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희망을 꿈꾸는 시간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몸의 통증을 순서대로 만나고 있다. 정강이, 무릎, 발뒤꿈치, 종아리, 골반.. 처음엔 스트레칭, 마사지하고 잘 쉬면 그럭저럭 움직일 만 했는데 왼쪽골반 쪽 중둔근이 찢어질 듯 아프고, 오른쪽 종아리에 찌릿한 기분나쁜 통증이 있어 일주일가량 쉬었다. 운동샘은 쉬고, 마사지하고, 요가를 해보라고 권해줬다.
아 맞다.. 요가가 있었지..
발목을 접질린 바람에 시작한 요가는 자격증까지 따게 할 정도로 나에게 중요한 돌봄의 수단이었다. 코로나로 시작된 ‘오프닝’ 루틴에는 명상, 요가, 일기가 있었고, 이 세 가지로 그 시기를 잘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일이 재개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루틴이 흐지부지 되었다. 요가는 달리기와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대체되었다.
최근에 해왔던 일이 틀어진 후 생활패턴이 망가졌다. 그래서 가장 잘 통했던 ‘오프닝’ 루틴을 부활시켰다. 확언리스트에 ‘마라톤’이 포함되면서 주 3회 달리기가 루틴 사이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요가는 필요에 맞게 웜업, 쿨다운, 재활의 역할로 변형되었다.
유튜브의 요가영상을 찾아보고 마음에 드는 채널을 몇개 골라 놓았다. 요가원에 가면 한시간 가량을 수련하는데 유뷰브 영상들은 30분을 넘지 않는 15분 내외의 영상이 많았다. 역시나 몸을 풀어주는 과정 없이 바로 주제에 맞는 아사나(자세)로 시작했다. 이른 아침에 해서 그런지 몸이 굳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요가원을 다닐 때에도 아침에는 일찍 가서 따로 관절을 풀어줘야 겨우 따라갈 수 있었다. 이제 내 몸은 어린 몸이 아니라는 걸 자꾸 깜빡한다.
이런 상황은 일에서도 마찬가지로 무엇이든 일을 시작할 때는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면서 추진하는 힘도 약하고, 버티는 근력도 떨어져 준비하는 시간을 단축시켜 서두르게 된다. 그리고 속도를 정신력으로 ‘끌어 올려~~~’야 하는데 누굴 위해서 그렇게까지 해야하는건지 멈추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기에 어떤 동기가 확실하거나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거나 사회가 정해준 맹목적인 가치를 내면화하여 따르거나 자신만의 비전과 꿈이 분명하다면 정신력을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일단 나에게는 이 느린 흐름이 나쁘지 않다. 이 느림을 세상이 시간을 허락하고 과정을 이해하고, 수용하여 그만한 가치와 댓가를 준다면 말이다. 앞으로도 계속 시간당 페이로 연명하며 소비적인 서비스 제공자로 살아가야한다면 이 일을 계속하지 못할 것 같다. 이런 현실적인 상황을 잘 뜯어보고 일의 효율을 위해 복합적인 가치를 해체하고 단순화해서 하나만 지긋이 다루는게 필요하겠다.
갑자기 글의 방향이 다짐으로 흘러가는걸 보니 연말이 맞긴 한가보다. 지난 일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틈틈이 생각하는 요즘이다. 가장 잘한 일은 달리기를 시작한 것이고, 가장 가슴 설레는 일은 미술이고, 가장 괴롭게 한 것은 외로움이다. 하지만 홀로보내는 시간으로 인해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무겁게 어깨에 올려놓았던 것은 내려놓고, 사람들과의 접촉이 더욱 따뜻했다. 달리기는 하면 할수록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었고, 미술은 예전에 포기했던 꿈을 기억하게 했다.
‘예열’은 사전적 의미로 미리 가열하거나 덥히는 일이다. 오븐의 점화나 엔진의 시동이 잘되게 하기 위함이다. 지금 나에게 ‘예열’은 현실적인 희망을 품게하는 과정인 것 같다. 달릴 때 몸이 제 기능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마사지와 요가, 스트레칭이 예열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상담을 시작하며 내담자와 친밀감을 갖는 과정도 예열하는 시간이다. 또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위해 갖는 자료수집, 이론점검, 아이디어 구상하는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뭐 시간이 좀 더 걸리면 어떠냐.. 나이듦이 주는 최대 혜택으로 잠도 짧아지고, 사소한 만남도 줄어서 시간이 많다.
모든 세상만물이 하늘이 정해준 순리대로 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내 몸이 이렇게 소중하고 감사할수가!
이런 나에게 건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