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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Jun 03. 2019

한국산 와인, 과연 경쟁력이 있을까?

의외로 가능성 높은 한국와인의 미래


한국 와인과 국산 와인


약 14년 전, 외국 손님과 여느 호텔에서 식사를 할 일이 있었다. 모처럼 한국에 온 만큼 우리 와인으로 식사를 하고 싶어 소믈리에에게 문의를 했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국산 와인은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저렴하다는 인식에, 대부분의 와인 원액이 외국산이라고 했다. 벌크로 수입해서 병입만 한국에서 하는 것이 당시의 국산 와인의 현실이었다. 게다가 음식과의 매칭을 중요시한 맛이라기보단 그저 단맛을 추구한 제품이었다. 이러한 국산 와인이 최근에 재도약을 하려고 하고 있다. 최고급 호텔에서 지속적으로 취급하는 제품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와인 산업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맛이라도 좋아진 것일까?


오미자 와인 오미로제. 최고가 와인으로 10만 원에 육박한다. 현재 다양한 특급 호텔에서 판매중이다. 


1970년 대 본격 시작한 와인, 90년 대 점점 사라져

한국 와인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70년대이다. 해태 주조, OB 등에서 적극적으로 만들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에서 리슬링 와인을 맛보고, 한국에서도 만들자고 지시를 내린 것이다.  비옥한 땅에는 곡식 농사를 척박한 땅에는 포도를 심어 와인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영천, 포항, 경산 등지에는 포도밭이 조성이 되었고, OB에서 마주앙 등을 출시한다. 80년대 한국의 와인은 호황 길을 걷지만, 90 년 대 와인의 수입자유화와 맞물려 경쟁이 심해지자 국산 와인은 점점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 무엇보다 수입 와인은 와인이 태어난 환경과 역사, 다양한 품종과 음식을 매칭 하며 소개를 하지만, 기존의 한국의 와인은 그저 저렴하게 많이 납품하는 방식으로만 영업을 해 왔기에 마케팅적인 감성도 부족했다. 결국 한국에서 발효 및 숙성하는 것을 포기하고, 외국에서 원액을 벌크로 수입, 병입만 해서 판매하는 명맥만 유지하게 된다. 


예산사과와이너리에서 브랜디를 오크통에서 직접 넣어주고 있다. 


전문가로부터 외면당했던 국산 와인

2000년대 초반부터 다시 국산 와인은 움직이게 된다. 직접 재배한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형 농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낙 기술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직접 재배한 포도 당도가 부족한 상황이 많았다.

당도가 낮으면 알코올 도수가 낮고, 낮은 제품은 고가에 팔릴 수 없고 맛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와인 전문가 들은 한국은 와인 생산의 불모지라고 했다.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일조량이 풍부한 유럽 등과 달리 한국은 비가 오는 횟수가 많았다. 더군다나 물을 머금는 점토질의 토양이었다. 결국 주변에 수분이 너무 많았다. 이렇게 되면 포도열매에 수분이 많아져 당도가 낮아진다. 당도가 낮으면 높은 도수의 와인을 제조하지 못하며, 고품질의 와인으로도 이어지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전문가는 한국에서 와인 제조는 무리라고 했다. 


산머루 와이너리의 산머루. 사진 이상윤

 국산 와인에서 한국 와인으로

이러한 국산 와인이 10년 전부터 변화를 꾀하고 있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다. 우선 명칭에 대한 것부터 정리했다. 기존에 한국에서 만드는 와인은 모두 국산 와인이라고 불렸다. 문제는 수입산 원액으로 만들어도 국산 와인이라고 말을 했던 것. 그래서 이렇게 수입 원액과 차별화를 하기 위해 한국 와인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미디어와 생산자들이 부르기 시작했다. 즉 국산 와인은 외국에서 원액을 수입해 한국에서 병입 한 것, 한국 와인은 직접 재배한 포도로 만든 것이다. 동시에 당도가 낮은 포도 품종에 대한 보완책을 찾는다. 첫 번째는 와인 원액을 얼려서 수분을 제거하는 방법. 물은 0도에서 얼지만 알코올은 -114도에서 언다. 이 어는점의 차이를 이용, 먼저 동결된 수분을 제거하면 자연스럽게 도수 높은 와인이 만들어진다. 또 포도 자체를 반건조 상태로 만들어 수분을 빼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하면 당도가 기존의 포도보다 20% 이상 높아진다. 기존의 수입 레드와인이 떫은맛의 대명사 타닌 감을 중시한다면 한국 와인은 산지라는 특성과 우리 농산물이라는 장점을 살려 더욱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수입 와인의 장점을 따라가려고 했지만, 역으로 우리 겉만의 것을 살리기도 했다. 디자인도 예전과 같이 천편일률적인 것이 아닌 우리만의 디자인을 추구하려고 한글 켈리가 들어갔다. 


