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가 물고 간 것

그러나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by 슴도치


아침부터 까치가 몹시 울었다. 당신에게는 소식이 없었다. 종자를 뿌릴 때가 되었다. 이맘때쯤 바람이 세었다. 나는 까치가 반가운 손님을 알리는 줄 알았다. 나가보니 큰 까치 한 마리가 작은 까치를 쪼아대고 있었다. 나는 몽둥이로 큰 까치를 쫓았다. 작은 까치는 날개가 다쳤는지 날아가지도 못했다. 어느 집에서는 종자가 잘못되었다고 바가지 째 버렸다. 당신에게 소식이 올 때가 한참이 지났다. 자주 들에 나가 바람으로 몸을 씻었다. 집 앞을 지나는 사람에게 부탁을 하여 까치를 작은 상자에 옮겼다. 나는 아무래도 날지 못하는 새가 무서웠다. 너무 지쳤는지 까치는 미동도 없었다. 우리 집도 종자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가을에는 옳은 작물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심지도 않은 것이 자라기도 했다. 전화로 까치를 치료해 줄 사람을 불렀다. 그동안 도망가지 못하도록 상자 위에 돌을 얹어두었다. 까치도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무 소식이 없었다. 소리 없는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나는 소식 없는 이들이 무서웠다. 바람이 또 한 번 거세게 불고 빨랫줄에 널어놓았던 당신의 얇은 봄옷이. 바람에 훨훨 날아가는 중이었다.









무소식은 무소식일 뿐이다

누구에게나 기다리는 소식이 있다. 어느 때는 기다림 자체가 삶이 되는 사람도 있다. 위 시에서도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그 소식이란 생사의 소식일 수도 있고, 가벼운 안부일 수도 있고, 미래를 약속하는 연인의 소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뭔지는 알 수가 없다. 저쪽은 다른 세계 같고 이쪽은 깨질 것처럼 약하다. 무소식은 잔인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무소식은 무소식일 뿐이다. 그것이 희소식이 되는 경험을 한 적은 많지 않다. 소식을 기다리는 입장에서 기다림은 고행과 같고, 어쨌든 나는 무소식이 괴롭다.



어렸을 적에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만약 인간들이 텔레파시로 전부 연결되어 있다면? 삶은 훨씬 단순해지지 않았을까? 거짓말도, 확인도, 걱정도, 의심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서로의 감정에 솔직해진다면 사랑도, 체념도 쉬울 것이다. 말은 한없이 가볍고 또 무겁다. 그런 것은 딱 오해하기 좋다. 나는 중요한 표현은 글로 하는 편이다. 글은 훨씬 진솔하다.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은 깊어진다. 내가 몰랐던 나를 전할 수도 있다. 송곳처럼 찌르는 말은 상대에게 어김없이 상대에게 박히고, 아차 하는 마음에 그것을 빼주려고 해도 출혈과 상처는 오래 남는다.



인생은 방지턱 있는 8차선 도로 같다


내게 까치는 설레는 존재다. 아침부터 까치가 울면 그날은 기분이 좋아진다. 상징이란 인간에게 중요하다. 까치는 반가운 손님. 즉, 좋은 소식과 이미지가 겹친다. 오늘 내게 좋은 일이 있을까? 하는 기대는 삶에 있어 사탕 같다. 그런데 문을 열고 보니 까치가 다른 까치를 죽이려는 상황이라니. 무너진 상징은 공포다. 그리고 나는 얼마나 순진했나. 인생은 명절 같지 않다. 그것은 방지턱 있는 8차선 도로 같다. 마음 놓고 가다 보면 자주 덜컹하고 마는 것이다.



어떤 인생이든 나름의 패턴이 있다. 그리고 실패와 성공은 그래프의 등락처럼 반복된다. 실패를 버티면 성공의 상승 곡선은 꼭 오고 만다. 시간이 자본인 것이다. 위를 보며 버티는 사람에겐 좋은 소식이 생긴다. 까치가 까치를 공격하는 때도 있지만 까치가 좋은 소식을 물어올 때도 있다. 물론, 무소식인 날들도 많다. 나의 물음이 상대의 응답이 되어 돌아오는 확률은 생각보다 적으니까. 그렇다고 우리의 물음이 멈춰져서는 안 된다. 기다림은 고행이고, 깨달음이니 초월이니 하는 것들도 고행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다다를 수 없는 경지 아닌가. 머리가 아프면 들에 나가 바람을 맞자. 소식 하나에 쉽게 일희일비하지 않길. 좋은 소식만 바라기보다, 아픈 소식에도 적게 아픈 우리가 되길.




인생 OX 퀴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주관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좋은 소식을 기다린다. 까치가 울어서는 아니다. 인간이란 살면서 마구 순진해지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사탕은 먹지 않고 보고만 있어도 입이 달다. 그리고 또 막상 좋은 소식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 어때? 끝까지 버티던지 부러지던지 어쨌든 둘 중 하나다. 우리에게 선택지는 별로 없다. 시험은 사지선다지만 인생 OX 퀴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주관식이다. 포기하지 않을 건지 포기할 건지. 채점은 우리가 죽고 곁에 있던 사람들이 해줄 것이다. 틀린 답을 적어냈더라도 오답처리가 아니라 부분 점수라도 받길 바라며 살자. 그래, 70점. 그 정도라면 훌륭하겠다. 나는 늘 당신의 소식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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