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도의 자리

혼탁한 마음속 맑은 감정

by soom lumi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한 번쯤

과거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생긴다.

그때의 아픔, 선택, 놓친 기회들에 대해 말하면서

마음속 감정이 다시 그때로 돌아가는 걸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날은 다르다.

같은 이야기를 꺼냈는데도

그 기억이 더 이상 나를 흔들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단순한 식사 자리고,

누군가에겐 조용한 전환점이 된다.


과거를 떠올렸지만,

마음은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른다.

예전 같았으면 눈시울이 뜨거워졌을 이야기였지만

오늘은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자신을 본다.

그럴 때 사람은 깨닫는다.

이미 삶이, 그리고 감정이 달라졌다는 것을.


감정에도 순도가 있다.


시간이 지나도 탁해지지 않는 마음,

혼란 속에서도 고요하게 남아 있는 감정,

그런 감정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아낸 시간 속에서, 서서히 맑아진다.


과거를 붙잡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끼는 순간,

그 자리엔 후회보다 수용이 있고

그 마음엔 혼란보다 맑음이 남는다.


그건 더 이상 상처가 중심이 아닌,

지금의 나로 중심이 옮겨졌다는 뜻이다.


삶은 그렇게 변해 있다.

거창한 계기 없이도,

우리는 어느새 성장해 있다.


우리는 모두 혼탁한 시간을 지나온다.

그 시간 속에서 맑은 감정 하나를

끝까지 지켜낸 사람은

언젠가 다시 흙탕물에 발을 담가도

스스로를 잃지 않는 법을 안다.

그 감정은 무너지지 않는 중심이 되고,

어떤 삶의 파도 앞에서도

자신을 다정히 끌어안을 수 있는 힘이 된다



“지금 당신 마음속에서 가장 맑은 감정은 무엇인가요?”


<달을 보면 오늘의 내가 보여요>

달을 보면
오늘의 내가 보여요

구름이 얇은 날엔
내 마음도 투명했고

흐린 날엔
속마음도 숨어 있었죠

반달은
조금만 내보이고 싶은 날이었고

보름달은
감정이 차오른 날이었죠

사라지는 초승달엔
가장 조용히 울었어요

자연을 거울 삼아
스스로를 비추는 사람

그래서 오늘도
하늘을 올려다봐요
마음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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