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우리 얼’ 문화유산 발굴 국민공모 당선작
예부터 사람들은 물이 있는 곳에 정착하여 살아왔다. 사람의 삶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물을 나누며 살아간다는 것은 생명을 나누는 것과 같다.
예전에는 마을이 함께 쓰는 공동우물이 있었고, 펌프도 있었다. 마중물을 붓고 열심히 펌프질을 하면 비로소 솟아오르던 물의 신비함을 우리는 경험한 바가 있다.
현재는 각 가정에 상수도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만, 물을 공동으로 쓴다는 점은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전만큼 이웃이나 공동체의 일에 많은 관심을 쏟지 않는다. 공동우물과 펌프를 통해 끌어올리던 소중한 물에 담긴 공동체문화를 다시 되살려 함께 살아가는 의식운동을 해보면 어떨까한다.
우리나라는 영국, 남아공 등 11개국과 함께 유엔에서 정한 ‘물 부족 국가’다. 연간 강수량이 1,277㎜ 정도로 세계 평균 강수량 807㎜보다 많지만, 강수량의 2/3가 여름철 장마기에 집중되고 동고서저의 산악지형을 하고 있어 하천물이 빠르게 강이나 바다로 흘러 유실되는 까닭에 봄가을에 가뭄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는데, 산이 많고 비가 많이 오는 편이라 지하수가 샘솟아 우물을 만들기 좋은 조건이었다.
과거 식수와 생활용수의 대부분은 우물에 의지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우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청동기 시대 유적인 대구 동천동과 논산 마전리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 삼국시대와 그 이후에 만들어진 우물은 곳곳에서 많이 발견되어 우물문화의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물은 먹고, 씻는 등의 기본 생활과 함께 농업, 목축 등의 생산활동에서도 꼭 필요하다. 때문에 우물은 마을과 도시의 중심터에 자리하면서 사람들의 삶과 함께 했다.
어린 시절 외갓집에 가면 우물 옆에 작은 펌프가 있었고, 마중물을 담아 힘차게 펌프질을 하던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땅속 깊은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깨끗한 마중물 한 바가지가 얼마나 소중한지 설명하시던 모습도 선명하다.
이모를 따라 빨래거리를 들고 마을 공동우물로 가면, 동네 어른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며 빨래를 하고 계셨다. 간혹 어린 아이 혼자 빨래거리를 들고 오면 대신 빨아주기도 하고 집안 살림은 어떤지, 뭘 먹고 지냈는지, 학교생활은 어땠는지, 부모님 건강은 어떠한지 세심하게 살피던 따뜻하고 자상한 목소리도 기억에 남는다. 우물이라는 공간은 동네사람들의 소통공간이자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지혜를 모으는 공간이었던 셈이다.
그런 소중한 우물은 20세기 이후 상수도의 보급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각 가정마다 수도가 설치되어 있기에 우물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이 만나 물자를 교환하고 정보를 주고받으며 마을의 중심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현재 우리는 아파트나 빌라와 같은 공동주택에 살면서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채 살고 있다. 간혹 복도에서 마주치면 어색한 인사는 하지만, 함께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계기가 없기에 몇 년째 인사만 하고 지내는 이웃도 많다. 교류가 없으니 이사를 가도 별달리 아쉽지도 않고 누가 이사를 오든 크게 개의치 않는다. 각자의 삶이 아무리 바쁘고 각박하다지만, 과연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이런 시점에 우물에 담긴 공동체문화를 다시 되살려 우리가 살아가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우리의 삶터에 마련하는 것은 매우 유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물을 상징하는 마을주민, 아파트주민들의 휴식공간을 만들어 ‘독거노인 도우미, 소년소녀가장 돕기, 다문화가정 언니 되기’와 같은 자원봉사 프로그램이나 목공예, 요리, 뜨개질 등 무언가를 배우는 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배우고 만든 작품들을 다시 필요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도록 하면, 옛시절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던 이웃들의 자상한 목소리가 다시 복원될 수 있을 듯하다. 이러한 만남들이 마중물이 되어 지속적으로 지역의 다른 이웃들을 도울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세계 속으로 우물의 정신문화도 함께 퍼져나가지 않을까.
<2015년 문화재청에서 주관한 '우리 얼' 문화유산 발굴 국민제안 공모 당선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