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와 나는 겨울밤 전화 한 통으로 끝을 맺었다. 그날 우리는 각자의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연히 마주쳤지만, 그는 나를 보고도 아는 척 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몇 마디 주고받던 중 그는 갑작스럽게 말했다.
"나 진짜 바쁘고 피곤해. 너 신경쓰기 싫어
너도 그냥 네 인생을 살아.
네가 기대할까 봐 더 이상 사랑한다는 말도 못하겠어."
허무했다. 본인의 행동으로 인해 서운함을 토로한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일방적으로 끝낼 수 있을까. 그 날밤, 나는 너를 이해해보려고 나를 비난하며 수천번 찔렀는데. 너는 어떻게 네가 힘들다고 나를 이렇게 버릴 수 있는지, 정말 끝까지 이기적이라고 느꼈다. 이렇게 끝날 사이밖에 안 되는데, 너는 왜 나에게 네 알량한 사랑을 변하지 않을 무언가처럼 속삭였을까. 나는 또 그말을 쉽게 믿으며, 끝까지 움켜쥐고 있었을까.
이별은 아팠다. 차라리 잘된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가, 어쩔때는 아무렇지 않게 연락하면 받아줄 것 같다가, 화가 났던 그날밤의 내가 너무 안쓰럽다가, 또 너무 화를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가, 마지막 순간 우리가 주고받았던 대화들과 D의 목소리, 차갑고 회피적인 말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었다. 마냥 눈물이 났고, 아무런 기운도 나지 않았다. 나는 자책과 원망과 희망과 절망이 만들어내는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거리를 걷다가는 주저 앉아 빌었다. 제발 누군가 나를 살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책, 블로그, 유튜브를 뒤져가며 이별 극복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아니, 재회 유튜버들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재회 칼럼이 있길래 그것도 봤다. 이별 극복을 쳤는데 재회가 나오니 자꾸만 희망이 생기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이별 콘텐츠에 푹 빠져 주말 내내 보내고 나니,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나 아직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거구나.
끊어진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또 다른 가능성을 움켜쥐고 있었구나.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생각했다. 우리는 끝났다고.
머릿속에서 무한정 재생되는 이별의 마지막 순간을 끄고 되뇌었다.
우리는 없다.
우리는 끝났다.
이별은 내가 원하는 날, 나의 마음상태를 봐가며 찾아오지 않는다. 그냥 갑자기 쾅 하고 찾아와도 나는 그 이별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D의 집에서 나를 비난하던 날의 나는, 그와 헤어지면 죽을 것 같아서 나를 비난한 것 처럼, 그 사람은 나와 함께 있으면 죽을 것 같으니 그만하자고 했을 것이다. 우리는 끝났지만, 너와 나는 계속해서 살아야했다.
이별을 한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나 라는 집에 들어왔다가 다시 이사를 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간 자리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동전도, 쓰레기도 보게된다. 이제 나는 집주인으로서 이사나간 그 자리를 깨끗하게 쓸고 닦아 다시 정돈해야만 한다. 이사가는 시점에서 그 사람이 모진 말로 잔뜩 쓰레기를 버리고 나갔더라도 너무 많이 슬퍼하지는 말자. 쓰레기는 그냥 버리면 되니까. 그 말들에 마음이 너무 아파서 계속 쓰레기를 쥐고 있다 보면, 어느새 집도 더욱 오염될지도 모른다. 내 집에 있는 그 쓰레기도 갖다 버리고 집도 정돈하다보면 어느새 괜찮아질 것이다.
그렇게 집을 정돈하고 나면, 또 문을 활짝 열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