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줄, 한 줌의 온기
크리스마스였다. 우리는 작은 공연을 보러 갔다. 그것은 당신의 계획이었다. 이웃들은 내게 과묵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당신은 자리를 찾는 내내 투덜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착한 아이처럼 정해진 좌석에 앉았다. 그것은 일종의 자발적 복종처럼 보였다. 불이 켜지고 줄에 매달린 마리오네트가 나왔다. 인형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말을 했다. 마치 뒤에 있는 인간이 인형이고 움직이는 인형이 인간인 것처럼. “네가 내 말을 잘 들었으면 좋겠어!” 산타옷을 입은 인형이 인형술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사람들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지만 우리는 웃지 않았다. 당신은 공연을 하는 내내,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가느다란 줄에 매달린 인형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당신에게 대꾸를 해주느라 사람들이 박수를 칠 때에서야 비로소 이야기가 끝난 것을 알았다. 옆에 앉은 노신사가 대단하다는 듯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에게 난 아주 좋은 남자였던 모양이다. 곧이어 당신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인파가 많아서 나는 실이 꼬이지 않게 당신을 조종하느라 퍽 애를 먹고 말았다.
처음 만났을 때 왜 상대를 좋아했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기억들은 세월이 흐르며 조금씩 옅어진다. 오히려 처음 좋아했던 모습들이 싫어지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다정한 배려심이 우유부단에 보이기도 하고, 유머러스했던 말들은 유치하게 들린다. 처음에 우리는 순수한 상대의 모습에 끌리고, 중력은 그쪽을 향해서만 반응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의 중력보다 나의 중력이 더 강해진다. 끌려오지 않는 상대에게 화가 나고 불안하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사랑을 하다 보면 더욱 그렇다. 좋아하지 않던 커피를 좋아하게 된다거나, 패션에 관심이 없었는데 옷을 산다거나 하는 경험. 상대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애써 찾아보고,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들을 기꺼이 했을 때, 사람은 또 사람에 의해서 변하고 나아간다. 그것은 그건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더 나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 문제는 그 변화가 내가 ‘원해서’였나 라는 점이다. 나를 위해 상대를 변하게 하는 것과 상대를 위해 내가 변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우리는 보통 사랑 전후의 모습을 통해 변화에만 초점을 두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자발성이다.
인간은 하나의 세계와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두 세계의 완벽한 화합은 있을 수 없다. 흔들리는 공간에서 완벽한 균형을 잡는 것처럼. 크기가 다르고 힘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버티지만 결국 하나의 세계로 기울 수밖에 없고 그 기울어진 세계에 순응하게 된다. 운동복을 좋아했던 사람이 단정하게 입고, 만화책을 읽던 사람이 신문만 본다.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어째서 인간은 상대를 나만의 사람으로 바꿔놓아야 안심이 되는 걸까? 혹은, 나의 세계의 언어와 태도를 습득해야만 사랑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는 걸까? 마치 다른 나라로 귀화하려는 이민자들이 치는 시험처럼 말이다.
사랑한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실제로는 서로를 조금씩 바꿔나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조각칼로 하는 작업과 같다. 조금 건들면 티가 안 나고 너무 깎아내면 처음의 모습이 사라진다. 그러니까 오래 사랑할수록 많이 바뀌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랑이 끝이 난 뒤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과 마주할 때,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사람을 위해 노력했었는지 새삼 한심해 보이기도 한다. 아마 그것은 희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변한 만큼 사랑받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 사랑과 희망은 쌍둥이 같다. 사랑할수록 희망하고 희망할수록 사랑이 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제일 두려운 건 이 모든 불합리한 일들이 ‘너를 위해서’라는 변명으로 합리화된다는 데 있다. 그 안에서 너에게 저지른 모든 부조리가 정당화된다는 데 있다. 인간은 얼마든지 다른 인간을 통제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원인은 결국 불안 때문이다. 상대를 나의 영향력 아래 두고 싶다는 불안.
크리스마스를 위해 연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계절에는 혼자 있는 게 실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 거리를 거닐다 보면 함께 있으면서도 외롭거나 괴로운 사람들도 적지 않아 보인다. 그들의 몸 이곳저곳도 상대가 묶어둔 줄로 엉망이다. 그 줄이 많을수록 둘의 믿음이 단단해진다고 믿는 커플도 있다. 하지만 과연 불안을 덮어줄 만큼 충분한지 나는 모르겠다. 사실, 둘의 사랑을 존속하기 위해 필요한 줄은 하나면 충분하다. 당신과 나를 다른 사람과 구분해 줄 단 하나의 끈.
세상에 구구절절한 사랑의 이유는 많고, 당신을 사랑하게 된 이유도 셀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이유가 사라져도 헤어질 단 하나의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아직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왜냐하면 당신을 사랑하게 될 순간은 크리스마스처럼 다시 돌아오게 될테니까. 결국 서로에게 필요했던 건 손안에 움켜쥘 줄이 아닌, 한 줌의 온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