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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Feb 15. 2022

맥주의 맥아와 식혜의 엿기름은 뭐가 다를까?

살짝 보면 똑같은, 자세히 보면 다른 맥아와 엿기름의 세계

둘 다 보리로 만드는 엿기름과 맥아, 서로 뭐가 다를까?


어릴 적 어머니가 늘 자주 만들어 주던 음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쉽게 공산품으로 만날 수 있는 쌀로 만든 주스 '식혜'죠. 저는 어머니가 식혜 만들던 모습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밥솥에 쌀을 넣고 뭔가를 쓱쓱 넣어 놓으면 금세 만들어졌죠. 신기한 것이 설탕을 전혀 넣지 않는데도 맛이 구수하며 달콤했습니다. 덕분에 매일 들통에 있는 식혜를 훔쳐 먹느라 많이 혼났던 기억도 많습니다. '너만 입이냐고' ㅎㅎ


그래서 늘 어머니에게 이렇게 단 맛은 설탕에서 나오는지 물어봤죠. 어머니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설탕을 안 넣는다고. 밥솥에 밥과 물, 그리고 엿기름만 넣으면 된다고 하셨죠. (최근의 공산품 식혜에는 대부분 설탕이 들어가지만요) 


엿기름. 출처 위키피디아. 알곡에서 발아가 된 것을 알 수 있다. 저렇게 발아가 되야 아밀레이스가 증폭한다. 
엿기름은 엿에서 나오는 기름이 아니다

당시 저는 엿기름이 엿에서 나오는 기름인 줄 알았습니다. 기름에서 단 맛이 나온다고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술을 공부하고 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엿기름은 엿의 기름이 아닌  '엿'+'기르다' 등으로 엿과 같은 당을 만드는 역할이라는 것을요. 즉 조청이나 엿을 만드는 첨병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엿기름은 아시다시피 발아된 보리의 알곡을 말리거나 덖은 것입니다. 싹(뿌리)이 틀 때 곡물에 아밀레이스(Amylase)라는 당화 효소가 많아지는데, 이것을 얻기 위해서죠. 중학교 생물 시간에는 아밀라아제로 배운 그 효소입니다. 



보리 알곡에는 겉을 둘러싼 씨껍질 아래에 배가 들어 있다. 이 배가 자라서 새로운 보리가 되는데, 발아한 보리싹이 잘 자라려면 먹을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배젖, 또는 배유인데 이것이 우리가 주로 섭취하는 전분이다. 그래서 싹이 나오면 잎이 나올 때까지 성장하는 데 있어서 이 배젖을 사용하고, 잎이 나오면 그때는 광합성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래서 엿기름이나 몰트는 발아된 후 말리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대로 두면 싹이 트고 잎이 나오면서 내부의 배젖(영양)을 에너지로 사용, 결국 전분이 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전분을 당분으로 만드는 마법의 약

아밀레이스라는 당화 효소는 알곡의 전분을 당분으로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즉, 전분(쌀, 밀가루, 옥수수, 감자, 고구마 등 주로 탄수화물류)에 수분을 더해주면 당으로 분해해 주는 역할을 하죠. 전분이 수분과 같이 있다면 그것을 주스와 같은 형태로 만들어 주는 마법의 물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싹(뿌리)이 튼 채로 놔두면 성장하면서 영양을 모두 섭취해버리기 때문에, 말리거나 덖어서 성장을 멈추게 해야 하는 것이죠. 

마치 계란 노른자가 병아리가 달걀 내에서 부화하고 성장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인 것처럼 보리의 알곡도 같은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전분은 어떻게 주스가 되나?

전분이 주스가 되는 과정은 간단합니다. 전분은 당과 같은 물질이죠. 그래서 복잡하게 엮어져 있는 당, 그래서 '복합당'이라고도 합니다. 쌀을 쪄서 절구에 넣고 치면 떡이 되지요? 이 떡과 같이 뭉쳐져 있는 것이 전분이고, 아직 합쳐지지 않은 밥알을 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떡은 잘 소화가 되지 않죠? 하나하나 다 묶여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밥은 쉽게 소화가 됩니다. 그래서 당화 효소는 이렇게 묶여 있는 떡과 같은 전분을 낱알과 같은 당분으로 만들어 주는 역할, 그래서 효모로 하여금 낱알과 같이 소화가 잘되는 당분을 먹고 알코올을 만들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을 담당합니다. 그리고 이 당화를 아밀레이스가 하는 것이고요. 


주스는 어떻게 술이 되나?

