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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기덕희덕 Nov 01. 2022

애도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나누고, 지켜야 하는가

일요일 아침..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 유튜브 앱을 열었다. 쇼츠영상에 ‘이태원 149명 압사’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누군가의 장난같은 제목에 설마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보았다. 지금같은 시대에 이게 말이돼? 믿겨지지 않았다. 얼른 일어나 tv를 틀어보니 여기저기서 속보를 내보내고 있었다. 이게 사실이라니.. 믿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지난 밤의 평온이 누군가에겐 공포의 밤이었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 사실이 아니었으면.. 시간을 다시 되돌렸으면..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었다. 


사망자 중 10-20대가 많다는 보도에 조카들이 생각나 바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아이들이 모두 집에 다 귀가해 함께 있다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새언니는 저녁에 첫 보도를 보고 밤새 속보를 지켜보며 눈물을 흘렸다며 그들을 애도했다. 내가 결혼적령기에 아이를 낳았다면 피해자들 나이 쯤 되었을거라 그 부모의 심정이 더욱 와닿고 마음이 아팠다. 20여년을 공들여 키운 자식을 이렇게 허망하게 보낸다는게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전날 밤 동네산책하며 만난 청년들이 생각났다. 아랍인 복장, 좀비분장을 한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고, 가게마다 할로윈 축제 분위기로 꾸미고 고객을 맞이했다. 그 장면이 너무 자연스러웠고, 난 그동안 못 놀았던 한(?)을 밤새 풀겠구나 부러워하기도 했다. 우리에겐 할로윈은 외국의 생소한 축제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캐릭터로 변신해 즐기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들리는 장년층의 대화 속에서 외국 축제를 왜 즐기냐.. 사람이 많은데 왜 그런 곳을 가냐.. 피해자들을 향한 비난과 조롱이 들려 매우 불편했다. 화살의 방향은 그들이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여야 한다. 


다만 안전에 대한 감각이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싶었다. 많은 인파가 몰려서 사고가 발생하면 벌어질 상황에 대한 인지, 좁은 골목에서 테이블을 놓고, 불법구조물을 세웠을 때의 벌어질 상황에 대한 인지, 나의 안전을 최소한 지킬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인지가 이렇게 없을 수가 있구나 한탄하게 되었다. 한국사회의 문제가 이렇게 또 여실히 드러났다. 문화적으로 주목받지만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안전에 대한 인식은 후진국이라는게 증명되었다. 


일단 피해자, 그들의 가족, 구조자 모두 이 국가, 사회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상황을 사전에 대비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며 추후 이런 상황이 또 발생되지 않도록 대비가 필요할 것이다. 이미 이태원의 사태를 몇년 전에는 예상이 되어 대비책을 세우고 안전하게 행사가 진행되었던 전례가 있다. 그것을 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원인을 밝히라고 책망하고 싶다. 과거의 사례 중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워야할 것인가에 대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논리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나는 중학교 1학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지금 만나고 있는 아이들이 떠오른다. 그 아이들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하는지 고민하고, 이를 다루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만나러 가게 된다. 뉴스에서 접했을 사고현장, SNS상에서 떠올고 있는 무분별한 사진에 노출되었을까.. 어른들이 쉽게 내뱉는 말을 필터링없이 받아들여 노는 문화에 대한 죄책감을 고스란히 흡수했을까 염려되었다. 아이들의 감정을 나누고,  그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 나누는게 필요했다. 


나에게 흙점토는 부정적인 감정을 흡수하는 마법을 부리는 재료이다. 아이들에게 우리가 느끼는 부정적이라고 이름붙이는 감정을 함께 탐색하고, 그 감정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손이가는 대로 자유롭게 무언가를 만들도록 했다. 그러자 한 아이가 튼튼한 벽돌로 지어진 집과 위령패를 만들었고, 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떠난 누나, 형들을 지켜주고, 위로하고 싶다고 했다. 그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 중천에 떠돌고 있을 황망한 죽음으로 혼란스럽고, 원망과 두려움에 떨고 있을 영혼에게 어떤 말이 위로가 될 지 찾아보았다. 아이들은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내가 우려한 상황이 아이들의 마음에 심어져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아이는 '고마웠고, 잘 가'라는 말을 덧붙였다. 만약에 나라면 그 말이 위로가 되었을 것 같다고 하는 모습이 진지하게 느껴졌다. 나는 아이들에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재난상황이기 때문에 안전을 보장해야할 국가가 있기에 그들의 잘못이 아니란 점을 강조했다. 아이들의 무의식 속에 죄책감과 두려움이 잠재되지 않길 바랬다. 


피해자를 지켜줄 수 있는 집과 위령패 


1주간의 애도기간으로 이 아픈 기억, 분노, 절망감이 회복될 수 없다. 지금이야 말로 이 재난상황에서 나의 몸과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경계가 필요하다. 불확실한 정보는 멀리하고, 무분별한 장면은 피하고, 내 슬픔과 두려움, 분노를 충분히 느끼는 것이 나를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예상되는 상황을 방지하지 못하고, 상황을 왜곡하고 회피하며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는 국가가 엄정하게 잘못을 수용하고, 지자체와 책임을 나누어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금 나는 나의 눈에 귀에 가슴에 남은 그 고통스런 장면의 흔적들을 지우고 싶다. 그리고 그 상황을 온전히 느꼈을 다른 이들을 품고 지금은 안전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건 슬픔을 함께 마주하고, 온 마음을 다해 애도하고, 남은 이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는 것이다. 부디 우리가 더이상 이런 재난에 망연자실하지 않고 나와 내 가족을 지킬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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