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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집 Mar 04. 2023

아버지의 여행은 계속 되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꿈꾼다.

저마다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면서 자율적으로 살아가길 희망한다.


내 아버지가 나에게 어린 시절 추천해주시던 시 중에는 롱펠로의 “인생 예찬”이라는 시가 있다.     


“세상은 드넓은 싸움터, 인생의 노영에서 길을 잃고 쫓기는 짐승처럼 되지 말고 언제나 싸움에 이기는 영웅이 되라”는 구절을 들려주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귀에 선하다.

딸은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셨을까?     


대학 시절에도 늘 아버지는 내게 국내건 해외건 가리지 말고 여행을 가라 했다. 배낭을 메고 세상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라고 배가본드처럼, 왜 젊음과 건강과 시간이 있을 때 빛나는 시간을 즐기지 않느냐고.      

아버지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여행계획을 잡은 적이 있다. 여행 일이 임박해서야 아버지는 일이 있어 갈 수 없다며 나 혼자 여행을 떠나라 하셨다. 여행의 참맛은 혼자 갔을 때 즐길 수 있다면서 말이다. 20대의 딸을 혼자 해외로 나가라고 보내는 아버지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처럼 혼자 가니 모든 것이 새로웠다. 전에 이미 맺은 관계 속에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완벽하게 미지의 세계를 살피는 여행이 되었다.     


아버지가 이토록 자유를 원하는 이면에 무엇이 있을까 늘 궁금했다. 아버지 스스로는 자유의 결핍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늘 가족과의 관계를 우선시하시던 분이고, 술이나 담배, 바깥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분이었다.     

취미생활은 음악을 듣고 독서를 하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다니는 것뿐. 그 이외에는 매일의 일상이 안정되어 있었다. 그런 일상을 만들기 위해 아버지가 늘 노력해왔다는 것을 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왔다. 다섯 남매 중 첫째로 태어나 큰 사랑을 받았지만, 그만큼 많은 책임을 져야만 했다. 그 무게는 수십 년 동안 그의 어깨를 짓눌렀고, 눌린 무게만큼이나 숨 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환갑 이후 오랫동안 해오던 인조목 사업장을 조금씩 정리해 나가면서 아버지는 짧게, 길게, 혹은 몇 달씩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함께 여행을 다니다가 휴양이 아닌, 오지로는 아버지 혼자 다녔다.     


인도로, 이집트로, 히말라야로, 아프리카로, 마추픽추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아버지가 즐거워 보였고, 부러웠지만 한편으론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가 다녀온 여행에 대한 흥미도 점점 떨어졌다. 사진을 보아도 함께한 시간이 아니니 재미가 없었고, 이야기를 듣자니 우리에게도 다른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먹이고, 키우고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던 내겐 여행의 이야기를 들을 여유가 없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평생의 소원을 이루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도 아이들의 눈빛을 촘촘히 찍어온 아버지의 사진들. 세계 곳곳에서 홀로 서 있던 아버지의 얼굴에 빛나던 감정들, 그것들을 왜 난 그때 제대로 함께해주지 않았을까.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것은 2016년 12월이었다. 아무런 전조 증상 없이. 그저 부정맥으로 심장이 살짝 좋지 않아 컨디션이 나쁘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잠든 이후 하품만 하다가 깨어나지 못하는 아버지를 어머니가 119를 불러 병원으로 갔고, 며칠 동안을 중환자실에 있었다. 

골든타임을 넘기지 않았음에도, 꼬인 혈관 때문에 중간뇌 쪽에 손상을 입어 얼마 동안은 환각과 애매한 인지 속에서 헤맸다.


아버지는 무언가를 삼키는 것부터 다시 배워나가야 했다. 매일같이 해오던 음식을 삼킴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은 생존에도 문제가 생긴다는 뜻이었다.      

왼쪽 편마비가 오긴 했지만, 힘들고 긴 시간을 지나 안정이 되면서 병원은 아버지의 취미 장소가 되었다. 70대 할아버지가 패드와 노트북을 가지고 유튜브며 음악이며 위성사진을 보는 모습은 흔하지는 않으리라. 


2년 만에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매일 아버지는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다 식사하고 잠을 자는 똑같은 일상을 지루하게 채웠다. 늘 의욕적이고 창의적이던 아버지의 모습을 잃은 것 같아 마음 한쪽이 내내 시렸지만, 내게도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있기에 마음만큼 정성을 다하지 못했다.     


우리가 태어나고 제주라는 낯선 공간에서 삶을 꾸리기 시작한 이후 아버지는 매일 바빴다. 아이 셋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상 아버지는 그 이름을 되돌릴 수도, 취소할 수도 없었다. 묵묵히 그 역할을 해내기 위해 앞만 바라보고 사셨을 것이다. 그렇게 바쁜 일상 속에서도 우리 가족에게는 일요일의 여행이 묵약 되어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일요일만큼은 제주 곳곳의 관광지와 산과 오름과 바다를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자가용도 없던 시절 미리 정한 곳 없이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즉흥적으로 정하는 여행 장소는 꽤 재미있는 놀이이기도 했다. 지금도 생각나는 일요일의 나날은 내게는 늘 행복한 감정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의 여행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어린 시절 우리 세 자매를 이끌고 일요일마다 제주의 곳곳을 다녔던 아버지처럼, 나도 이젠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다닐 수 있다. 한곳에 머물러 가라앉지 않도록 함께하는 여행을 아이들과 계획해 본다. 일상에 묶여 가 보지 못했던 제주 전역에는 해외보다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다. 그러니 우리가 함께 갈 곳도 많을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여행이 우리 아이들을 기르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봄꽃이 피는 바깥으로 아이들과 함께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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