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마지막에 우리는 강원도 고성에 갔다. 둘 다 밤을 꼬박 새운 뒤였다. 차에서는 고성과 침묵이 오갔다. 당신은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그 숙인 고개로 당신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해변가에서는 흰나비를 보았다. 마치 부서진 파도 같은 날개였다. 여보오, 저것 좀 보오. 빈약한 태양 빛이 타들어 가다가 바닷물 속으로 꺼져버렸다. 이맘때 고성바다는 온통 잿빛이었다. 당신과 나도 타들어 가다 남은 것들처럼 해변가를 걸었다. 당신이 중얼거리듯 훌쩍이고 나는 자꾸 무슨 말을 했느냐고 되묻기만 하였다. 멀리 울산바위가 보였다. 당신도 울다 지쳐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릴까. 전망대에 올라 망원경에 눈을 갖다 대면. 내가 보고 싶은 당신은 왜 더 멀리 있었다. 여보오, 이것 좀 보오. 뒤를 돌아보니 나비처럼 어여쁜 당신은 이미 훨훨 날아갔나, 흑흑 울다 바위가 되었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를 어둑해진 해변가에 세워두고. 웬일인지 나는 또다시 밤이 새도록 브레이크만 콱 밟고 있는 것이다.
“어디도 가지 못하면서, 어디도 가지 않기를 온몸으로 갈망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하면서 싸우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사람들도 존재할 것이다. 살면서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는 30년 차의 부부가 있다. 그 비결은 ‘덜 사랑하는 것’, ‘덜 대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상대를 철저하게 남처럼 보는 것이다. 너와 내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상대의 선택을 존중해 주는 것. 그게 말로는 쉽지만 사랑은 쉽지가 않다.
화해라는 건 좋게 푼다는 뜻이다. 서로에게 꼬여있는 실타래를 좋게 푼다. 알랙산더 대왕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지 않고 잘라버렸다. 풀 수 없는 매듭을 잘라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런데 내가 당신을 끊어낼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나의 정서적, 심리적 사지 중 하나를 절단한다는 의미다. 외과 의사도, 마취도 없이 내가 스스로를 집도해야 한다. 고통의 여부보다 과연 가능할지가 관건이다.
나는 당신에게 문제가 아니라 해답이 되고 싶다. 어느 누가 문제가 되고 싶겠는가. 하지만 어느 순간, 마치 저 앞에 끊긴 철로 위를 달리는 기관차처럼. 우리 둘 중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결과를 향해 달려간다. 당신을 아끼고 사랑하지만, 말과 행동은 영 반대로 나간다. 이쯤 되면 내가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서 악역을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평소에는 하지 못할 잔인한 말과 거친 행동. 그것은 누가 더 힘들었는지, 상처받았는지 알아달라고 떼쓰는 어린아이의 행동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럼 안아주고 알아주면 되는데 또 그게 사랑만큼 쉽지가 않다. 우리는 그것을 자존심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사랑 앞에서 그 동물은 쉬이 폭주를 하고 만다.
자존심은 외부의 평가에 민감하다. 자신의 긍정적인 면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고 알아주지 않으면 쉽게 상처받는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알아봐 주지 않는다면 그 상처는 보통 사람들에게 받는 것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사실 상처라기보다 배신감이라는 감정에 더 가깝다. 당연히 알아봐 주길 바라는 사람이 길거리에서 나를 모른 척 지나가는 상황과 같다. 잠깐, 어이가 없네? 그렇기 때문에 그 반사작용으로 나도 널 상처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마치 무릎을 때리면 발로 차는 것처럼.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사랑 앞에서 그 동물은 쉬이 폭주를 하고 만다.
외과 상으로는 괜찮은데 거기 어디 분명 다친 곳이 있다.
위에 시에서도 남자는 이별을 했다. 그는 멈춰 서있는 자동차의 브레이크 페달을 콱 밟고 있다. 어디도 가지 못하면서, 어디도 가지 않기를 온몸으로 갈망하고 있다. 아니 사실 갈 곳도 없을 것이다. 사랑이란 결국 돌아갈 집을 의미한다. 거주지가 사라진 인간은 당황한다. 왜냐하면 이 동물은 늘 돌아갈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人)이란 서로 기대어 있어야만 존재가 가능하다. 나의 연인은 어쩌면 나를 존재하게 만들었던 필수 요소였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몰랐으면 몰랐지. 알게 되고 나서 잃는 것은 잔인하다. ‘마음이 아프다’ 할 때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그 위치를 알게 된다는 건 참 신기하다. 외과 상으로는 괜찮은데 거기 어디 분명 다친 곳이 있다. 욱신거리고 불에 덴 듯 아프다. 팔이나 다리를 절단한 사람들이 겪는 환상통처럼. 그(그녀)에 대한 마음은 이미 부서졌는데 부서지기 전보다 더 확실한 존재감을 풍긴다. 그러니까 너무 아프다고.
우리는 영원을 살 것처럼 사랑하고 오늘만 살 것처럼 이별한다.
어차피 모든 만남은 이별로 완성된다. 지금 헤어지지 않고 백년해로한다고 해도 우리는 결국 죽음으로 이별한다. 우리는 영원을 살 것처럼 사랑하고 오늘만 살 것처럼 이별한다. 나는 당신에게 어떤 상처였을까. 나는 당신에게 어떤 오답이었을까. 나는 당신에게 조금의 위안과 도움이라도 되었을까. 뜨거웠던 사랑보다는 미지근했던 것들이 언제나 기억에는 조금 더 오래 남았다. 나만 알고 있는 사소한 버릇. 몸의 은밀한 특징. 그리고 글로 옮기기조차 애매한 작은 배려와 행동들 말이다. 좁지만 나라는 집이라도 행복하게 여겼을 당신을 떠올려본다. 내가 아팠던 것만큼 당신도 아프길 바랐지만, 아니 사실 그보다는 손톱만큼 더 아프길 바랐지만. 거기 흉은 지지 않았길 그 시절에 나는 간곡히 바랐더랬다.
사랑했던 모든 기억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에 체화體化되는 것이다. 당신과의 지나간 사랑은 내 마음에 담겨 나와 함께 더 멀리 나아간다. 모든 만남은 이별로 귀결되지만, 그러니까 완벽한 이별이란 없다는 말이다. 브레이크를 콱 밟고 있던 우리가 페달에서 발을 떼고, 저 긴 해안도로를 자유롭게 내달리는 날이 오길. 그리고 한때 나의 세상이었던 그들과 그녀들에게. 사랑과 평화가 있길! 오늘은 그렇게 어설픈 기도 비슷한 행동이라도 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