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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집 Sep 26. 2024

나의 간헐적 친구들


내 삶은 언제나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가족, 동료, 그리고 오랫동안 곁에 있는 친구들.

하지만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이들과는 또 다른, 특별한 의미로 나의 삶에 깊은 자취를 남긴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어쩌면 매일 곁에 있는 이들보다 더 깊은 마음의 흔적을 남긴다. 바로 ‘간헐적 친구들’이다. 우연처럼 찾아와, 짧은 순간을 공유했지만, 그들이 남긴 흔적은 내 인생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사람들.     


첫 번째 간헐적 친구는 유럽여행에서 만난 백00언니였다. 가족과 떠난 패키지여행에서 나는 함께 또 혼자와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기차 안에서, 낯선 도시의 한복판에서 나를 에워싼 미래에 관한 불안감은 생각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그때 보름 정도를 함께 여행하며 나눈 언니와의 대화는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 여행을 통해 언니와 인연을 맺었고, 그 실낱같은 인연은 여전히 우리의 삶을 이어주고 있다. 당시 나누었던 우리의 감정이 서로를 이끌었기 때문이리라.


언니는 말했다. “여행이란 결국,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야. 다른 사람을 만나지만, 결국 너 자신을 만나는 거지. 그 사람을 기다리지 마” 그 한 마디는 내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언니는 이후로도 내게는 스스로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만들어준 척도같은 사람이었다. 언니가 결혼을 하면서 신혼여행을 내가 있는 곳으로 오고, 이후로도 언니가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갈 때마다 아주 잠깐이라도 만나려 노력했던 것은 자주 만나지 않아도 나를 제대로 보고 있는 사람이어서, 내가 매일 보던 사람들보다도 깊은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준 중요한 존재여서였다.     



두 번째로 떠오르는 친구는 Paper라는 잡지를 통해 만난 남0이다. 그 잡지에는 박00이라는 여행사진작가가 글을 싣고 있었는데, 그 사람의 시각과 글을 20대의 난 참 좋아했었다. 그의 글을 보다가 그 사람이 운영하는 퍼스널 페이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사진에 댓글을 남기곤 했었는데, 나와 비슷한 눈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몇 년 함께 댓글로 이야기를 나누다 만나자고 얘기가 되었고, 그 친구는 우리집에 와서 며칠을 머물렀다.


이후엔 다른 지역으로 여행도 갔고, 진짜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와 함께 그 사진작가도 만났다. 당신 덕분에 우리가 친구가 되었다며 대단한 인연 아니겠냐고. 그 친구와는 아직도 가끔 연락을 한다. 벌써 20년이 훌쩍 넘은 30년에 가까운 인연이다. 비록 그 사진작가와의 연락은 끊겼지만.     



다른 친구는 어학원 수업을 같이 들었던 J라는 친구다. 당시 워킹홀리데이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친한 친구와 나는 호주를 가자며 어학원을 다녔다. 강의실에서 함께 수업을 들었던 J는 두달여 같이 보냈는데, 이 친구는 먼저 호주로 떠났다. 우리도 당연히 그 뒤를 이어 떠날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떠나지 못했다. 그 친구는 비행기표를 보내줄테니 얼른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라고 했는데, 그때 그곳으로 갔으면 나의 인생은 좀 달라졌을까.


그 친구와는 뭔가 타이밍이 맞지 않는 관계여서 너무 좋기도, 너무 아쉽기도 했다. 살면서 그만큼 나라는 사람을 잘 알아준 친구가 흔치 않았으니까. 그 친구가 호주에서 돌아와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를 소개해줬을 때 그 친구는 내게 말했다. “저 사람이 너라는 사람을 알고는 있니?” 그 한마디에 헤어질 결심을 실행에 옮긴 것도 사실이다. 남자친구는 나라는 사람을 너무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그래서 늘 불편해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한 마디로 깨닫게 해줬으니까.      



이렇게 나의 '간헐적 친구들'은 내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고, 그들의 존재는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우리는 자주 만나지 않고, 매일 연락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 남긴 감정은 마치 나무의 뿌리처럼 깊이 박혀 있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진한 감정을 나누고, 그들의 어떤 말들은 나의 삶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해주었다.     


간헐적 친구들은 나에게 일상에서 벗어난 특별한 순간들을 선물해주었다. 그들과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과 감정은 오랜 시간 내 삶을 비추고 있다. 그들은 나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내 삶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우리는 가끔 만나지만, 그 짧은 만남 속에서도 서로의 삶에 관여하고 있다. 간헐적 친구들이 내 삶에 남긴 발자취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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