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완벽한 실패, 금주법 106주년

미국 금주법이 낳은 광기와 문화

by 명욱


1920년 1월 17일 0시, 미국 전역에 정적이 감돌았다. 수정헌법 18조, 이른바 '금주법(Volstead Act)'이 발효되며 미국은 공식적으로 술 한 방울 없는 '건조한 국가'가 되었다.


훗 대통령이 된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이를 두고 "동기는 고귀하지만 그 과정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고결한 실험(The Noble Experiment)"이라 명명했다.


올해로 106주년이 된 이 법안은 과연 미국을 도덕적 낙원으로 만들었을까?


역설적이게도 이 법은 미국 역사상 가장 화려한 범죄의 시대를 열었고, 현대 음주 문화의 근간을 만들었다. 오늘은 술잔을 비우려다 국가의 곳간을 비우고, 도덕을 세우려다 갱단을 키운 금주법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1280px-5_Prohibition_Disposal(9)_(cropped).jpg 발견된 술을 폐기하는 모습. 출처 위키미디아
혐오와 세금의 합작품: 금주법의 탄생 배경

금주법은 단순히 술을 싫어하는 도덕주의자들의 아우성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 기저에는 100년 가까이 이어진 '문화 전쟁'이 있었다. 당시 미국 주류 사회였던 개신교도(WASP)들에게 술집(Saloon)은 타락의 온상이었으나, 아일랜드나 독일계 이민자들에게는 일자리를 찾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삶의 터전이었다. 즉, 금주법은 주류 기득권이 이민자 문화를 통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여기에 불을 지핀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당시 미국 맥주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앤하이저부시 등의 기업이 독일계였기에, "독일 황제의 맥주를 마시는 것은 매국"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결정적으로 1913년 '소득세(Income Tax)'가 도입되면서, 연방 정부 재정의 30~40%를 차지하던 주세(술 세금)가 없어도 국가 운영이 가능해지자 의회는 거침없이 금주법을 통과시켰다.


가진 자들의 파티

법은 엄격해 보였지만 허점투성이였다. 법은 술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했을 뿐, '음주' 자체나 시행 전 구매한 술의 '소유'는 처벌하지 않았다. 이를 간파한 부유층은 법 시행 직전 어마어마한 양의 술을 사재기했다. 예일 클럽(Yale Club)은 무려 14년 치의 술을 미리 쟁여두었다고 전해진다. 금주법은 결국 '가진 자들의 합법적 파티'와 '없는 자들의 불법 밀주'라는 극심한 사회적 양극화를 초래했다.


더 큰 문제는 0.5%라는 비현실적인 알코올 도수 기준이었다. 과일 주스나 김치 국물조차 상온에 두면 자연 발효로 넘길 수 있는 이 수치는, 사실상 모든 발효 식품을 잠재적 범죄 물품으로 만들었다.



기상천외한 생존법과 비극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길을 찾는다. 금주법 시대에 약국은 최고의 술집이었다. 의사의 처방전만 있으면 '의약용 위스키'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약국 체인 '월그린'은 매장이 20개에서 500개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심지어 소독약 냄새가 나는 스코틀랜드의 '라프로익' 위스키는 그 지독한 향 덕분에 약으로 인정받아 합법적으로 수입되기도 했다.


와이너리들은 포도 농축액을 팔며 "물에 섞어 따뜻한 곳에 두지 마시오(그럼 와인이 됩니다)"라는 친절한(?) 경고문을 붙여 법망을 피해 갔다.


하지만 어둠은 짙었다. 합법적 공급이 끊기자 알 카포네 같은 마피아들이 밀주 사업을 장악하며 기업형 범죄 조직으로 성장했다.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공업용 알코올' 음용이었다. 사람들이 페인트 희석제 등을 마시자, 정부는 이를 막겠다며 메탄올 같은 독극물을 섞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밀주업자들은 이를 대충 걸러 팔았고, 1만 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명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자국민을 상대로 화학전을 벌였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Raceland_Louisiana_Beer_Drinkers_Russell_Lee.jpg 금주법은 역설적으로 여성들의 음주 참여율을 높였다. 출처 위키미디아
빵이 도덕을 이기다

견고했던 금주법을 무너뜨린 것은 도덕적 각성이 아닌 '경제 위기'였다. 1929년 대공황이 닥치자 정부는 세금이, 국민은 일자리가 절실해졌다. "맥주를 통한 번영(Beer for Prosperity)"이라는 구호 아래,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금주법을 폐지한다. 헌법을 헌법(수정헌법 21조)으로 폐기한 유일한 사례다.


하지만 이 13년의 암흑기는 역설적이게도 현대 문화에 굵직하고 흥미로운 흔적들을 남겼다.


먼저,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경주 대회인 나스카(NASCAR)의 기원이 바로 이 시기다. 당시 밀주 운반책들은 경찰차보다 빨라야 했고, 무거운 술을 싣고도 뒤쳐지지 않아야 했다. 생존을 위해 평범한 자동차에 고성능 엔진을 얹는 튜닝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운반책들이 주말마다 "누가 더 운전 실력이 좋은가"를 겨루던 시합이 오늘날 거대한 레이싱 스포츠 산업으로 발전한 것이다.


칵테일 문화 또한 이 시기에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당시 욕조에서 대충 만든 밀주(Bathtub Gin)는 맛이 끔찍하고 냄새가 역했다. 이 조악한 술맛을 감추기 위해 사람들은 과일 주스, 설탕, 크림 등을 잔뜩 섞기 시작했고, 이는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다양하고 화려한 칵테일 레시피가 개발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변화는 여권의 신장이었다. 과거 합법적인 술집이었던 '살롱'은 남성들만의 금녀 구역이었다. 하지만 불법으로 운영되던 '스피크이지 바(Speakeasy Bar)'는 달랐다. 그 은밀한 공간에서는 남녀가 평등하게 어울렸고, 단발머리에 술과 담배를 즐기는 신여성 '플래퍼(Flapper)'들이 등장하며 견고했던 젠더 규범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After_End_of_Prohibition_New_York_Times_1933_3.jpg 금주법이 끝났다는 퍼모먼스를 하는 미국 시민들. 출처 위키미디아
"가장 나쁜 법은 지킬 수 없는 법이다"

금주법은 우리에게 "법으로 도덕을 강제할 수 없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사회학에서 말하는 '풍선 효과(Balloon Effect)'의 가장 완벽한 예시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불룩 튀어나오듯, 합법적 공급을 막으니 거대 마피아가 탄생했고, 안전한 술을 금지하니 독극물이 넘쳐났다.


리더십의 관점에서 볼 때, 후버 행정부와 금주법 찬성론자들은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제거의 대상'으로만 보았다. 하지만 훌륭한 리더는 욕망을 틀어막는 댐을 짓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도록 '수로(Waterway)'를 파는 사람이어야 한다.


1933년 이후 도입된 주류 면허 제도나 세금 정책처럼, 무조건적인 금지보다는 합리적인 '규제와 관리'가 훨씬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


"가장 나쁜 법은 지킬 수 없는 법이다"


구성원이 공감하지 못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규율을 강요하는 리더는, 결국 자신의 권위를 잃고 조직을 음지로 내몰게 된다는 사실. 이것이 100년 전 미국의 실패한 실험이 오늘날의 리더들에게 던지는 서늘한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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