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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아파트보다 비싼 ‘포도밭’, 평당 6억 원의 서사

강남 아파트 VS 로마네 꽁띠 포도밭, 자본주의 최정점의 승자는 누구

by 명욱

대한민국 부의 상징이 강남의 아파트라면,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영혼을 지배하는 부의 상징은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에 있다. 그중에서도 ‘신의 물방울’이라 불리는 로마네 꽁띠(Romanée-Conti)는 단순한 술이 아닌 금융자산으로 취급받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 하나가 던져진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땅인 강남 아파트 부지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농지인 로마네 꽁띠 포도밭. 평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과연 누가 승자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단순히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을 넘어, 왜 흙 한 줌이 이렇게 비싼 가치를 지니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경제적 이면을 파헤쳐 볼 필요가 있다.



부르고뉴의 포도밭. 작은 담장으로 구분이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www.beaune-tourism.com/
부르고뉴 와인이 보르도 와인보다 비싼 이유

포도밭 자체에 최고 등급을 부여한 갓으로 유명한 나라와 지역, 바로 프랑스 부르고뉴다. 부르고뉴는 오직 ‘땅(Terroir)’에 집중한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 중 상위 1~2%만이 ‘위대한 밭’이라는 뜻의 그랑 크뤼(Grand Cru) 칭호를 얻는다.


반면, 보르도의 등급 체계는 다르다. 보르도(메독, 그라브, 생떼밀리옹 지역 등)는 밭이 아닌 ‘와이너리(Château)’에 등급을 준다. 보르도의 샤토들은 자본만 있다면 인근의 밭을 매입하고 합병하여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즉, ‘브랜드의 확장’이 가능하다는 이론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부르고뉴는 다르다. 이곳의 등급은 땅에 고정되어 있어 확장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옆의 밭을 사서 내 그랑 크뤼 밭에 편입시킬 수 없다. 밭마다 토질이 다르고, 그 고유한 성격을 섞는 순간 그랑 크뤼의 자격은 박탈되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본능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것’보다 ‘더 이상 늘어날 수 없는 것’에 열광한다. 부르고뉴 와인의 천문학적인 가격은 바로 이 완벽한 ‘공급의 비탄력성’에서 시작된다.



로마로 돌아가는 교황을 붙잡은 부르고뉴 와인

부르고뉴 와인의 가치에는 상업적 희소성을 넘어선 ‘성스러움’을 추구했던 흔적이 있다. 이 위대한 밭들을 개간하고 구획을 나눈 주인공은 바로 중세의 수도사들이기 때문이다.


과거 클뤼니 수도원과 시토회 수도원(Cistercians)의 수도사들에게 와인 양조는 노동이 아닌 ‘기도’였다. 그들에게 와인은 예수의 피, 즉 성혈(聖血)이었다. 세속의 권력자들로부터 독립하여 ‘기도하며 일하라’는 규율을 지킨 이들의 땀방울이 지금의 부르고뉴 떼루아(Terroir)를 완성했다.


이 명성은 역사적인 사건과도 연결된다. 14세기 교황이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으로 가버린‘아비뇽 유수’ 시절, 교황들은 부르고뉴 와인에 깊게 매료되었다. 교황이 다시 로마로 돌아가려 할 때, 수많은 추기경들이 반대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로마로 돌아가면 더 이상 부르고뉴 와인을 마실 수 없지 않습니까."


폭발의 연대기: 전설, 자본, 그리고 열풍

하지만 수도원의 역사와 희소성만으로는 오늘날의 미친 가격을 설명하기 부족하다. 부르고뉴 와인이 ‘음료’를 넘어 ‘금융 자산’이 된 데에는 현대에 일어난 세 가지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① 전설의 태동: ‘부르고뉴의 신’ 앙리 자이에 (~2006) 가장 먼저 와인에 ‘신비주의’를 입힌 인물은 2006년 타계한 앙리 자이에(Henri Jayer)였다. 그는 "와인은 자연이 만드는 것"이라며 화학 비료를 거부하고, 포도알을 하나하나 선별하는 극한의 장인 정신을 보여주었다. 그가 만든 ‘크로 파랑투(Cros Parantoux)’는 비록 그랑 크뤼(특급밭)가 아닌 1급밭이었음에도 로마네 꽁띠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기현상을 낳았다. "땅도 중요하지만, 그 땅을 이해하는 인간(메이커)이 중요하다"는 그의 철학은 부르고뉴 와인 전체를 단순한 농산물이 아닌 숭배의 대상으로 격상시켰다.


