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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Nov 30. 2022

와인은 어떻게 우리 식탁까지 오게 되었나?

와인의 수출 산업을 도운 저장 용기들

와인이 바다 건너 우리 식탁에 놓일 수 있는 이유는?    

      

코로나 이후로 더욱 뜬 와인

코로나 이후로 가장 주목을 받은 술은 뭐가 있을까? 박재범의 원소주를 비롯 2000종류가 넘는다는 한국의 전통주부터, 하이볼의 등장으로 진입장벽을 낮춰 시장을 확보한 위스키, 그리고 건강의 이슈를 가지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는 무알코올 맥주 등 기존에 없거나 작았던 시장이 확대된 것이 최근 주류 시장의 최근 트렌드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가장 성장한 시장으로 보는 것이 바로 와인. 와인은 5년 새 수입량이 2배로 늘었다.  최근에는 고급 와인이 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보르도와 부르고뉴 등 프랑스의 고급 와인 산지의 1월~9월 수입액이 작년 대비 18% 이상 증가한 것이 이러한 것을 대변한다. 이제 주류 시장에 있어서 트렌드는 양보다 질이 된 셈이다.     

 와인은 어떻게 이렇게 수출이 용이하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와인은 어떻게 이렇게 수출이 용이하게 되었을까?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저장 및 운반용기의 발달이다. 중동지역의 가죽 부대가 그 효시로 양이나 염소 가죽으로 와인을 운반했다. 비도 적으니 잘 상할 일도 없었으며 가벼웠고 무엇보다 사람이 짊어지고 가기에도 적당했다. 낙타 등에 올려도 형태가 잘 바뀌는 가죽 부대의 특성으로 운반하기도 편했다. 다만 내구성이 약했다. 특히 안에서 재발효가 일어나면 탄산이 일어나 팽창하게 되는데 이럴 때 가죽부대가 터지곤 했다. 특히 이제 막 담은 와인은 더욱 재발효가 일어나기 쉬웠다.


그래서 성경에는 새 와인은 새 부대(New wine into old wineskins)에 담으라고 언급하고 있다.  

 낡은 가죽부대는 발효가 일어나면 쉽게 터졌기 때문이다,


가죽부대를 이용해 이동하는 모습. 출처 http://gyusikjung.blogspot.com/


와인 라벨의 효시 고대 항아리 암포라

이러한 것을 해결한 것이 고대의 항아리 암포라였다. 암포라는 고대 이집트, 페니키아, 그리스, 로마시대까지 사용된 와인 용기다. 송진을 이용해 내부를 코팅, 밀랍으로 코팅을 하여 공기 및 세균의 침입을 막았다. 양쪽에 손잡이도 있어서 들기도 편했다. 지중해 연안의 국가들이 많이 사용한 만큼 배로 운반했고 찢어지는 일이 없으니 훨씬 효용가치가 높았다.


암포라의 등장은 와인에 산지 및 생산연도 등 다양한 기록을 넣을 수 있었다. 현대 와인 라벨의 효시가 등장한 것이다.     


고대 지중해 문명에서 사용하던 항아리 암포라. 출처 위키피디아


문제는 암포라가 너무 무거웠다는 것이다. 50리터의 와인을 담은 암포라의 무게는 거의 100kg에 가까웠다. 즉 와인 무게만큼의 무게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토기인 만큼 위로 쌓을 수가 없었다. 바로 깨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늘 옆으로 세울 수밖에 없었고 상대적으로 윗 공간은 남을 수밖에 없었다.   

   

무겁고 잘 깨지는 항아리 '암포라'를 극복한 오크통

암포라의 문제를 해결한 것이 오크통이다. 오크통의 가장 큰 장점은 가볍다는 것이다. 암포라의 무게보다 무려 1/5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내구성이 정말 훌륭했다. 한 곳이 깨지더라도 풀어서 다시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암포라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벌이게 된다. 바로 저장용기를 위아래로 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공간 활용도가 높아진 것이다. 이동에 있어서 마찰력도 어마어마하게 줄이게 된다. 바로 용기 모양이 타원형을 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마차가 없어도 굴릴 수 있었다. 여기에 오크 나무 특유의 향과 맛이 배어들어가게 되었다. 범선을 타고 지중해에서 영국 및 북해로 수출을 하게 되면 배 안에서 알아서 자연스럽게 숙성이 되어 갔다.


오크통은 원래 게르만족이 맥주를 담았던 통이었다. 하지만 로마인이 이 오크통의 장점을 발견하고 와인에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오크통은 탄산이 있는 와인은 담을 수 없었다. 빈 공간으로 모두 새어나갔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스파클링 와인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을 해결한 것이 내구성 좋은 유리병이다.     



와인의 유리병 산업은 17세기에 본격 등장

유리가 등장하게 된 것은 기원전 4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중세시대에는 유리 기술을 가지고 있던 스페인의 이슬람 계열의 무어인에 의해 와인이 유리병에 담아 마셨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동용으로는 내구성이 약했다.


하지만 17세기 유리 산업에 혁신적인 발견이 이뤄지는데 바로 석탄을 이용해 유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기존의 목재로는 높을 온도를 내는 것이 한계가 있었는데 석탄으로 그것을 해결한 것이었다. 늘 오크통에 담아 수출하던 와인 산업이 이제 유리병에 담겨 수출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유리병에는 보다 자세한 제조자 및 유통업체들의 이름이 담기기 시작했다. 와인 브랜드의 본격 등장인 것이다.    


와인의 유리병 디자인의 변화. hogsheadwine.wordpress.com/

  

샴페인이라는 와인을 만든 와인의 유리병

유리병의 등장은 고대, 중세에 없던 샴페인이라는 와인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16세기까지만 하더라도 기존의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만드는 샴페인은 대부분 탄산이 없는 스틸 와인이었다. 이것이 영국으로 수출되면서 봄을 맞이하며 재발효가 일어나면서 탄산이 나오게 되는데, 이것을 따로 담아서 판 것이 샴페인의 효시다.     

기존에 내구성이 약한 유리병은 탄산 와인을 담으면 쉽게 깨졌다. 그것도 거대한 폭발음에 날카로운 유리파편까지 날리는 한마디로 폭발하는 현상이었다. 단순히 병이 깨진 것이 아닌 주변까지 다 망가트리고 다치게까지 하는 흉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구성 좋은 유리병이 발명되면서 잘 터지지 않으니 이제 샴페인은 유리병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구성 있는 유리병이 없었다면 지금의 샴페인은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다.      

대표적인 고급 샴페인 돔페리뇽. 유리병의 내압이 8 기압 이상으로 특별하게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다. 출처 https://www.worldhistory.org/


마지막으로 코르크 마개의 등장이다. 코르크 마개가 등장하기 전에는 밀봉이 완벽하지도 않았고, 밀봉하는 과정도 복잡했다. 게다다 한번 열면 저장성 좋게 다시 막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코르크의 등장으로 와인은 거의 완벽하게 밀봉이 되었다.      


코르크 마개. 출처 위키미디아


다량의 공기로 와인이 산화되는 것을 막아주면서 아주 미세한 양의 산소가 천천히 유입되는 덕분에 유리병 내에서도 와인을 천천히 숙성시킬 수 있었다. 유리병 내 와인 숙성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게 된 것이다.     

결국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의 식탁에 놓아져 있는 와인이지만 기존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 있었기에 바다 건너의 와인이 우리의 식탁에도 놓일 수 있다는 것.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에디슨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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