다양한 체험


원료에 대한 신뢰, 와이너리 체험으로 극복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와인을 아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와이너리를 가보면 생각이 많이 바뀐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통해 만들어지는 포도나무의 관리와 열매, 그리고 최대한 수분 섭취를 적게 하고 일조량을 높이기 위해 비닐을 씌우고, 바닥에 반사 물질을 깔때도 있다. 포도가 잘 자라는 사질토를 찾아 산기슭에 밭을 운영하는 곳도 있으며, 포도 수확을 할 때 최대한 벌레들이 활동이 덜 하는 시기를 찾아 새벽에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농업은 자연과의 사투이며,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와이너리가 알려준다. 


최고가 오미자 브랜디 고운달


시장은 반응을 했다

이렇게 하나씩 극복을 해 나가자 시장은 반응하기 시작했다. 광명동굴에서는 한국 와인을 중심으로 와인 연구소를 만들었으며, 미슐랭 3 스타 신라호텔 라연과 그랜드 하얏트 호텔 000에서 한국 와인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저렴하게 즐기는 것이 아닌 미식가와 호텔 레스토랑 등의 고급시장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만찬주로 한국 와인이 선정된 것도 좋은 역할을 했다. 충북 영동의 여포의 꿈은 2018년 이방카 트럼프가 방한했을 때 만찬주로 쓰였으며, 2012년 핵정상 건배주에는 문경의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 오미로제 등이 선정되었다. 2016년 우리 술 품평회 과실주 부분에서는 한국 와인인 그랑꼬또 청수가 최우수상을 수상한다. 무엇보다 하나를 소비하더라도 의미를 찾는 소비자들이 전통주 및 지역 특산주의 인터넷 판매 규제가 풀리며 다양한 지역 술을 인터넷으로 구입하고 있다. 광명동굴와인연구소 최정욱 소장은 전국의 150여 개의 와이너리에서 700 종 이상의 와인을 만들고 있다고 추정된다며, 이렇게 다양한 와인 속에 내 입맛에 맞는 와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일본 와인 샤토 메르샹. 라벨에 구멍을 뚫어 포도 색을 살짝 표현했다. 


한국 와인의 지표를 알 수 있는 일본의 상황은?

일본도 자국산 와인은 한때 아류로 취급을 했다. 단맛 위주의 단순한 와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0년, 그리고 2013년에 자국의 포도인 고슈(甲州 Koushu)와 MBA품종이 OIV라는 국제와인기구에 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일본 와인(Japanese Wine)이라는 이름으로 홍보를 시작한다. 지역의 문화를 담은 와이너리는 물론, 맛에 대한  가치도 있지만 무엇보다 여행, 인문학, 그리고 농업의 가치를 홍보해 나갔다. 동시에 일본 와인업계는 프랑스 요리 및 이탈리아 요리가 자국의 와인과 잘 맞는다고 홍보하지 않았다. 바로 자국의 음식인 일식과 잘 어울린다고 했다. 그리고 이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프랑스 요리, 이탈리아 요리 등보다 일식 시장이 훨씬 큰 것이었다. 이를 통해 현재 일본항공 및 ANA의 퍼스트 클래스에는 일본 와인이 제공이 되며, 일본 내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일본 와인은 없어서는 안 되는 주종이 되었다. 이에 산토리, 기린 등의 대기업들도 더욱 본격 진출하며 병당 5만 원, 10만 원의 고가 와인을 출시한다. 대기업이 고가 와인을 출시하다 보니 기존의 업체들도 무조건 싸게만 만들지 않았다. 지역의 농산물, 문화, 풍광을 담아 고부가가치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일본 와인은 자국 내에서도 프리미엄 취급을 받는다. 자국의 농산물만큼 신뢰가 확실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가심비로 들어가는 한국 와인 시장

결국, 한국 와인은 단순한 가성비로 따지는 제품이 아닌, 의미를 찾고 다른 것을 찾는 소비자에게 맞는 제품이다. 기존의 제품과는 다른 새롭고 나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제품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장은 기존에 와인 애호가, 와인 유통업체가 진입하기 쉬운 제품군은 아니다. 저렴한 칠레 와인보다 가격도 높으며, 프랑스 와인보다 디자인 등도 아쉬움이 남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양해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 농부가 1년 내내 키운 농산물로 만든 와인을 즐긴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이 와인을 빚는 사람과  직접 소통을 할 수 있다.

수입 와인을 즐기는 것 나쁘고 우리 와인 소비는 무조건 좋다는 이분법적인 논리가 아니다. 다양하게 즐기는 것이 중요하고, 각자의 가치를 생각했을 때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것이 포인트다. 


다변화되는 시대에 절대적 가치가 붕괴되는 현대 사회, 와인 역시 새로운 바람을 맞이하고 있고, 그 중심에 서는 것이 바로 한국 와인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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