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는 애쓰지 않을 때 시작된다.

흐름에 맡긴 시간 속에서

by soom lumi

치유는

늘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는 줄 알았다.

감정을 다독이기 위해서도,

회복을 위해서도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더 애썼다.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는데

왜 이렇게 지치기만 할까,

마음은 왜 자꾸 뒤처지는 것 같을까

스스로를 다그치며

조용히 무너지는 날들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던 순간

햇살이 느리게 내 어깨를 스치고,

바람이 나뭇잎을 살짝 흔들고,

그저, 그늘 아래에 조용히 있었을 뿐인데


그게 치유였다.

말도, 해석도, 눈물도 없었지만

어딘가에서

조용한 숨결이 피어나는 걸 느꼈다.


우리는 자꾸

감정을 ‘정리’하고

아픔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래야 괜찮아질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마음은

이해보다 머묾을 원하고,

치유는

설명보다 존재의 수용에서 시작된다.


힘내지 않아도 되고,

밝은 척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를

그저 살아 있는 존재로 안아줄 때,

회복은 조용히 스며든다.


치유는

애쓰지 않을 때 시작된다.

그늘 아래에서,

다그치지 않고

흐름에 맡긴 시간 속에서.


오늘 내가 조금 느려도 괜찮고,

잠시 멈춰 서 있어도 괜찮다.


바람도 쉬어가고,

햇살도 물러날 줄 아는 것처럼.


살아 있다는 이유 하나로

충분했던 순간이 있다면

그곳에서 이미,

치유는 시작되고 있었던 거야.



이제 숨처럼,

그대로 머물러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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