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필연
우리가 아는 모든 선택만큼의 우주가 있다. 그 모든 경우의 수. 지금과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달라졌을 내 인생의 숫자놀음. 그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고 수많은 선택에 의해 우주가 생겨나고 그 각각의 우주에는 나와 다른 내가 존재한다. 에블린(양자경)은 병든 아버지와 한심한 남편과 게이 딸 사이에서 삶이 고단하고 버겁다. 세탁기 안에 세탁물이 빙글빙글 돌듯 자신의 인생도 한 장소에서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고 느낀다. 그녀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늘 피해만 왔기에 또 다른 우주에서 또 다른 선택을 한 또 다른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워한다. 그리고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을 시도하며, 그 선택을 한 ‘나’들의 가능성에 대해 알게 된다. 그의 아버지의 뛰지 말라는 규칙이 아니라 그 어떤 선택도 가능하다는 믿음 말이다.
남편 웨이먼드(키호이 콴)는 유약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그는 매사에 모든 것과 싸우는 에블린을 말린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전사라고 생각하는 걸 알지만 자신 또한 전사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무기는 힘과 폭력이 아닌 다정함과 친절이다. 모든 것에 처절할 필요가 없다고. 세탁물에 눈알 인형을 붙이면 재밌고 따뜻해지는 세상도 있다고. 그는 폭력에 폭력으로, 미움에 미움으로 맞받아치는 식으로 맞설 필요는 없다고 믿는다. 우리의 삶은 때로 우연과 부조리로 가득 차 있고 의미는 우리가 직접 만들어 붙여야 한다는 것. 어쩌면 이 영화의 메시지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인물은 웨이먼드가 아니었을까. 우주가 거대한 베이글의 구멍처럼 공허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그 위에 붙인 작은 눈알 인형 하나가 모든 것을 웃음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진리.
에블린의 아버지 공공(제임스 홍)은 에블린의 선택을 응원하지 않고 딸을 압박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틀 안에서 딸을 검열하며,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는 이민과 굴레, 정체성의 비틀림과 오래된 상처를 딸에게 쏟아낸다. 공공은 에블린에게 있어 과거의 고난을 상징한다. 그는 자신이 그러했듯 에블린이 조이에게도 똑같은 징벌을 내리도록 강요한다. 아버지가 과거의 고난이라면, 세금조사원 디어드리(제이미 리 커티스)는 현재의 고난을 상징한다. 그녀는 에블린이 가지고 있는 현재의 수많은 문제가 의인화된 인물이다. 에블린의 후회와 정리되지 않은 인과처럼, 어지러운 영수증을 현재로 가져와 질책하고 위협한다. 그러나 모든 소동이 끝난 뒤 에블린이 다시 디어드리 앞에 앉아 있게 되듯이, 자신의 문제에서 도망친 그녀가 다시 돌아와 사랑해야 될 현실의 모습이기도 하다.
딸 조이(스테파니 수)는 에블린의 투영이다. 그녀 또한 에블린이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했듯 어머니의 사랑과 인정을 갈구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그녀는 ‘모든 가능성의 아무 의미도 없다’는 미래의 고난을 상징한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지구와 태양과 우주를 발견하겠지만, 무언가를 노력해서 찾아낼수록 그것은 하찮음과 어리석음의 방증일 뿐이다. 조이는 끝없이 허무를 말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 모든 소음을 뚫고 에블린을 찾아다닌 조이의 노력은 설명되지 않는다. 조이는 에블린에게 묻는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데 지금 여기 있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자신의 모든 선택을 보았지만 거기에는 베이글의 구멍처럼 공허하고 무의미하며, 기껏해야 얻을 수 있는 건 결국 서로 말이 통하는 한 줌의 시간밖에 없다고. 에블린은 답한다.
그렇다면 그 한 줌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 사랑할래.
통계적 필연성이 뜻하는 바는, 선택으로 인한 결과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능한 모든 삶, 모든 선택, 모든 결과는 지금 내가 선택하지 않아도 다른 우주의 내가 선택한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선택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선택의 의미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저 수많은 우주 중에 또 다른 내가 이미 이루어냈을 테니까. 우리는 선택의 집합이다. 뼈와 살뿐만 아니라 그 선택으로 만들어진 존재. 무엇이든, 어디에 있든 사랑과 다정함만이 의미가 있다. 내 통계적 필연성은 바로 지금 여기 있는 당신이다.
모든 것, 모든 곳, 동시에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