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by 슴도치


그러고 보니 차 안에는 당신의 한쪽 귀가 떨어져 있었다. 아침에 분주하게 준비를 하면서도 떨어진 한쪽 귀를 찾는 당신 모습이 눈에 훤했다. 하지만 나는 볼일이 급해 일단 차에 시동을 걸었다. 당신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하긴 귀가 없는데 전화를 못 받겠지. 피식 웃은 나는 약속 장소로 떠났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을 봤다. 토마토를 사는데 그 앞에 반지 낀 당신 손가락이 떨어져 있었다. 칠칠맞기는! 나는 장바구니에 당신 손가락을 넣었다. 그런데 그뿐이 아니었다. 카페 앞에서는 당신의 허벅지가. 현관문 앞에서는 당신의 코가. 산책을 나간 공원 의자 밑에는 당신의 어깨가. 심지어 욕실 세면대에는 당신의 점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걸 주웠다. 주말 즈음에는 당신을 만들기 충분했다. 나는 당신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여기 당신이 다 모여있어! 하지만 당신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 하고. 하긴 귀가 없는데 전화를 못 받겠지! 나는 천천히 당신을 맞췄다. 다 맞춘 그것은 얼핏 당신을 닮은 것 같기도 했고, 아예 다른 사람 같기도 했다. 사실 우리는 한동안 떨어져 있었다. 문득 당신도 떨어진 나를 찾으러 다닐까 하였다. 우리가 떨어진 서로를 줍고 맞추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몹시 우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때 마침 전화가 울렸다.








결국은 모두 피해자가 된다.


기억만큼 불확실한 것도 없다. 잘못의 원인을 따져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부터 기준이 없다. 갑자기 심판이 나타나서 휘슬을 부르고 경고를 주는 일도 없다. 근데 그랬으면 좋겠다. 둘 사이에 일은 둘 사이에서 판가름이 난다. 그리고 갈등에는 더 잘못한 쪽과 덜 잘못한 쪽이 있는 것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 승패가 갈린다. 유, 무죄를 내리고 형벌을 정한다. 사랑하는 이들 끼리의 선고는 아닌 이들에 비해 훨씬 가혹하다. 자신들만의 역사가 있는 연인들에게는 거의 법전만큼의 규칙이 존재한다. 그리고 최대의 형벌은 이별이다. 이 법정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싸우지만 결국은 모두 피해자가 된다.



연인들 간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다. 그것이 반복되면 서로에게 서열이 생긴다. 꼭 이기는 사람과 지는 사람이 정해져 버린다. 끔찍하다. 인간이란 늘 상대를 정복하고자 하는 심리가 있다. 사랑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타자화 되지 않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잔인함마저, ‘사랑하니까’라는 말로 수긍하고 마는 것이다. 사랑으로 용서 안 되는 게 없다. 욕을 해도, 때려도, 돈을 안 갚아도, 심한 말을 해서 자존감을 깎아내려도 ‘사랑하니까’라는 말 한마디로 내가 아닌 상대를 위한 행동이 되어버린다. 끔찍하다.



필자만큼 사랑에 관대한 사람도 없다. 나 또한 사랑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쪽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불행해도’라는 전제가 깔린 뒤에 가능하다. 널 위한 거였어, 사랑해서 그랬어! 등의 일들이 합리화되려면 내가 먼저 불행해야 한다. 그 불행이라는 것은 지극히 내 주관적인 불행이 아니라 객관적인 불행이어야 한다. 가령, 금전적으로 힘든 상대에게 내가 쓸 것 안 쓰고 자발적으로 금전적 지원을 해준다면 일단 그것은 객관적으로 불행한 게 맞다. 그런 상태에서 상대의 지출과 소비에 관여하는 것은 납득이 가는 행동일 것이다. 그럴 때는 사랑하니까 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을 빌미로 너무 심하게 상대를 비난하고 심판할 거라면 안 도와주는 쪽이 낫겠지만.




나의 공간이 비좁아서 당신에게 갈 수가 없다.


어린아이가 아닌 성인의 사랑에는 제약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무섭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규칙이 없다면 무법지대가 될 수밖에 없다. 불확실한 기억이나 어쭙잖은 논리로 상대를 기만해서는 안될 것이다. 위 시에서 남자와 여자는 이별한 상황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전화를 하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남자는 그것을 귀가 없다는 논리로 이해한다. 떨어져 있는 그녀를 주워 기억을 맞추지만 그게 진짜 그녀와의 기억인지 확신이 없다. 우리가 왜 싸웠는지,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억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재가 없다. 사랑하고 보고 싶은데도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의 자리보다 내 자리가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공간이 비좁아서 당신에게 갈 수가 없다. 미안하다고 안아주면 그뿐인데, 그럴 용기가 없어서 상대를 사랑하기보다 더 미워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

모든 지표가 상대를 떠나라고 할 때가 있다. 행복하려고 사랑하는데 사랑하는 게 더 불행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옆에서 '오늘 저녁에 뭐 먹지?' 따위의 고민을 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우리는 가끔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척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문제도, 그에 대한 해답도 안다. 건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안다. 야채를 많이 먹고 운동을 해야 된다.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안다. 미라클 모닝을 하고 부동산이나 주식을 공부하거나 종잣돈을 모아 내 사업체를 꾸릴 수 있는 것도 안다. 하지만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너무 중요하니까. 아무것도 바꾸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냥 나와 당신이 조각조각 날 때까지 기다려보자. 하는 것이다. 완벽한 사람과 완벽한 사랑을 찾으려고 하루 종일 뛰어다니는 것이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보다 다른 인연이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



애초에 완벽한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 완벽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 불완전하게 사랑하고, 다투고, 실망하고, 붙잡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나아가고 다시 사랑하는 완전한 동행만 있을 뿐이다. 부서지고 조각난 것을 이어 붙이면 어떻게라도 티가 나고 만다. 그것은 처음과 같지 않다. 새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 것처럼은 보일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사랑했다면 그 무엇도 이별보다는 덜 아플 것이다. 나는 오늘도 당신의 금이 간 얼굴을 매만져 본다. 당신도 나의 패임을 들여다볼 것이다.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는 거지만 괜찮다. 이별하지 않았다면 아직 아무것도 실패하지 않은 것이다.


포기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사랑하는 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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