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개소라횟집 우럭매운탕, 멋진만남 오리두루치기
지난주 외할머니가 92세의 나이로 소천하셨다.
몇 달 전 폐암 말기를 선고받고, 6개월 시한부라는 얘기를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생각보다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한편으론 연세가 있으시기에 딸 아들 집에서 차례로 머물다 요양병원에 들어간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오래 고생하며 앓지 않고, 하늘로 가신 것이 어떻게 보면 호상이다 싶다.
엄마와 이모들은 황망한 마음에 내내 힘들어했지만, 내 마음은 어느 순간 얼어버린 걸까.
한 세대를 건너뛴 것이 큰 것일까, 예전 할머니를 처음 보내던 마음처럼 감정이 치닫지는 않았다.
지난해 말 사촌 동생의 결혼식 때 할머니를 뵙고, 아이들을 보여줬던 것이 참 다행이다 싶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할머니의 장례를 치를 대전으로 향하는 동안, 내 마음은 어느 곳에서 머물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감기로 내내 기침과 가래가 끓고 있었고, 아이들을 맡길 곳도 없어서 함께 움직여야 했는데,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보지 못한 죄책감보다 아이들의 기침과 열이 더 걱정되었던 건 내게 이미 할머니를 보내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인가.
다행히 할머니는 당신의 자녀들이 병원으로 오는 동안 숨을 붙들고 계셨다고 했다. 서울에서 엄마가, 대구에서 막내 이모가, 대전에 사는 외삼촌이 도착하고, 마지막으로 큰이모가 부산에서 도착해서 할머니에게 “엄마”를 부르며 목놓아 우는 2~3분 그 사이에 세상의 끈을 놓았다. 자식들 모두를 만나고, 얼굴을 보고 나니 할 것 다 했다 싶으셨나 보다.
우리의 근거지가 아닌 곳에서 장례가 치러지다 보니 찾아오는 손님들은 가족 친지 말고는 외삼촌의 손님들 뿐. 조용하게 시간이 지나가고, 할머니는 은하수공원 봉안당에 모셨다.
대전에 간 김에 세종에 머무는 큰삼촌과 숙모, 고모의 얼굴을 보고 돌아왔고, 밤늦게 비행기를 타고 제주집으로 돌아와선 모두가 기침하며 혼곤하게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을 법도 한데, 할머니의 얼굴은 희미해졌다. 함께 찍은 사진도, 함께 지낸 시간도 아주 오래전 어린 시절의 몇 장면뿐이어서 나에게 각인된 외할머니와의 추억은 얼마 되지 않는다.
외할머니의 장례라서 밖으로는 부고를 따로 알리지 않았다. 사무실 사람들은 휴가를 내는 바람에 알게 되어서 다녀온 뒤 차례로 점심을 샀다.
봉개소라횟집의 우럭매운탕과 멋진 만남의 오리두루치기.
마음을 나누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밥으로 성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