재료 군수품으로 활용하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정부에서는 강력한 음주 억제 정책을 실시하고 있었다. 당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람은 재무부 장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 이미 젊었을 때부터 강력한 금주 운동을 추진했던 인물로 음주는 노동의 효율을 저해한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었다. 당시 위스키의 알코올 도수는 44.6~48.6도. 이것에 대해 1915년 로이드 조지는 일단 35도로 낮춰서 판매할 수 있도록 법안을 변경하고, 이후에 최대 28도까지 낮추는 추가 법안까지 세운다.
위스키의 대표 원료인 맥아. 맥주의 원료로도 잘 알려져 있다.
도수를 낮추려고 한 이유는 원가 절감이었다. 위스키의 원료는 맥아 및 곡물. 도수를 낮추면 물을 많이 넣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원가 및 원료 비율을 낮춰 남는 재료를 군수품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위스키 업체들의 반발이 엄청났다. 도수를 이렇게 낮춰버리면 위스키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맛과 향이 확 줄어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향수의 알코올 도수는 70~90도
향수를 보면 이러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향수의 알코올 도수는 70~90도 정도. 만약 알코올 도수를 낮추면 휘발성 향미가 적어지고, 향수의 역할은 하지 못하게 된다. 즉 위스키 역시 도수를 낮추면 위스키 특유의 향미가 적어지고, 그것은 위스키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결국 정부와 위스키 업체들이 타협한 알코올 도수가 결국 40도. 이 수치가 위스키의 인계점이라고 본 것이다. 또 알코올 도수 40도 이상이어야 완벽한 무균상태가 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렇게 되면 절대적으로 상할 일이 없어 유통기한 자체가 필요 없어지는 것이다.
엡솔루트 보드카. 러시아 제품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스웨덴 제품이다. 원래 약국에서 판매되는 약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보드카가 40도 이상인 이유
알코올 도수가 40도인 것은 위스키뿐만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보드카도 있다. 보드카의 경우 영국보다 훨씬 추운 북유럽, 동유럽 그리고 러시아에서 많이 소비가 되었다. 그래서 잘 어는 술은 보관하기가 어려웠다.
알코올의 경우 '- 114.1도'가 어는점인데, 함유량이 낮으면 영하 10도에서도 잘 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40도로 맞추면 영하 45도에서도 얼지 않는 수준이다. 극한의 추위에서도 견딜 수 있는 술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추운 겨울에 보드카가 어는 여부로 품질을 보기도 한다. 심하게 춥지도 않은데 얼어버리면 가짜 보드카라는 것이다.
40이라는 숫자의 역사적 의미
40이라는 숫자는 서양 역사와 문화에서 또 존재감을 드러내는 부분이 있다. 기독교, 나아가 근동의 역사까지 아우르는 숫자다. 노아의 홍수 때 40일 동안 비가 내리고, 유대인이 이집트를 탈출한 이후 40년을 광야에서 헤매고, 모세가 40과 예수 역시 4일 동안 단식하며 기도했다. 여기에 다윗왕과 솔로몬 왕의 재위 기간도 40년이었다. 여기에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서 등장하는 40이라는 숫자를 보면 단순히 기독교적 사상만은 아닌 것이다.
흑사병이 창궐했던 시대 동방에서 들어온 배는 40일 동안 하선하지 못하게 했다. 사진은 참고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또 중세 시대,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흑해나 오스만 튀르크 등에서 베네치아로 배가 들어오면 방역조치로 40일 간 부두에 머무르게 했다. 그래서 방역이라는 영단어 'quarantine'의 어원을 보면 40일이란 뜻이다. 중요한 것은 당시 위스키는 이러한 흑사병의 소독 및 치료제로 쓰였다는 것. 그들에게는 40이란 단어가 완벽, 우리에 비유하면 100이라는 것과 유사하다는 의미가 된다. 이러한 맥락이라면 완벽을 추구하는 알코올 도수가 40도 이상이라는 의미가 된다.
위스키는 최고가를 계속 갱신 중이다. 가장 비싼 제품이 21억 원이 넘는다. 알코올 도수에도 특별한 철학이 있는 셈이다.
알코올 도수를 안내리는 위스키, 계속 내리는 소주
한국의 대표 증류주인 소주는 도수가 계속 내려가고 있다. 건강을 생각한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원재료 비율은 계속 내려가는 셈. 하지만 소주 업체들은 소주의 도수를 정해놓고 있지 않다. 결국 끝없이 물만 추가하는 상황. 이것은 희석식 소주 자체에 고유의 맛과 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 도수는 낮아질 듯하다.
결국 술 빚는 장인의 철학이 한 제품은 고부가가치로, 또 다른 제품은 최저가로 만들어 간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