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확률

그러나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by 슴도치

당신과 헤어진 뒤에 장님이 된 나를 보는 꿈을 꾸었다. 장님이 된 내가 밥을 먹고 출근을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장님이 된 나를 보며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밤 중 어둠마저 막막한 나는 결국 우리가 서로의 아픔을 짊어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각자에게 할당된 고통만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져가 병든 짐승처럼 핥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내게 남은 건 이 지평선을 다 덮은 어둠이라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과 부대끼며 함께 앓고 싶었다. 온전한 상처가 아닌 반으로 줄은 흉터를 원했다. 그러나 달아나는 것에만 관심을 둔 당신은 내게 잃어버린 시력視力 같았다. 또다시 장님이 된 내가 하릴없이 이부자리에 드러눕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지 못해서 한참을 야속해기도 하였다.






* '삼십육계 줄행랑'이라는 말이 있다. 병법 36계 중 패전계에 속한 마지막 계책이다. 말 그대로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인데 핵심은 '알빠노'를 시전 하며 도망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병력을 보전하여 다른 계책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데 있다. 하지만 일단 '도망'을 쳐야 하는 것이니 적이나 아군 입장에서도 체면이 안 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적의 입장에서도 일단 싸워야 전쟁이 끝나기라도 하는 것일 텐데 적군이 나타나지 않고 도망을 치면 난감하기는 할 것이다. 마치 몇 개월간 훈련을 한 복서가 링 위에 올랐는데 상대 선수가 링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뒤돌아 나간다면 승패를 떠나서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이 말이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기준과 잣대 위에서 일방적으로 관계를 단절시키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한다. 갈등이 시작될 것 같으면 도망 자체에만 집중하는 사람들 말이다. 물론 도망간다는 건 그들의 자유다.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싸우는 약 천오백 년 전 화랑의 계율이고 현대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낯선 개념이다. 도망은 분명 칠 수 있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 않은가. 도망치는 것은 상책이다. 하지만 도망 자체에만 힘을 쏟는 것은 아무래도 비겁하다. 정상적으로 말이 통하는 상대라고 한다면 일단은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는 자세야말로 성숙하다. 서로 마주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어쨌든 산다는 건 용기 없이는 불가능하다.


어른이라면 아무리 사소한 관계에서라도 서로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안다. 맺고 끊는 것은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다. 일단은 서로의 입장을 확인해 보고 그래도 개선의 여지가 없다면 그때 관계를 단절해도 늦지 않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생략하는 일이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다. 어느 정도 나름의 선을 그어놓고 그 선을 넘어가지도 넘어오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 선이 어디에 그어져 있는지 안내표지판 조자 보이지 않는다. 최소한 사나운 개집 옆에는 '개조심'이라는 문구 정도는 있다. 나는 이제 관계가 너무 어렵다. 관계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 같은 사람은 낯선 도시에 지도 없이 떨어진 이방인 같다.


고대 전쟁에서부터 '후퇴'는 어렵다. 나는 도망치는 게 쉽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퇴로를 만들어 둔다는 것은 아무래도 닥치고 돌격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확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잠시 후퇴를 한 뒤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보는 것은 상책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역시 도망 뒤에 다른 계책이 있느냐다. 다시 공격을 할지, 항복을 할지, 성을 버리고 다른 나라로 망명을 할지는 본인의 자유다. 하지만 역시 자유는 책임을 동반한다. 모든 관계는 소중하다는 진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진부하다는 것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진부한 것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내 옆에 이 사람들은 얼마만큼의 확률로 내게 오는 것일까. 하고 생각해 보면 소름이 돋는다. 시간, 공간, 상황 이 모든 것이 지독하게 낮은 확률로 들어맞아야만 관계는 맺어질 수 있다. 그렇게 힘들게 내게 와준 사람인 것이다. 그중에는 악연도 있겠지만 악연은 또 악연이기 때문에 세월 속에 공부가 된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지구에 바늘을 꽂아놓고 우주에서 밀씨를 떨어뜨렸을 때 그 밀씨가 나풀거리며 바늘 위에 꽂힐 확률. 그 계산도 안 되는 기가 막힌 확률로 만나게 되는 게 인연이라고. 더군다나 사랑하는 관계라면 그것은 더욱 희박한 확률이다. 그런 관계를 마치 껌 종이 버리듯이 쉽게 버려버리는 것이 옳은 것일까? 내가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만큼은 감히 잘못된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오늘도 그 기막힌 확률로 나에게 와준 사람들. 장님이 되지 않게 세상을 보는 나의 두 눈이 되어주는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오늘 또 내가 더 나아지길 원하는 것이다.


당신에게서 도망치는 건 결국 세상에게서 도망치는 거야.라고 나는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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