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에 대한 기억이 오래가는 이유는 시각, 촉각, 미각, 후각, 청각 모두를 충족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만들어두신 차가운 식혜를 겨울 베란다에서 살얼음까지 국자로 떠서 밥알과 함께 꿀떡 삼키면 입안 가득 차갑고 달콤한 맛과 특유의 향이 느껴지고, 이가 시려오는 차가운 느낌에 순간적으로 오소소 닭살이 돋기도 했었다. 그러면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읽던 책을 다시 넘기며 한입 한입 아껴마시곤 했다. 내 기억속에서 할머니의 식혜는 늘 재생된다.
믹스커피에 맥심 알커피를 한 숟갈 넣고, 설탕도 한 숟갈 추가해 진하게 마시던 아빠의 커피.
맨밥에 고추장 한스푼과 버터 한 스푼을 넣어 전자렌지에 잠깐 돌려 비벼서 김에 싸먹던 아빠의 김꼬밥.
늘 퓨전에 도전하던 아빠의 음식들 덕분에 알게모르게 어떤 형태의 창의성을 쌓게되었고 때로는 무모한 도전을 나는 할 수 있었다.
문득 한번씩 떠오르는 음식들 중엔 이러한 추억이 담긴 것들이 많다.
살아오면서 뇌리에 남은 어떤 음식의 순간들, 각인된 맛과 그날의 분위기, 함께한 사람들을 떠올리면 음식이 갖고 있는 어떤 정체성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된다.
'밥정'이라는 말을 왜 쓰는지, 왜 만날 때마다 '밥은 먹었냐'고 묻는지.
그 안에 담긴 숨은 의미는 '너 잘 지내니?' 이겠지.
추억의 음식을 떠올리는 이 순간,
나 또한 잘 지내고 싶어서 그 음식들을 떠올리는 것일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