② 자본의 유입: 1994년 뉴욕 와인 경매 합법화 전설로 남을 뻔한 와인에 거대 자본이 불을 지핀 것은 1994년이었다. 뉴욕주가 와인 경매를 합법화하자, 런던 중심이었던 시장에 거대한 ‘월스트리트 자본’이 쏟아져 들어왔다. 경매는 본질적으로 희소성을 먹고 자란다. 연간 수십만 병이 쏟아지는 보르도 와인은 경매 시장에서 매력이 없었다. 반면, 1년에 고작 5~6천 병밖에 나오지 않는 로마네 꽁띠는 경매꾼들의 투쟁심을 자극하는 완벽한 먹잇감이었다. 이때부터 부르고뉴 와인은 ‘마시는 술’에서 ‘수집하고 투자하는 금융 자산’으로 성격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③ 수요의 폭발: 2000년대 ‘신의 물방울’ 신드롬 서구 자본이 올려놓은 가격에 아시아의 폭발적 수요가 기름을 부었다. 만화 《신의 물방울》은 한국, 일본, 대만의 부유층에게 "진정한 와인 애호가의 종착역은 부르고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특히 주인공이 찾아 헤매는 ‘12사도’ 와인 중 제1사도가 부르고뉴의 ‘조르주 루미에, 샹볼 뮈지니 레 자무레즈 2001’이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12사도 중 무려 3개가 부르고뉴 와인이었고, 작중 최고의 와인인 '신의 물방울' 후보로 끊임없이 앙리 자이에가 거론되었다. 이 만화의 히트로 아시아의 신흥 부자들이 보르도를 건너뛰고 부르고뉴로 직행하며 가격 상승의 압력은 극에 달했다.


관련 기사. 출처 조선비즈


한 병에 6000만 원, 로마네 꽁띠의 포도밭은 평당 얼마인가?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 위에 형성된 실제 가격은 어떨까? 로마네 꽁띠 밭은 시장에 매물로 나오지 않아 가격표가 없다. 하지만 영국의 파인 와인 투자사 아덴 파인 와인(Arden Fine Wines)이 여러 경제 지표를 종합하여 ‘역산(Reverse Engineering)’한 분석 결과는 놀랍다.


그들은 2017년 거래된 인근의 특급 포도밭 ‘클로 드 타르(Clos de Tart)’의 거래가(평당 약 1억 6천만 원)를 기준으로 삼았다. 로마네 꽁띠 와인 1병이 클로 드 타르보다 50배 이상 비싸다는 점, 그리고 절대적 브랜드 프리미엄을 대입하여 산출한 가치는 다음과 같다.


보수적 추정: 평당 약 2억 원 ~ 3억 원

최대 추정치: 평당 약 6억 8천만 원


강남의 아파트 평당 가격이 1억 원을 넘나든다고 떠들썩하지만, 프랑스 시골 마을의 흙밭은 그 6배가 넘는 가격을 호가한다. 이것은 단순한 농지가 아니다. 전 지구상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본주의가 빚어낸 가장 비싼 흙이다.


로마네꽁띠의 포도밭. 수도사들이 일궈왔던 포도밭이라는 의미로 십자가가 있다.


모두가 비합리적이기에 합리적인 선택이 된 강남 아파트와 로마네 꽁띠

포도밭 1평(3.3㎡)의 가치가 6억 8천만 원이라는 계산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이곳은 더 이상 포도를 재배하는 농경지가 아니다. 중세 수도사들의 기도, 앙리 자이에 같은 장인의 혼, 월스트리트의 자본, 그리고 《신의 물방울》이 만들어낸 이미지까지... 이 모든 무형의 가치가 가장 좁은 면적에 고밀도로 압축된 공간이다.


한강뷰를 가진 강남 아파트 그 부지가 아니면 새로 건축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부르고뉴의 그랑 크뤼 밭도 단 1평도 늘리기가 어렵다.


결과적으로 로마네 꽁띠는 그 자체로 '대체 불가능한 성공'의 상징이 된다. 수백억 원을 주고 한강뷰가 보이는 펜트하우스를 사는 것이나, 농지 한 평에 6억 원을 지불하는 것이나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


인간은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 하지만 모두가 그 비합리적인 욕망을 공유하기에,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합리적인 투자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 아니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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