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덧없는 존재의 미묘함

프란시스 잠 [고통을 사랑하기 위한 기도]

by 겨울집

내게는 고통밖에 없습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고통은 내게 충실했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내 영혼이 심연의 바닥을 헤맬 때에도

고통은 늘 곁에 앉아 나를 지켜주었으니 어떻게 고통을 원망하겠습니까

아 고통이여, 너는 결코 내게서 떠나지 않겠기에

나는 마침내 너를 존경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이제 너를 알겠다

너는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아름답다는 것을

너는 가난한 내 마음의 화롯가를 결코 떠나지 않았던 사람을 닮았다

나의 고통이여, 너는 더없이 사랑하는 여인보다 다정하다

나는 알고있나니 내가 죽음의 자리에 드는 날에도

너는 내 마음 속으로 깊이 들어와

나와 함께 가지런히 누우리라


프랑시스 잠 - 고통을 사랑하기 위한 기도




모든 것이 고요히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산다.

하루하루 일상의 고통이 무덤덤하게 내게 스며들기를 바라며 산다.

그리하여 내 존재가 타인의 고통안에 다가가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게 띠엄띠엄 데면데면하게

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면

본 것도 못 본 척 할 수 있고

아는 것도 모르는 척 할 수 있고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수도

어디에서나 드러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


그래도 살아있으려 하는 것은

고통과 함께 지내려 하는 것은


존재를 부정하지 않겠다는 몸부림.


아등바등 살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것들이

무상해지는 시간.

덧없음 안에서 다시 또 제자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