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은 내게서 오래 살았다. 방에는 짐이 많았다. 나는 대문을 열어두었다. 이 집은 낡았다. 나는 낡은 집은 고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당신은 버리는 거라고 생각을 했나 보다. 금고 열쇠는 어디 있나요. 당신이 물었고. 나는 열쇠는 금고 안에 있소.라고 답했다. 예쁜 옷을 입은 당신은 더 묻지 않고 마차에 짐을 실었다. 나는 버티는 중이었고. 당신은 이겨내는 중이었다. 집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벽면이 우수수 떨어지더니. 지붕도 가장자리부터 차례로 부서지는 중이었다. 당신은 서둘러 짐을 옮겼다. 이제 조금 있으면 우리의 집은 터만 남을 거였다. 거기에 나는 집만큼 오래된 정원을 꾸밀 것이다. 이제부터 당신의 집인 곳과 더 이상 집이 아닌 이곳에 거리를 계산하다가 나는 곧 그만두고 말았다. 가볼 것도 아니지 않나. 당신은 나를 구원해. 내가 당신을 구원할게. 집을 짓기 전에 내가 했던 말일까. 아니면 당신이 했던 말일까. 때마침 집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우리의 시간 같은 먼지가 피어올랐다. 마차에 짐을 가득 실었지만. 아직 싣지 못한 짐이 더 많았다. 찬찬히 들고 있던 짐과 함께 집처럼 주저앉은 당신이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왕-하고 울어 버렸다.
당신이 나의 집이니까
관계란 집을 만드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벽돌이든 나무든 본인들의 기호에 따라 소재를 정하고 방을 1개로 할 건지, 3개로 한걸지, 정원을 만들 것인지, 테라스로 할 것인지, 창은 통창으로 할 것인지, 작게 낼 것인지. 관계란 결국 돌아갈 곳을 만든다는 의미다.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 오늘의 일을 가감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곳. 속옷만 입고 있을 수 있는 곳. 품에 안겨 울 수 있는 곳. 맥주 한 캔을 따서 나눠마실 수 있는 곳. 우리가 관계에 허덕이면서 버거워하면서 또다시 집을 짓고 수리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당신이 나의 집이니까.
그렇게 지은 관계의 집에 우리는 짐을 채운다. 인테리어도 하고 화병도 배치한다. 커튼도 달고 카펫도 깔아놓는다. 물론 싸울 수는 있지만 그게 끝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진짜 집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진짜 집보다 더 중요한 짐은 그곳에 있다. 서로의 비밀들 말이다. 내가 끌어안은 당신의 단점들 말이다. 코를 많이 골아서 내 코를 막았던 일, 어린 시절 엄마에게 겪은 당신의 아픔, 아침마다 화장실에 가는 것, 싱겁게 먹는 주제에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매운 걸 먹어줘야 하는 것, 우리의 비겁함, 열등감, 타인들과의 불화, 당신 등에 있는 커다란 점, 조금만 아파도 엄살을 떨고,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면서 품에 안겨 울고 싶어 하는 것.
관계의 집도 낡고 무너지거나 한다.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 상대의 잘못도 아니다. 우리의 잘못이다. 비가 오고 지붕이 샐 때를, 계단을 올라갈 때 삐걱대던 소리를, 화장실에서 물 내릴 때 약했던 수압을, 어느새 우리는 그러한 조짐들을 모르는 척하고 만다. 원래 그랬으니까 하고, 내 잘못은 아니겠지 하고, 책임을 떠넘기고 다른 바쁜 일이 있다고 핑계를 댄다. 그러다가 다른 집이 보인다. 다른 사람과 집을 짓고 싶어 한다. 이 집은 너무 낡았고 볼품없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집을 지켜야 할 이유보다 저 집으로 이사 가야 될 이유를 백만 가지는 더 찾는다. 합의 하에 서로 집을 매매로 내놓는다면 행복하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관계의 집은 한 명이 떠나고 다른 한 명은 무너진 집터에 남는다.
하지만 그렇게 떠난 사람들은 그전에 집에서 이삿짐을 모두 챙겨 오지 못한다. 오래된 집에 살던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 집 곳곳에 남아있던 나의 짐을 챙겨 오리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새로 지은 집은 그전에 집보다 평수가 좁다. 왜냐하면 이제 막 지은 집이니까. 앞으로 다시 지어가야 하는 집에 낡은 짐은 상대방에게 있어 번잡하고 필요 없는 잡동사니다. 그렇다면 이 짐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전에 집에서는 수납공간도 넉넉했고, 평수도 넓었고, 그리고 그리고 내 짐을 정리해 주던 당신이 있었구나. 어지럽히고 벗어두면 치워주고 잔소리하던 당신이 있었구나. 당신이 있었구나. 당신이 있었구나.
짐과 함께 이 집과 저 집 어딘가에서 헤매는 것이다
새로운 집에 들어가려면 그동안에 짐은 버려야 한다. 그와 함께 했던 버릇일 수도 있고, 내게 맞춰주던 일상의 습관들일 수도 있다. 밥을 먹을 때 좋아하는 계란은 꼭 식탁 위에 올려두던 자상 함이라던가, 깜빡 잊고 돌리지 못한 빨래가 퇴근하고 난 뒤 집에 와보니 개켜져 있던 배려라든가, 등이 간지럽다고 하면 손톱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쓰다듬어주던 따뜻함이라던가. 나도 분명 그에게 들려 보낸 짐이 있을 텐데. 그런 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이제는 어디 둘 데도 없는 내 짐만 이렇게 많다. 어떤 이별은 그런 것이다. 집을 떠날 때는 좋았는데 새로운 집이 너무 낯설어. 들어가지도 못하고 짐과 함께 이 집과 저 집 어딘가에서 헤매는 것이다.
그 헤맴이 짧으면 좋을 것이다. 아니 떠나기 전에 최소한 나의 짐과 당신의 짐을 확인해 보면 좋을 것이다. 그 짐 곳곳에 손을 넣어보고 아, 이런 게 있었지. 하고 떠올려보면 좋을 것이다. 나는 지금 오래된 관계를 절대 떠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난방이 식어버린 집은 버릴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따듯해지지 않는 집도 분명 존재하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 짐을 이 집이 아닌 저 집까지 옮겨야 된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짐은 생각하지도 않고 집만 생각하면 저 새집이 좋아 보이는 건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그때 한 발 물러서서 우리 집의 온도와 방 곳곳에 남은 흔적과 당신과 나의 짐을 한 번씩 되돌아보는 과정은 분명 필요하다는 말이다. 집과 집 사이에 짐과 함께 남겨지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금고 안에 들어간 열쇠는 아무 가치가 없다. 열쇠는 금고 밖에 있어야 금고만 한 가치가 있는 법이다. 우리의 문제는 대부분 금고 안에 있다. 그런데 해결책 또한 안에 집어넣어 버린다. 그건 어느 한순간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 않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일 것이다. 한 번 무너진 집은 다시 재건할 수가 없다. 다시 만든다고 해도 예전과 같은 집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가끔 너무 소중해서 소중한 지 모를 때가 있다. 어리석은 일이다. 물론, 어리석다고 인간적이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어리석기 때문에 인간적일 수 있다. 하지만 나만 생각하는 어리석음은 피하면 좋지 않을까. 그 집을 지을 때 안간힘을 쓰던 상대의 표정과, 힘든 퇴근길. 문이 열리면 안아주려고 기다리던 그 품이 따뜻한 기억이라면. 당신의 집은 아직 고쳐 쓸 수 있는 소중한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