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소년은 팔을 길게 뻗어 손가락으로 저편을 가리켰다. 축축하고 진한 어둠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골목이었다. 당장 들어가면 이름조차 사라질 것 같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니? 나는 수첩을 펴고 볼펜을 꺼냈다. 비가 내려서 쓰지도 않은 것이 벌써부터 젖은 채였다. 무슨 일이야? 한번 더 묻자 소년이 답했다. 아무 말도 안 했지만 그게 다였어요. 그뿐이었다고요. 소년은 여전히 골목의 어둠을 가리킨 채였다. 그리고 나는 곧 내가 천천히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품속에 권총 손잡이를 세게 잡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될 게 없을 것이다. 뒤를 돌아봤을 때 소년은 여전히 팔을 뻗은 채였다. 다른 사람이 봤다면 소년이 나를 가리키는 줄 알 것이다. 나는 한 번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어둠의 아가리에 빨려들 듯 집어삼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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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식탁에 텅 빈 접시를 올려두고, 비로소 나와 마주 앉는 밤.
밤이 되면 누구나 생각이 많아진다. 누군가에게 아픈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다. 그것은 좋은 것일 수도, 나쁜 것일 수도 있다. 되도록 좋은 영향을 주고 싶지만 그렇게 쉬울 리가 없다. 내가 하는 작은 행동, 사소한 어투, 대수롭지 않은 말들이 어떤 이에게 영감을, 불만을, 응원을, 증오를, 사랑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밤이 되면 나는 하루의 일을 한 번 복기하곤 한다. 오늘은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그나마 최대한 내 팔꿈치가 당신을 아프게 하지 않았길 바랄 뿐이다
밤이 되면 배가 고프다. 음식 때문만은 아니다. 입을 다물고 있었던 하루치의 말들, 씹지 못한 감정들, 삼키지 못한 표정들이 입안에서 부풀어 오른다. 그것에 대한 감정은 거의 대부분 후회일 수밖에 없다. 이불 킥!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났겠는가. 인간은 고독한 동물이다.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상대에게조차 하지 못할 말이란 것은 생기기 마련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만 몸을 뒤척여도 인과는 흐른다. 그것은 어찌 보면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나마 최대한 내 팔꿈치가 당신을 아프게 하지 않았길 바랄 뿐이다.
어떤 밤에는 텅 빈 식탁에 앉아 말의 껍질을 벗기고 감정의 뼈를 추려낸다. 누군가에게 하지 못한 말들은 차갑게 식어있다. 나는 젓가락질하듯 조심스레 그 말을 집어 들고, 입으로 집어넣는다. 거북하기 그지없지만 하지 못한 말은 체하듯 몸에 쌓이는 법이다. 그것은 마음의 병이 된다. 바늘로 손가락을 아무리 따도 시커먼 피도 흐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되도록 뱉어내는 편이다. 어렸을 적에는 내가 아프기 싫어서 상대방 생각은 하지 않고 마구 쏟아낸 적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것도 어렵다. 나이 듦의 고단함은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데 있다. 내가 이렇게 아픈데 저 사람이라고 괜찮겠냐 이 말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꼬리를 물고 있는 거대한 원이다
어둠은 오래된 음식 같다. 버리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한 채 냉장고 안에서 이따금 존재를 알리는. 아무도 없는 식탁에 앉아 어둠을 먹는다는 건 어쩌면 기억을 씹는 일인지도 모른다. 갈 때까지 갔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은 필요하다. 그것은 어쩌면 시간을 소화시키는 행위일 수도 있다. 인간은 고독한 존재란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고독이 필요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 고독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신과 만난다. 그 대면은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지만, 꼭 필요한 시간이다. 내 안에 쌓인 말들이 왜 아픈 것인지 드디어 물어볼 기회이기 때문이다. 내가 피해자인 줄 알았지만 날 향해 가리키는 저 손가락은 '아니, 당신도 내게는 가해자였어' 하는 신호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꼬리를 물고 있는 거대한 원이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어둠에 집어삼켜진다.
어제도 나는 야식을 먹었다. 야식은 몸에 해롭다. 하지만 해롭기 때문에 먹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떻게 몸에 좋은 것만 먹으며 살아 그치?' 그런 얄팍한 합리화도 해보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야식은 치유라고 생각한다. 퇴근 후 짧게 치맥이라도 하지 않으면 허기가 져서 숨 쉴 수도 없다. 마음이 허하니 육체에라도 뭘 자꾸 욱여넣게 되는 것이다. 슬프다. 하지만 슬픈 만큼 맛이 있다. 그리고 배가 차면 맛있었던 것만큼 우울해지고 만다. 부른 배를 부여잡고 술기운에 '내일아 오지 마라' 하고 잠이 드는 것. 그렇게 오늘 하루도 간다. 오늘의 나는 야식 대신 어둠 한 대접을 끓여서 우걱우걱 먹는다. 무엇을 넣었는지도 모르겠다. 두서는 없지만 아픔의 미각은 진실하다. 숟가락을 뒤적이다가 어떤 이름을 입에 먹고, 젓가락으로 추운 겨울날 잡았던 손의 온기도 뒤적여 본다. 하나의 위안이 있다면 지금 나만 이러고 있는 것은 아닐 거라는 것.
다만 깊은 밤에는 누군가와의 시간 하나쯤은 사탕처럼 입에 넣어놓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