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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집 Feb 18. 2023

제주 옛 골목을 헤매며 나를 찾다

어느 날 나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에 초점을 맞출 때 한 번씩 옛 생각이 난다. 

나는 무엇을 좋아했었지? 내가 가고 싶은 길은 어디였지? 나는 왜 이곳 제주에 발붙이고 있는 것이지? 

우리는 누구나 가장 즐겁고 행복한 삶을 ‘현재’ 누리며 살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다. 그렇다면 이곳 제주에서 나는 어디에서 가장 편안한가? 내가 원한 이곳에서 정말 행복한가?     


언제부턴가 오래된 것들이 주는 위로를 찾아 움직였다. 집 안을 채우고 있는 것들,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들. 결혼할 때 사서 쓰기 시작한 책상, 주걱, 그릇, 숟가락, 재봉틀 같은 것들. 오랜 시간 함께 있다 보니 쉽게 버리지도 못하고, 사용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고장 나지도 않는 그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정과 손길이 묻은 것들이어서 쉽게 처분할 수도 없는 것들. 그러나 그것들이 주는 위로가 그저 오랫동안 익숙해져서 느끼는 것이 다일까?     



I 그래서 제주의 골목을 헤매기 시작했다. I


익숙한 길, 낯선 길, 가보지 않은 길, 막힌 길.

그 어느 골목이라도 새로운 기분을 내게 만들어 주었다. 

익숙한 길은 약속된 아늑함으로, 낯선 길은 새로운 돌파구가 나올 것 같은 설렘으로, 가보지 않은 길은 다시 알게 되는 길로, 막힌 길은 다른 길을 찾는 계기로 말이다.     


골목골목 오래된 길을 헤매는 날.

나를 위로해주는 제주의 옛 골목들은 돌담 사이로 내 지나온 길들을 다시 걸어보게 만든다.

나의 선택이 최선이었을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과연 이 지점에서 숨을 쉴 수 있었을까.      


작은 골목을 지나가려면 큰길을 포기해야 한다. 

빠르고 평탄한 길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좁고 작은 돌무더기가 뿌려진 좁은 골목은 사람들을 반기지 않지만, 호젓함을 느끼며 천천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골목골목에 스며있는 제주다운 것들을 찬찬히 둘러보다 보면, 마음 한켠에 ‘우와, 제주다’ 하는 마음이 저도 모르게 끓어 나온다. 매서운 바람이 통과하는 돌담과 눈이 소복이 쌓인 아무도 걷지 않은 길, 말라붙은 나뭇가지와 쨍한 하늘과 덩그런 구름이 공존하는 길. 그 길을 걷는 나는 아무 생각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I 그 어느 곳에서도 함께할 수 없었던 나와의 시간을 제주 옛 골목을 걸으면서 찾는다. I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무엇에 대해 관심이 있는지, 어떤 것을 위해 살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 그저 쫓겨 달리다 보면, 내가 걷고 있는 발밑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기쁨도, 고통도, 슬픔도 허무도, 회한도 모순도 느끼지 못하고, 묵묵히 살아내며 이렇게 매일 쳇바퀴를 돌듯 쫓겨 다니다 시나브로 시들어 죽어가는 것은 아닐까. 훅 불어오는 걱정을 저 멀리 떨치고.  

   

내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곁에 있는 것들을 알아차리고, 하나씩 하나씩 내 손에 꽉 쥔 것을 놓을 때 진짜 나의 모습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 스스로가 어떤 기운을 돋아 험한 겨울을 이겨낼 멋진 에너지로 성장하는 것.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제주 곳곳의 골목길을 걷고 또 걷고, 낯선 길을 찾아내는 기쁨을 얻고 또 얻고, 뚜벅뚜벅 제주의 오래된 길을 헤맨다. 나 스스로가 나를 찾을 날까지.     


거대해지고 강력해지고 확실해지는 대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존재, 손에 쥔 것들과 이별할 줄 아는 존재가 됨으로써 제주에 사는 이가 진정 누릴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얻는다. 차마 버리지 못했던 것들을 골목 곳곳에 슬슬 흩뿌리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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