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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Jul 28. 2019

동학혁명이 남긴 술, 정읍 죽력고

아픈 역사 속에 남긴 흔적과 교훈


전봉준 장군의 술 죽력고


얼마 전 역사 드라마 녹두꽃이 많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으며 끝났다. 동학혁명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 드라마는 구한말의 탐관오리 들의 모습부터 그를 통한 민초들의 고통, 그리고 외세의 침략 등, 당시의 뼈저린 시대상을 잘 보여줬다는 평이다. 그런데 이 전봉준 장군이 마셨다는 술이 있다. 매천 황헌의 오하기문(梧下記聞)이라는 문헌에 등장하는 이 내용은 전봉준 장군이 전북 순창 쌍치에서 일본군에 모진 고문을 받고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이때 죽력고라는 술을 마시고 원기를 회복, 허리를 꼿꼿이 편 상태에서 서울로 압송당했다고 한다. 

전투에서는 졌지만 패배한 것이 아니라는 그의 의지를 알 수 있다. 


가을의 내장산. 출처 정읍시


죽력고의 뜻 풀이는?

죽력고의 한자를 풀이해보면 대나무 죽(竹), 스밀 력(瀝), 기름 고(膏) 자다. 대나무의 기름이 스며져 있는 술, 즉 대나무의 수액으로 만들어진 술이라는 의미다. 동의보감에는 죽력은 혈압을 다스리며 피를 맑게 하고, 중풍 , 뇌졸중 질환 등에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이 술을 만드는 곳은 전북 정읍. 동학혁명이 시작한 곳으로 남쪽은 순창과 장성군, 그리고 노령산맥 줄기인 아름다운 단풍나무숲, 내장산이 있는 곳이다. 


험난한 죽력고 만들기

복잡한 이름답게 죽력고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매우 험난하다. 우선 죽력부터 만들어야 한다. 죽력은 대나무를 약한 불에 구울 때 나오는 수액인데, 그냥 구우면 다 증발되기 때문에 섬세한 공정이 필요하다. 우선 대나무를 잘게 쪼갠 후에 항아리 속에 빽빽하게 넣는다. 그리고 항아리를 거꾸로 세워 황토를 발라주고, 말린 콩대로 덮고 태워 불씨를 만든다. 그 불씨 위에 왕겨를 올리고 3, 4일 동안 은은한 불속에서 구워내면 거꾸로 세워 놓은 항아리 뚜껑에 죽력이 모인다. 

죽력을 만드는 송명섭 명인. 항아리 속에 대나무를 쪼개서 꽉 채워야 한다. 그리고 옅은 불로 3~5일간을 구워내면 대나무 속의 기름 죽력이 나오게 된다.

 항아리 하나에 나오는 죽력은 1.5리터 정도. 이렇게 얻어낸 죽력에 석창포(창포), 계심(계피), 솔잎, 생강을 3, 4일간 넣어 놓으면 약재가 죽력을 머금는다. 따로 발효시킨 발효주의  맑은 원액을 소줏고리 아래쪽에 넣고, 죽력을 머금은 약재를 위에 넣으면, 술이 끓는 순간 올라온 기체가 약재의 맛과 향을 머금고 내려온다.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죽력고가 완성된다. 알코올 도수 32도의 독주임에도 시원한 박하 향이 느껴진다. 마치 대나무밭에 서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죽력고를 만드는 인물, 송명섭 명인

현재 이 죽력고를 만드는 인물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3호이자 식품명인 48호인 송명섭 씨, 그는 직접 재배한 쌀과 누룩으로 무감미료 막걸리를 빚는다. 덕분에 막걸리 맛이 칼칼하고 드라이하다. 전혀 단맛이 없는 것이 시중 막걸리와는 확연히 다르다. 두터운 팬층을 가진 이 막걸리의 이름은 송명섭 막걸리.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딴 술이다. 



정읍 태인면에 있는 피향정. 최치원이 세웠다는 정자다. 출처 문화재청

구한말, 수탈의 현장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정읍 피향정

송명섭 명인이 있는 정읍 태인면에는 피향정이라는 통일신라시대 최치원이 세웠다는 정자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 정읍의 군수였던 인물들의 비석이 놓여있다. 흥미로운 것은 동학운동의 촉발제가 되었던 고부군수 조병갑의 부친인 조규순의 영세불망비(비석)도 있다는 것. 당시 조병갑은 이 영세불망비를 세우고자 농민들에게 수탈을 더 진행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것이 동학혁명이다. 그런데, 다른 군수 및 현감의 비석과 달리 조규순의 비석은 색이 달랐다. 시간이 지나도 늘 변하지 않는 비석. 바로 최고급 수석인 오석(烏石)이라는 돌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비석을 세우고자 농민들에게 수탈을 진행했다. 동학혁명은 단순한 역사 속의 사건이 아닌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탐관오리 조병갑의 아버지 현감 조규순의 영세불망비. 다른 비석들과 색이 다르다. 최고급 비석인 오석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수탈은 이러한 것부터 진행되었다. 


동학혁명의 의미를 생각하며

죽력고는 전봉준 장군이 마시고 서울로 압송되었다는 슬픈 역사 속의 술이지만, 패배의 술은 절대 아니다. 동학혁명이 남긴 자주성과 독립성이 우리 역사 속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작년 4월, 전봉준 장군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종각역 영풍문고 자리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국민 성금 2억 4천만 원으로 세워진 동상이다. 125년 전, 그는 국가의 존망과 미래를 위해 피를 깎는 고민을 했다. 그리고 그 동상에는 그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일본과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가 고민한 것을 한 번 더 바라볼 필요가 있다. 

죽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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