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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기덕희덕 Aug 22. 2022

실수를 대하는 방식

미술재료를 다루는 기술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화가가 무심히 백지에 시원시원하게 스케치를 하고,  드로잉재료나 채색재료로 색을 올려 그림그리는 장면은 많이 봐왔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기 전 작업을 계획하고, 적절한 미술재료를 고르고, 원하는 작업을 위해 다양한 보조제, 그리기 도구를 선택하고, 작업과정에서 신중을 기하며 다룬다.


작년부터 동양화실을 다니고 있다. 먹을 익히고, 채색하는 방법을 배우는데 상당시간이 필요해 그 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졌다. 수업료를 낼 때마다 본전 생각이 자꾸 났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경험한 것과는 차이가 컸다. 서양화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보기 쉽지만 동양화는 보기 드물다. 유튜브 영상으로도 서양화에 비해 동양화 작업영상이 훨씬 적다. 독학은 불가능하다. 내 기준에서는 일단 재료를 한눈에 좌악 펼치고 이것이 어떤 성질인지, 어떤 용도인지 충분히 이해를 해야 가능한 일이다.

한지는 물흡수가 매우 빠르다, 날까로운 연필은 종이를 훼손시키고, 잘못그어진 선을 지우개로 지우면 종이에 보풀이 생기고 떠버린다. 물을 적당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아교반수를 하고, 보관을 위해 완성작은 배접을 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종이를 상전모시듯 해야한다는 뜻이다. 재료의 여린 물성은 실수에는 더 가차없다. 물조절이 잘못되면 순식간에 번져버리고, 잘못그어진 선은 절대 수정불가이다. 물이 번져나가길 막기위해 휴지로 붓길을 막거나 이미 벌어진 실수를 유연하게 받아들여 새로운 이미지로 재창조 한다. 그리고 색감도 예민하게 받아들여 통일감을 위해 색을 한번에 만들어놓고, 농담을 유지하며 채색해야한다. 이것저것 즉흥적으로 색을 섞어 만들며 느낌에 따라 칠하다보면 그림에 얼룩이 지고 지저분해진다. 꽃잎을 칠할 색 하나는 만들기 위해 몇 분을 소요해서 다량 만들어놓고 쓴다.



이 그림은 7주간에 걸쳐 완성한 그림이다. 주에 한번 2시간에 작업하다보니 더 오래 걸리는 느낌이지만 물감을 말리고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시간이 필요하다. 그림의 본을 만들고, 트레싱지와 먹지를 이용해 한지에 그림을 옮긴다. 색감을 잡기 위해 호분과 먹을 필요한 부분이 미리 밑칠을 한다. 그리고 꽃잎, 잎색을 정해 한면한면 정성스럽게 채색한다. 색칠공부하는 것같은 답답한 느낌이지만 색이 칠해진 모습을 보면 절로 이게 뭐라고 이렇게 이쁠 일이냐 감탄을 하게 된다.


한국화의 채색화처럼 서양의 수채화도 물의 성질을 활용한다. 그러나 물을 다루기 위해 종이를 압축시켜 가공하고, 보조제로 물이 마루는 시간을 늦추고, 채색을 차단하는 마스킹액으로 실수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한다. 동양화는 그에 비해 실수에 무방비 상태이다. 대신 그 재료의 성질을 최대한 수용하고, 귀하게 여기는 태도를 끝까지 유지한다. 그리고 어쩌다 한 실수를 닦아내고, 잘라내기보다 그려진 표현 자체에 창의력을 발휘한다.

최근 유행하는 미술재료가 있다. 바로 오일파스텔.. 실수에 관대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재료라고 생각한다. 생긴 모양새가 뭉뚝하고, 진득하고 두터운 질감을 표현하게 한다. 툭 잘못나간 선이 그대로 멋이 되고, 잘못칠해지면 긁어내거나 다시 다른 색으로 올려 칠하면 감쪽같이 실수는 가려진다. 오일파스텔은 유화의 특성을 그대로 담은 재료이다. 유화는 물감의 특성과 함께 다양한 보조제로 채색의 기술을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다. 블랜딩 기법, 웨트 온 드라이 기법, 나이프 페인팅 기법 등은 색을 자유롭게 쓰게 하며 실수도 가볍게 해결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수채화와 한국화를 다시 배우기 전까지 나의 애정하는 재료는 오일파스텔과 유화, 아크릴물감이었다.

그림을 다시 배우려고 했을 때 수채화에 먼저 도전했다. 한번은 제대로 배워 더이상 겁을 내지 않고 싶기 때문이었다. 물에 물감을 얼마나 섞어 붓에 담아야하는지, 조색은 어떻게 하는지, 어떤 순서로 채색해야하는지, 완성은 어떻게 해야하는지가 그림그리는 과정에 포함된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는 실수를 다루는 법이 채워줘서 끝까지 그림그리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수채화는 어느 정도는 복구가 가능했다. 종이가 완전히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로 닦아내고 다시 말린 후 그 위에 채색하면 실수를 무난히 해결할 수 있었다. 건조가 빨라 원하는 효과를 내지 못하면 보조제를 사용하면 되었다. 그러나 동양의 채색화를 사정이 다르다.

이렇게 공을 들일 일인가..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학원을 가기 전 이번 달까지만 하고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동안 실수를 다루는 방식에 익숙했던 나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무조건 새로 지워서 다시 그리거나, 실수를 덮는게 편했는데 동양화에서는 실수를 최대한 피해서 줄이거나 실수 자체를 받아들여야 했다. 대립적인 방식에 그림 그리는 과정이 불안했고, 화실선생님에게 의존하게 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그냥 그림 한 장일 뿐인데..

내 인생의 실수를 떠올려보게 된다. 그림과 같이 덮거나 피하는 것이 나에게 익숙한 방식이다. 실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너무 힘이 들어가는 일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여유를 갖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실수를 저질렀다는 자괴감과 죄책감이 방해하기 때문이다. 온전히 받아들여야 다음이 있음을 알지만 늘 어렵다. 하지만 그 어려운 방식을 그림을 통해 작게나마 경험치를 쌓아나가다보면 나아질 것이다. 내가 그 일을 얼마나 소중히 대했는지 그 과정을 얼마나 의미있게 담고, 하나하나 실행에 옮겼는지, 그 실수를 어떻게 대했는지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그러고 난 후 결정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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