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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집 Mar 03. 2023

학교를 가랬더니, 왜 장례식장에 가 있니?

아침에 아이가 버스를 탔다고 문자를 했다. 오늘은 아이의 입학식이었다. 

최근에는 중학교 입학식에 부모들이 참여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라 아이 저 혼자 학교에 보냈다.

버스를 타 볼 일이 없었던지라 버스 타는 연습을 시킨다고 어제 혼자 버스를 태워 학교에서 내리는 연습도 시켰더랬다. 혹시나 아이를 데려다주게 된다면 출근해야 하는 나의 동선은 어떻게 되는가 시뮬레이션도 다 해보았다. 

그런데, 아침에 시간 맞춰 버스를 탄 아이는 8시 55분에 전화가 와선 말한다.



“엄마, 학교가 계속 안 나와, 여기 장례식장이야.”     



난 학교에 가라고 했더니 왜 장례식장에 아이가 가 있나. 


아이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가도 가도 학교가 나오지 않아 차에서 일단 내렸는데, 도서관이 나왔다고 한다. 도서관에서 내비게이션을 켜고 학교를 향해 걷고 또 걸었는데, 결국 장례식장이 나왔고, 이렇게 잘못된 길을 계속 갈 수가 없어서 전화했다고 한다.

아이의 전화를 받은 시간 난 이미 출근한 뒤였고, 출근 지문을 찍자마자 직원들에게 한 시간 외출하겠다며 결재를 부탁하고 눈썹이 휘날려라 차로 달려갔다.


아이를 데리러 장례식장 주차장으로 간 나는 기가 막혀 아이에게 싫은 소리도 할 수 없었다. 입학 첫날 지각을 했다는 사실에, 낯선 곳에 혼자서 엄마를 기다린다는 두려움에, 버스를 혼자 타고 움직이면서 내내 불안했을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내 고등학교 입학 날이 생각이 났다.


나도 버스를 타는 데에 익숙지 않은 아이였다. 오리엔테이션 때엔 참석하지 못했기에 학교의 위치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이었다. 입학 첫날 무사히 버스를 탔다.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여럿 보였다. 



‘저 친구들이 내릴 때 같이 내리면 되겠다.’     



나는 같은 교복을 입은 친구들이 내리기만을 기다렸고, 당시 버스 시스템은 지금처럼 안내방송을 친절하게 해주지도 않았다. 그렇게 내내 버스를 타고 가던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서는 안 되는 학교의 위치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보다 먼 곳의 학교였다. 그제야 주섬주섬 내릴 준비를 하며 기사 아저씨에게 학교 이름을 말하며 지나왔냐고 물었는데, 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너네들, 신입생이냐, 그 학교 조금 전에 지나왔쪄” 이러신다.



학교 교복을 뻔히 알고 계신 기사님이 한마디 해줄 수는 없었을까. 

입학식 날이었는데, 신입생들이 탄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텐데, 어리바리한 아이들이 바싹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을 텐데, 한참을 지나서야 학교를 지나왔다고 말하다니.


나와 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은 버스에서 내려 터덜터덜 학교를 향해 함께 걸었다.

서로 눈치를 보며, 학교의 위치를 검색할만한 인터넷지도도 당시에는 없었다. 그저 짐작만으로 이곳이겠지 하며 터덜터덜.

늦은 등교에 선생님은 교과서를 나르라는 벌을 내렸고, 덕분에 그날의 추억은 방울방울 내 기억에 착 달라붙었다.     


오늘 입학식에 늦은 아이의 기억에도 추억이 방울방울 달라붙겠지 생각하면, 나는 신이 난다.

아무렇지도 않게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것보단, 그래도 자신만의 삶의 기억을 만들어가는 것.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가. 


다행히 아이는 오늘 울지 않았다. 다 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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