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겉으로 보면 조용하다.
붙잡지도 않고,
떠나지도 않고,
그저 같은 자리에 머무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기다림은 자주
사랑으로 불린다.
서두르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는 태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다림이
항상 사랑이었을까.
기다림에는
다른 얼굴도 있다.
혹시 잃을까 봐,
혹시 틀릴까 봐,
혹시 선택했다가 후회할까 봐.
그래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채
시간이 대신 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건 사랑이라기보다
두려움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사랑으로서의 기다림은
상대를 믿기 때문에 머문다.
지금 당장 확답이 없어도
이 시간이 의미 있다고 믿는다.
반면 두려움으로서의 기다림은
선택을 미루기 위해 머문다.
지금 움직이면 무너질 것 같아서
시간 뒤에 숨는다.
겉모습은 비슷하다.
둘 다 서두르지 않고,
둘 다 떠나지 않고,
둘 다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안쪽은 다르다.
사랑의 기다림은
현재를 함께 견딘다.
불안이 있어도
그 불안을 말 위에 올려놓는다.
두려움의 기다림은
현재를 비워둔다.
불안을 혼자 삼킨 채
나중으로 넘긴다.
그래서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관계의 온도가 달라진다.
누군가는
“고맙다”라고 느끼고,
누군가는
“혼자 남겨졌다”라고 느낀다.
기다림은
그 자체로 선하지도,
그 자체로 비겁하지도 않다.
중요한 건
그 기다림이
누구를 향해 있었는지다.
상대를 향해 머문 기다림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멈춰 선 시간인지.
사랑은 때때로
기다림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하지만 두려움도
같은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그래서 사람은
나중에야 묻게 된다.
나는 그때
사랑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잃지 않으려고만 했을까.
기다림이 끝난 자리에는
결과보다
이 질문이 남는다.
그 시간 동안
나는
함께 있었을까,
아니면
머물러 있었을 뿐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