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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Nov 05. 2022

프랑스 부르고뉴가 고급 와인으로 유명한 이유

부르고뉴 와인의 진정한 가치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을 만드는 곳이 있다. 병당 수천만 원을 가볍게 호가하는 로마네 꽁티(Romanée-Conti)가 만들어지는 곳. 프랑스 정부가 지정한 특급 밭이 가장 많은 지역. 바로 부르고뉴다.


포도 재배 면적 자체는 보르도가 더 넓지만 작은 면적의 특급 밭(Grand Cru)을 보유, 한정수량과 수제의 가치를 더욱 살리며 전 세계 최고가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곳이다. 여기에 와인을 만드는 포도 품종도 기준이 있는데 레드 와인의 경우는 피노누아, 화이트 와인은 샤르도네 중심으로 만들고 있다. 품종의 단순함이 스토리가 되어 오히려 고급화를 가속시키고 있다고 보인다.

로마네 꽁띠 가격. 가볍게 3,000만 원을 넘어간다. 출처 wine- searcher
가톨릭과 정치의 만남

그렇다면 부르고뉴는 어떠한 역사적 배경으로 세계 최고가의 와인들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바로 수제의 가치를 담은 수도원 와인의 본격적인 시작이 이곳이라고 볼 수 있다. 중세 유럽의 특성을 보면 교황과 세속 군주의 결탁을 통해 기독교 세력을 넓혀갔다. 특히 732년 이슬람 제국의 우마이야 왕조가 북아프리카를 거쳐 스페인을 통과 피레네 산맥까지 넘어 프랑스 내부로 침공했을 때 혜성같이 등장해서 이슬람 세력을 막아 준 것이 바로 프랑크 왕국이었다. 카롤루스 마르텔이 이끄는 프랑크 군은 프랑스 내의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만약 막지 못했다면 이탈리아와 가까운 마르세이유 및 리옹도 빼앗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로마 교황청도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8세기까지의 이슬람 제국의 영토. 스페인까지 대부분 차지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나마 프랑크 왕국이 막아줘서 프랑스, 이탈리아로는 진격하지 못했다는 것. 출처 위키피디아



이슬람 세력을 막아준 샤를 마뉴의 할아버지

그리고 이 카롤루스 마르텔의 손자가 서로마 제국을 다시 부활시켰다는 샤를 마뉴. 수도원에 엄청난 혜택과 와인 및 맥주 산업을 독려시킨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샤를 마뉴에게 황제의 관을 씌워준 것이 바로 교황. 이러한 결탁을 통해서 더 이상 동로마 제국의 황제에 기댈 필요도, 이슬람 제국의 침입도 이제는 덜 걱정해도 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결국 1054년에 동로마 제국 중심의 정교회와 서유럽 중심의 가톨릭으로 나뉘게 된다.


이슬람 세력을 막기 위해 세속 군주와 결탁을 맺은 것은 좋았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교회 및 가톨릭의 성직자 임명권(선임권)을 세속 군주가 가지면서 성직자들이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 된 것이다. 결국 수도에 힘을 써야 하는 종교인이 권력자에게 휘둘리고 있는 상황. 성직자의 규율과 도덕은 점차 해이해졌고, 신앙의 수준은 하락하게 됐다.


수도원의 독립성을 찾자는 부르고뉴의 클리뉘 수도원

이러한 상황에서 수도원 자체의 독립성을 찾자는 수도원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909년 프랑스 아키텐 공작인 기욤 1세는 클리뉘 지역에 수도원을 세우면서 해당 수도원을 완벽한 독립체의 조직으로 만든다. 왕은 물론 백작, 주교 등도 이곳의 재산을 침범할 수 없다고 공언한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문제였다. 바로 수도원이 재정자립을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것이 바로 포도 농사와 와인 제조였다. 성찬의식에 꼭 필요한 와인을 만들고, 또 판매를 위해서도 만든 것이다.


부르고뉴 마코네 지역의 뿌이 퓌세 마을


수도회의 기본 모토 '기도하며 일하라'

여기에 더욱 적용된 규범이 '기도하며 일하라(Ora et Labora).'라는 것. 베네딕토회의 수도원 생활의 규율인 이 내용은 수도원의 주체성을 더욱 이끌게 된다. 결국 클리뉘 수도원 개혁(Cluniac Reforms)은 프랑스 전역은 물론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까지 퍼지게 된다. 그러면서 학문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수도원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곳 출신이 바로 제1차 십자군 운동을 일으킨 우르반 2세다.


그리고  클리뉘 수도원이 있는 곳이 바로 부르고뉴의 마코네라는 지역이다.


그리고 이 수도원이 배출한 인물이 우르바노 2세(라틴어: Urbanus PP. II). 클리뉘 수도원에 들어가 수사로 시작한 그가 후에 이곳의 원장이 되고 후에 교황에 오르게 된다. 오늘날 로마 교황청 조직을 마련한 사람이지만, 중세 유럽의 흑역사라고 볼 수 있는 십자군 전쟁을 시작한 인물이기도 했다.


부르고뉴 마코네 내 뿌이 퓌세 마을에서 만든 루이자도 와인

클리뉘 수도원의 개혁은 13세기에 시토회(Citeaux)에 개혁의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토회 역시 부르고뉴 지역이라는 것. 현재 부르고뉴의 주도인 디종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부르고뉴 지역을 관할하던 부르고뉴 공국은 프랑스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기도, 때로는 배신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영프의 백년전쟁. 당시 영국편에서 서서 프랑스를 압박하고, 성녀라고 불리는 잔다르크를 사로잡아 화형까지 연결시키는 악역을 마다하지 않는다.


당시 영국편에 선 프랑스 주변 지역이 바로 지금의 벨기에 중심인 플랑드르와 바로 이 부르고뉴였는데 이 둘은 하나의 나라였다. 그래서 부르고뉴 와인의 메인 수출처가 플랑드르 지방이기도 했다. 그리고 플랑드르 지방의 벨기에 역시 수도원 맥주(트라피스트 에일 등)로 여전히 유명하다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부르고뉴 왕조(카페-부르고뉴 가문)가 포르투갈 왕조들의 시조라는 것이다. 부르고뉴 공작의 손자인 앙리(포르투갈어로 엔히크)가 레온 왕국의 알폰소 6세의 사위가 되어 포르투갈 백작령을 하사받았고, 그 아들인 아폰수 1세가 포르투갈의 초대 국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는 레콩키스타 운동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포르투칼이 와인으로 유명한 이유도 부르고뉴와 연결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프랑스 대혁명 때까지 이어진 부르고뉴의 수도원 와인

결국 부르고뉴는 수도원 운동의 중심지로 프랑스 대혁명까지 수도원 역사가 이어진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수도원의 모든 포도밭은 일반인에게 나눠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깨알같이 작게 나눠진 수도원의 포도밭은 각각의 개성을 자랑하며 수제의 전통을 이어온 채 전 세계 최고가의 와인으로 이어지게 된다.


현재 클리뉘 수도원의 모습. 프랑스혁명 등을 거치며 거의 파괴되었고 지금은 관공서, 종마장 등으로 쓰이며 수도원으로 활용되고 있지 않다.


PS: 수도원의 자립을 지향한 곳은 클리뉘 수도원뿐만은 아닙니다. 시작은 이탈리아 베네딕토회라고 볼 수 있으며 클리니 수도원 역시 이러한 베네딕토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중세 이후에 본격적인 수도원 자립 운동을 진행한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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