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시 27분, 빈센트 씨

그러나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by 슴도치

빈센트 씨는 늘 아침 06시 30분에 눈을 뜹니다. 일어나자마자 미온수로 입을 헹구고, 물 한 잔을 마시고 화장실로 가서 볼일을 봅니다. 07시. 빈센트 씨는 53분 동안 실내 자전거를, 나머지 7분 동안 팔 굽혀 펴기 50회를 끝냅니다. 샤워를 마친 빈센트 씨는 08시 20분, 삶은 달걀 2알과 토마토 주스로 약 5분 간 아침 식사를 합니다. 08시 29분 집을 나선 그는 도보로 10분 거리 정류장에서 8시 43분 버스를 타고 정확히 09시 20분 회사 로비를 통과합니다.


18:30분 업무를 끝낸 빈센트 씨는 또다시 18시 57분 버스를 타고 19시 24분 집에 도착합니다. 그날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빈센트 씨는 20시에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한 뒤 20시 30분에 TV 토크쇼를 보고 21시 33분 욕조에서 반신욕을 하고 22시 18분, 잠에 들 예정이었습니다. 예상보다 12분 이른 취침이었겠군요. 하지만 그날은 달랐습니다. 업무를 마친 빈센트 씨가 18시 57분 버스를 타지 못했거든요. 빈센트 씨는 식료품 가게 앞에서 마거릿이라는 여성을 만나게 됩니다. 둘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약 32분 후 중국풍 레스토랑에서 엽차를 마시게 됩니다. 계획이 틀어졌지만 어쩐지 빈센트 씨의 기분은 좋아 보이네요.


그로부터 3년 4개월 후 빈센트 씨는 06시 30분에 눈을 뜹니다. 일어나자마자 미온수로 입을 헹구고, 물 한 잔을 마시고 화장실로 가서 볼일을 봅니다. 07시. 빈센트 씨는 53분 동안 실내 자전거를, 나머지 7분 동안 팔 굽혀 펴기 50회를 끝냅니다. 샤워를 마친 빈센트 씨는 08시 20분, 삶은 달걀 2알과 토마토 주스로 약 5분 간 아침 식사를 합니다. 벽면과 거실 테이블에는 빈센트 씨와 마거릿 양의 사진도 보입니다. 둘은 행복해 보이네요. 식사를 마친 빈센트 씨가 갑자기 얼굴을 감싸안고 울기 시작합니다. 집 안은 텅 비어 있어서 빈센트 씨가 민망할 일은 없겠네요. 빈센트 씨는 불안증세를 보입니다. 그는 서랍에서 약을 찾다가 떨어뜨리고, 알약이 바닥에 빈센트 씨의 마음처럼 흩뿌려지네요. 그는 약을 줍다가, 그 약을 먹기 시작한 이유를 떠올리다가 바닥 위에서 한 번 더 울기 시작합니다. 08시 27분. 괜찮아요. 빈센트 씨! 아직 2분 정도 남았습니다. 울음을 멈춘 그가 집을 나선 시간은 정확히 08시 29분, 그러니까 아직은 아무것도 늦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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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깍째깍


나의 그녀는 항상 시간을 지키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10분 정도는 늦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녀에게 10분 이른 시간을 약속 시간으로 알려준 적도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는 20분을 늦습니다. 이 정도면 제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의 그녀는 너무 예쁘지만, 가끔 그녀의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녀에게 30분 이른 약속 시간을 알려주었는데 1시간쯤 늦었을 때였습니다. 째깍째깍



이 시는 "삶의 루틴과 감정의 파열" 사이에 존재하는 불일치의 순간, 즉 '시간대로 살아가는 인간'과 '감정대로 무너지는 인간' 사이의 긴장을 포착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인간은 매일 같은 시간을 살지만, 같은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건 아니라는 것. 시간이 흐르는 만큼 인간은 변합니다. 입맛도 변하고, 머리숱도 빠지고, 어째서인 키도 조금 줄어든 것 같습니다. 째깍째깍



우리는 울고 나서도 출근을 합니다


이 시는 ‘사건’을 서술하지 않습니다. 대신 ‘정해진 시간’이라는 형식에 살짝 스며든 감정의 파열을 통해, 독자 스스로 상실, 외로움, 후회, 회복되지 않는 그리움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시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울고 나서도 출근을 합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극적인 사건으로 변주되지만 현실에 이별은 많이 다릅니다. 밥도 먹고 똥도 싸고 티브이를 보다가 박장대소하기도 합니다. 째깍째깍




오늘을 어떻게든 견뎌내면 또 다른 기회가 옵니다


'시간'과 '감정' 사이의 충돌을 통해, '마음의 조각을 잃은 사람의 슬픈 루틴' 저는 빈센트 씨를 동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시간에 맞춰 사는 사람이니만큼 복구의 시간도 계산에 넣을 겁니다. 루틴을 지키는 사람은 강합니다. 하루를 구조화하고 단순화시키는 사람은 똑똑하고 건강합니다. 그는 오늘도 일어났고, 울었고, 그래도 08시 29분엔 나가야 했습니다. 사랑은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하죠. 하지만 사랑 앞에서 무너지기만 해서는 안될 겁니다. 그것은 새로 다가올 사랑에게 무례한 일입니다. 오늘을 어떻게든 견뎌내면 또 다른 기회가 옵니다. 대신 그 울음을 품은 시간에 작고 소중한 이름을 붙이면 좋을 것입니다. 그 이름이 아픔보다는 사랑, 실패보다는 과정, 눈물보다는 미소로 불렸으면 좋겠습니다. 째깍째깍


저기 그녀가 오네요. 오늘은 5분밖에 안 늦었습니다. 아직 저희의 사랑은 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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