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광양에서 지도할 때였다.
사범으로 파견되었다가
결혼 후 나름 열심히 지도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지도를 시작한 것은 처음이었지만
선생님의 말씀과 수련 경험을 통해
알고 있던 모든 것을 설명하며 지도했다.
선생님 곁에 있었다는
자부심과 특권의식은 자신감을 높여주었고
수련지도가 특별히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인근에서 치과를 운영하며 열심히 수련하던 도반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원장님, 저 그만하려고요.”
“아니 왜요?”
“호흡이 잘 안 내려가요.”
순간 당황했다.
'수련을 그만둔다니.'
당시 내 관점에서
수련을 그만둔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수련법에 대한 믿음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처음으로 그만두는 도반이 생긴 것이다.
아마 순간적인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1년 이상 열심히 수련하던 분이었으니까.
그 말을 꺼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나도 안다.
당시의 수련 프로그램은
체조
행공
본수련의 순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회건술로 마무리했다.
그것이 곧 수련지도였다.
나는 초창기 사범이었다.
선배들은 있었지만
지도법을 배운 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호흡이 잘 안 되는 도반들을 위해
기를 보내 수련을 돕거나
아랫배에 손을 올려
호흡을 유도하는 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이 방법은 초심자에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막상
“그만두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더 해줄 말이 없었다.
정확히는
도반님의 상태를 알지 못했다.
그저 행공과 호흡수련을 열심히 하면
잘 되겠지 생각하는 정도였다.
그 한마디는
사범으로서
지원장으로서 처음 느끼는 충격이었다.
이 즈음의 나는
삶의 중심에 수련이 있었다.
수련을 하지 않는 삶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날 이후
도반님의 호흡이
왜 내려가지 않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음은 자꾸 답답해졌다.
호흡 상태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대상은 초보자들이다.
처음에는 누워서 수련을 한다.
이를 와식이라고 하는데, 몸의 긴장이 가장 잘 이완되는 자세다.
어느 날이었다.
수련지도를 하다가 문득 한 도반에게 눈길이 갔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호흡이 어색해 보였다.
숨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몰랐다.
하지만 몸이 불편해 보인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수련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다가가
누워 있는 도반님의 배를 천천히 풀어주었다.
그러자
호흡이 편해지고
깊어지는 것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
'배를 풀어주면
호흡이 달라지는구나.'
그날 이후
누워 있는 도반들을 볼 때마다
배를 풀어주기 시작했다.
효과는 분명했다.
거칠었던 호흡은 잦아들었고
억지로 하는 호흡이 아니라
몸이 스스로 숨을 쉬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이 방법으로
3년 가까이 초보자들을 지도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수련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호흡을 바꾼다는 것은
달리다 탈선한 기차의 바퀴를
움직이는 상태에서 다시 레일 위에 올려놓는 일과 같았다.
이 과정을 거듭할수록
손의 감각은 익숙해졌다.
효과에 대한 확신이 생기자
후배 사범들에게도 전했다.
그들 역시 직접 체험한 뒤
같은 방식으로 지도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같은 방법이라도
무릎을 세워 풀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릎을 세우면
배의 긴장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알게 된 첫 번째 호흡지도법이다.
'호흡은 억지로 바꾸는 것이 아니구나.
배를 풀어, 호흡이 스스로 내려가게 해야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