공기 중에 가장 많은 진핵생물이 바로 효모입니다. 이 효모가 술을 만드는 주범(?)이죠. 효모(酵母)의 한자를 보면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효는 술유(酉)에 효도할 효(孝). 그리고 어미 모(母)죠. 말 그대로 '술에 효도하는 존재의 어머니', 즉 '술의 어머니'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효모는 진핵생물이라서 산소호흡을 해야 하는데, 알코올 발효가 되는 것은 산소가 적은 살기 힘든 혐기성 조건입니다. 이때 효모는 살아남고자 당분을 분해해서 에너지(ATP)를 얻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 바로 알코올과 이산화탄소(Co2)죠. 


효모를 괴롭혀야 만들어지는 알코올 

만약에 산소가 충분한 살기 좋은 호기성 상태를 만들어 주면 효모는 알코올 발효보다는 번식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양조장에서 이 효모를 늘릴 때는 초기에 산소를 충분히 넣어주기 위해 뚜껑을 열고, 이후에 효모가 많아지면 알코올 발효에 집중시키기 위해 뚜껑을 닫아 버리죠. 그렇게 힘든 조건이 돼야 효모들이 에너지를 얻고자 알코올을 만들어 내니까요. 우리가 마시는 알코올은 이렇게 효모를 괴롭히면서 만드는 나오는 것입니다. 


맥주용 몰트. 발아된 뿌리가 엿기름에 비해 훨씬 짧은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우리 엿기름과 맥주용 몰트의 차이

그렇다면 다시 엿기름과 몰트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우리에게 엿기름이 있다면 서양에는 몰트가 있죠. 같은 보리의 싹을 띄워서 말린 것인데 우리와 목적이 조금 다릅니다. 주로 맥주, 위스키 등 술을 제조하는데 많이 사용되는 것이죠. 그래서 한 때 생각했습니다. 우리 엿기름으로 맥주 만들면 되지 않냐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엿기름과 맥주용 몰트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새싹(뿌리)의 길이입니다. 우리 엿기름은 싹의 길이가 보리알 길이보다 1.5배~2배 정도 깁니다. 반대로 몰트는 1배 미만인 경우가 많죠. 

말린 몰트의 모습. 출처 남양주 쓰리소사이어티
우리 엿기름은 뿌리가 길고, 맥주용은 짧은 이유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의 엿기름은 이 당화 효소인 아밀레이스가 최대치일 때 만듭니다. 그것은 새싹의 길이가 보리알보다 1.5배 정도 되었을 때입니다. 대신 전분은 줄어들죠.


우리의 엿기름은 전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따로 전분(쌀, 밀, 옥수수, 감자 등)을 추가로 넣어 당화를 시키기 때문입니다.  


서양의 몰트(특히 맥주용)는 우리 것과 달리 당화 효소도 중요하지만, 전분도 정말 중요합니다. 전분이 충분해야 맥즙이 되고, 그 맥즙 속의 당을 발효시킨 맥주가 될 수 있습니다. 맥아로만 맥주를 만드는 경우에는 우리처럼 따로 전분을 넣지는 않는 것이죠. 그래서 전분 함량이 많은 것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엿기름이 당화효소에 중점을 둔 것이라면, 맥주의 몰트는 당화효소는 물론 원료의 역할도 있는 것이죠. 

미국 맥주의 맛이 심심한 이유

미국의 보리에는 주로 여섯줄 보리라고 하여 생산성은 높으나 전분치가 낮은 보리가 많이 생산됩니다. 그래서 옥수수나 쌀을 넣어 전분을 보충해 미국식 라거를 만든 것이고요. 유럽은 두줄 보리라고 하여 생산성은 낮으나 전분치가 높았기 때문에 맥아만으로도 충분히 맥주를 만들 수 있었죠. 그래서 미국식 맥주(버드 와이저, 밀러)등은 맛이 심심하고, 유럽 맥주는 맛이 진합니다. 단 맛도 유럽 맥주가 훨씬 강합니다. 

우리나라의 카스나 테라, 하이트 등은 미국 맥주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고요. 


우리 엿기름은 당화에만 최적
맥주용 몰트는 당화+알코올 발효까지 생각

결국, 우리 엿기름은 새싹(뿌리)을 길게 하여 당화 효소를 최대로 뽑은 것으로, 식혜, 조청, 엿을 만드는데 최적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서양의 몰트는 그 자체로 술이 되게 하기 위해 '당화 효소+전분' 둘 다를 잡은 것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당연히 엿기름만으로 맥주를 만들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맥아로 식혜나 엿을 만들기에도 애매한 부분은 있을 듯합니다. 


PS: 이번 글은 편하게 비문으로 정리해 봤습니다. 어색하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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