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마 멸망 이후의 로마 제
1부 와인은 로마의 기본소득이었다에 이어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서기 476년 9월 4일,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수도 라벤나(Ravenna)에는 짙은 안개와 함께 무거운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다. 제국의 심장부였던 황궁 옥좌에는 공포에 질린 10대 소년이 앉아 있었다. 그의 이름은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아이러니하게도 로마의 건국자 ‘로물루스’와 제정 시대를 연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을 모두 가진 이 소년은, 위대한 제국의 문을 닫아야 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 앞에는 거구의 사내가 서 있었다. 한때는 제국을 지키던 수호자였으나, 이제는 제국의 숨통을 끊으러 온 게르만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였다. 그가 떨고 있는 소년의 머리에서 힘없이 황제관을 벗겨내는 순간, 천 년을 타오르던 로마의 태양은 영원히 저물었다. 견고했던 행정 시스템, 국경을 지키던 무적의 군단, 그리고 무엇보다 로마 시민들의 배를 불리고 취하게 했던 ‘안노나(Annona)’ 와인 배급 시스템까지. 제국을 구성하던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증발해 버린 것이다.
망국의 황제가 마신 ‘최후의 와인’
그렇다면 나라를 잃은 소년 황제, 로물루스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보통 폐위된 군주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 처형당하는 것이 역사의 불문율이다. 하지만 서로마를 멸망시킨 오도아케르의 처분은 기가 막힐 정도로 ‘쿨’하고 냉정했다. 그는 소년 황제를 죽이지 않았다.
“황제는 한 명으로 충분합니다. 저는 왕으로서 동로마의 황제를 섬기겠습니다.”
오도아케르는 황제관과 옥새를 콘스탄티노플(동로마)로 택배 부치듯 보내버린 뒤, 일설에 의하면 폐위된 소년에게 매년 6,000 솔리두스(금화)라는 막대한 연금을 쥐여주며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의 별장으로 유배를 보냈다.
여기서 역사의 지독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로물루스가 유배 간 캄파니아는 고대 로마 최고급 와인인 ‘팔레르노(Falernian)’의 생산지였다. 제국의 서민들은 안노나 와인이 끊겨 맹물을 마시며 굶어 죽어갔고 제국은 멸망했는데, 정작 나라를 잃은 황제는 와인이 흐르는 땅에서 최고급 빈티지를 마시며 천수를 누린 것이다. 권력은 무너져도 권력자의 와인잔은 마르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역사는 이토록 잔인하게 보여준다.
게르만의 테오도릭 대왕, 로마의 마지막 황혼을 빚다
로물루스를 폐위시킨 오도아케르 역시 영원할 수는 없었다. 그 또한 또 다른 게르만족인 동고트족의 왕 테오도릭(Theodoric)에게 ‘화해의 연회장’에서 무참히 살해당하며 권좌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야만인이라 불렸던 테오도릭은 의외로 로마의 향기를 사랑한 군주였다. 어린 시절 동로마에 볼모로 잡혀가 선진 문물을 배웠던 그는 무력으로 로마를 파괴하는 대신, 그 문화를 보존하려 애썼다.
그는 훼손된 콜로세움과 수도교를 보수했고, 로마 원로원을 존중했으며, 끊겼던 ‘빵과 와인’ 배급을 일부 부활시키기도 했다. 그의 치세 30여 년간 이탈리아는 마치 ‘마지막 황혼’과도 같은 평화를 누렸다. 황폐해졌던 포도밭은 다시 경작되었고, 로마 시민들은 게르만 왕의 보호 아래서 로마식 와인을 즐길 수 있었다. 비록 주인은 바뀌었지만, 와인의 맛과 문화는 잠시나마 제자리로 돌아온 듯했다.
고트 전쟁, 동로마의 구원인가 파멸인가
하지만 526년 테오도릭이 죽자, 이탈리아의 운명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로마 제국의 정통성을 이은 동로마(비잔티움) 제국은 왜 로마를 보호하지 않았는가?”
슬프게도 동로마는 로마를 ‘너무나 사랑해서’ 파괴해 버렸다.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옛 로마 땅을 야만족에게서 해방시키겠다”며 대군을 파견했다. 이것이 바로 20년 넘게 이어진 ‘고트 전쟁(535~554년)’이다. 로마 시민들에게 이 전쟁은 구원이 아니라 재앙이었다. ‘해방군’인 동로마군과 ‘점령군’인 고트족이 로마 시를 뺏고 뺏기는 공방전을 벌이는 동안, 도시는 철저히 짓밟혔다.
특히 고트족은 로마를 고립시키기 위해 도시로 들어가는 모든 수도교(Aqueduct)를 끊어버렸다. 물길이 끊기자 로마의 자랑이었던 목욕탕 문화는 사라졌고, 위생이 악화되어 전염병이 창궐했다. 전쟁 전 수십만 명에 달하던 로마 인구는 전쟁이 끝날 무렵 수천 명 수준으로 급감하여 유령 도시가 되었다. 로마 근교의 포도밭은 불탔고, 농토는 황무지로 변했다. 동로마군이 가져다준 것은 자유가 아니라 멸망이었다. 와인 통이 깨지고 물길마저 끊긴 로마에 남은 것은 폐허뿐이었다.
암흑의 시대로, 찢겨진 반도
동로마가 상처뿐인 승리를 거두고 이탈리아를 차지했지만, 그 힘은 오래가지 못했다. 568년, 알프스 너머에서 더 거친 야만족인 랑고바르드족(Lombards)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두 조각이 났다. 내륙은 랑고바르드족이, 해안가는 동로마 총독이 간신히 유지하는 형국이었다.
이 시기 로마 교황은 그야말로 ‘고립무원’의 처지였다. 명목상의 보호자인 동로마 황제는 너무 멀리 있었고, 당장 코앞에서는 랑고바르드족이 칼을 겨누고 있었다. 와인과 문명의 중심지였던 로마는 이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PS: 제 3부, 로마가 멸망한 이후에 어떻게 기독교가 헤게모니를 잡았는지로 이어집니다.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