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모르기 때문에 배우기도 하고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을
다시 배우기도 한다.
누구나 노래를 하지만
더 잘 부르기 위해 배우고
누구나 말을 하지만
설득하고 소통하기 위해 다시 배운다.
숨 또한 마찬가지다.
살아 있는 한
죽을 때까지
저절로 쉬어지는 것이 숨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양한 목적을 위해 호흡법을 배운다.
호흡법을 배울 때
사람들은 대개 열심히 하려고 한다.
숨의 길이를 맞추고
더 깊게 쉬려고 애쓴다.
배운다는 것은 곧
노력해야 한다는 뜻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 역시
처음 수련을 시작했을 때 그랬다.
날마다 아무 생각 없이 쉬던 숨을
의식하며 쉬려니 도무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고민 끝에 선택한 방법이 이단호흡이었다.
코로 숨을 깊이 들이쉬고
다시 힘을 주어
아랫배로 내려보내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숨을 다루고 있으니
사범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끊어서 하지 말고
한 번에 아랫배까지 자연스럽게 내리세요.”
“가늘고 길고 깊게 호흡하세요.”
그 말을 따라
숨을 가늘고 조심스럽게 쉬며
아랫배까지 내리는 연습을 했다.
인간은 참으로 노력의 동물이다.
노력하면 된다고 믿고
실제로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게 연습하다 보니 나중에는
남들에게 방법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다.
문제는
그렇게 익힌 방식이
시간이 지나면서 몸에 굳어버린다는 데 있다.
말로는
자연스럽게 하라고 하지만
반복될수록
인위적인 호흡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자리 잡는다.
굳어진 호흡 패턴을 다시 풀어내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사범의 말이 잘못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문제는
그 말들이 애써 만들어야 할 방식이 아니라
호흡이 도달해야 할 목표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렇게 지도하지 않는다.
가만히 두어도 내려오는 숨을
억지로 내려보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대신 필요한 것은
자기 몸을 믿고
몸의 기능에 함부로 개입하지 않으려는 용기다.
먼저 자신을 믿고
자신의 몸을 믿어주어야 한다.
불필요한 개입을 하지 않게 되면
호흡은 자연스럽게 흐르기 시작한다.
그때 비로소
방향을 잡아줄 수 있다.
숨이
서서히 단전에 이르기 시작하면,
단전은
스스로 호흡을 이끌어 간다.
사범이 말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하며
가늘고 길고 깊은 호흡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