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름 #7 - 기억

화양연화

by soom lumi

사랑은 말보다 더 많은 이름을 가졌다.

그 이름들은 감정의 결을 따라 조용히,

그러나 깊이 흘러온다.


그중 일곱 번째 이름,

'기억'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저장하는 상자가 아니다.

그 안에는 웃음의 잔향, 손끝의 온기,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의 울림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시간이 흐르면 빛바랜 줄 알았던 장면들이,

어느 날 문득 그대로의 색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마치 한동안 잠잠하던 바다가,

이유 없이 큰 파도를 보내오는 것처럼.


그리움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리움은 잊힌 것을 되살리는 힘이 아니라,

이미 살아 있는 것을 계속 숨 쉬게 하는 힘이다.

멀어진 거리 속에서도, 사라진 계절 속에서도,

그리움은 기억을 꺼내어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다.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온기로.


문득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여름의 빛이 조금 누렇게 바래기 시작하던 오후,

창문을 반쯤 열어둔 채 흘러들던 바람의 냄새,

그리고 그 순간 옆자리에 있던 사람의 표정.

그 표정을 떠올리는 순간, 바람의 온도까지 되살아난다.

기억이란 이렇게,

시간마저 데리고 돌아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남겨진 기억은 ‘현재‘라는 다른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 기억 속에서 사람은 다시 웃고, 때로는 울고,

그러다 결국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

기억은 발목을 붙잡는 힘이 아니라,

발걸음을 천천히 만드는 힘이다.

잠시 멈춰 서서,

우리가 잃었다고 생각한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기억은 변한다.

어제는 상처였던 것이 오늘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한때 빛이었던 것이 지금은 그리움이 되기도 한다.

그 모든 변화를 거치며 알게 되는 것.

사랑은 과거형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억 속에서 여전히 웃고 있는 얼굴,

그리움 속에서 여전히 울리는 목소리,

그 모든 것이 지금도 살아 있게 한다.


기억이 찾아올 때마다, 그리움이 밀려올 때마다

우리는 또 하나의 현재를 살아간다.

그 안에서 사랑은 여전히 숨 쉬고 있다.

그리고 그 숨은,

어쩌면 앞으로의 나를 또다시 사랑하게 만들 힘이 된다.

연꽃

진흙 속에 머물렀다고
빛을 잃은 건 아니었다.

물아래 깊이 뿌리를 두고도
햇살을 기다리는 법을 잊지 않았다.

그리움이 물결처럼 스쳐가면,
기억은 꽃잎이 되어 피어났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물아래에서 자란,
그 연꽃이었다.




사랑은 감정에서 태어나, 존재를 감싸고,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순환이다

기억은 그 순환의 한 장면.

사랑이라는 이름이 들려준 일곱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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