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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집 Mar 28. 2023

우리에게 황도 통조림이 주는 위로

스스로 헤쳐가는 방법

  

어릴 적 아빠는 아이들이 아프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황도 통조림을 딱! 하고 까셨다.


아플 때는 기분 좋은 향이 나는 복숭아 통조림의 과즙과 달달한 국물이 아픔을 씻게 해준다며, 먹기 싫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우리에게 포크로 콕 찍어 입에 넣어주셨다.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위로가 필요한데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할 때도, 표정만 보고선 ‘저기 가서 황도 하나 꺼내 온나’하던 아빠의 음성이 아직도 귓가에 맴맴 돈다.      


아이의 학교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어 선생님과 통화를 했더랬다.

가만히 있는 아이에게 장난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놀림이라는, 폭력이라는 행위를 했던 아이들을 ‘어떻게 처리할까요?’라고 묻는 선생님의 말씀은 내게 사건의 해결보다 사건의 확장을 막아달라는 요청 같아 보였다.


선생님께는 아이들의 장난이 아이의 신변에 위협이 된다면 접근을 말아달라 요청하고, 친하게 지내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말했다.


지속해서 악의적인 행위를 반복해서 당한 아이가 상대의 사과를 기꺼이 받아냈던 것은 그것으로 끝을 내고 싶은 마음이지 용서해서가 아니다.     



오늘은 아이에게 황도를 얼음에 넣고 시원하게 만들어 먹으라고 주었다.

아이는 그 달달한 국물과 복숭아 과즙을 맛있게 씹으며, 도란도란 사건의 바깥 얘기를 한다.


사건의 핵심을 이야기하기 싫은 아이의 마음을 나도 알겠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고개를 돌린다고 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본인이 해결해야 할 일이다.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일이다.


이것을 선생님이나 부모의 손으로 해결하는 것은 아이의 성장이나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저 지켜볼 뿐이다.


스스로 헤쳐가는 방법을 온전히 찾도록,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복숭아를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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