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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숨 Dec 19. 2021

<박하사탕>, 고통스러운 개인의 사정

못 걷겠어요, 못 살겠어요



시간 순으로 가장 마지막 부분을 오프닝으로 삼는 영화들은 시작부터 관객들에게 과제를 하나 던져주는 셈이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 왜 일어났는지 이 영화를 끝까지 보며 알아내 줬으면 한다. '라는 의뢰를 감독이 던지는 것이라고 나는 언제나 생각해 왔다. 결말을 알려주고 시작하는 이유는, 저 결말이 탄생한 과정을 알아주길 바라기 때문이 아닌가. 영화 <파이트 클럽>이 그런 식이었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도 그렇게 시작한다. 건물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잭의 나레이션, 그리고 조제와 이별한 후 그 추억을 회상하는 쓰네오의 독백으로.


하지만 박하사탕엔 독백도 나레이션도 없다. 주인공의 마음을 주인공은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는다. 절대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그렇게 감성적이지 않기 때문에 배우 설경구는 표정과 대사, 그리고 행동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충분히 해내는 엄청난 역량을 보여준다. 20년 만에 이루어진 동호회 모임에 김영호(설경구 분)가 어딘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난입하는 것으로 이 영화는 시작한다.


다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영화는 시작과 끝이 비슷하다. 20년 세월이 지났다는 사실만 뺀다면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 이 영화의 머리와 꼬리를 담당한다. 윤순임과 함께 들꽃이 핀 강변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싶다'라고 이야기하던 김영호는 20년 후 철로 위에서 눈을 부릅뜨고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며 자살을 시도한다. 20년 세월이면 한 남자가 순정도 낭만도 목표도 잃고 죽음을 결심하기에 부족한 시간이 아니다.





한 남자가 죽음을 결심하는 20년 세월 동안 한국사는 격동의 시기를 맞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온 땅에 불어닥쳤던 피바람과 진동을 김영호도 느꼈고 그게 다양한 방식으로 김영호의 영혼을 부숴놓았음을 이 영화는 거꾸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 인물은 피해자와 가해자 둘 다의 위치에 한 번씩 올라 난도질 당한 적이 있다. 이 영화는 변명은 하고 있지 않지만, 어느 정도 변호는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영화의 초반을 보게 되면 김영호는 변명의 여지도 없는 쓰레기처럼 보인다. 죽기 위해서 총을 구했지만 혼자 가기는 싫어서 저승길의 동반자를 찾아다니질 않나, 전처의 집에 가서 강아지를 보고 싶어서 왔다고 구질구질한 변명을 늘어놓지를 않나, 정말 길바닥에서 스치기만 해도 불쾌할 것 같은 행동들만 일삼는 김영호에게 어느날 한 남자가 찾아와 윤순임을 기억하느냐고 묻는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의 마들렌처럼 김영호에게도 과거를 불러내는 맛이 있다. 그건 바로 20년 전, 그의 첫사랑 윤순임이 김영호에게 건네주었던 박하사탕이다. 이 영화는 실패한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 실패에 가담한 역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기찻길에 서서 돌아가고 싶다고 외치기 전, "다 됐는데! 우리 될 수 있었는데!"와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광인처럼 반복한다. 돌아갈 수 없어서 슬픈 것이 과거이고, 어느 드라마에서는 후회가 가장 지독한 지옥이라고도 하던데, 김영호는 그 두 개에 온 뇌와 심장을 속박당한 사람처럼 보인다. 나 돌아갈래, 외쳤으니 우리는 김영호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했던 순간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걸 알기 위해서 이 영화를 봐야만 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 여정에서 김영호라는 남자의 삶을 관통한 총알들의 모습도 엿볼 수가 있다. 


용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니 피해자는 다뤄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랑 이야기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역사 영화야? 물으면 그 또한 적절한 설명은 아닌 듯하다. 어떤 때에도 적극적이지 못했지만 세상의 풍파에 휩쓸려 피해를 보고 또 누군가를 해쳤던 남자에게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는 결정하기가 어려워진다. 연민? 동정? 분노? 비웃음? 어떤 것도 정당해 보이지만, 어떤 것도 정당하지 않아 보이는 것이 이 영화의 맹점인가 싶으면서도 그런 불확실함을 용납하기 힘든 마음이 공존한다.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그렇지만 도저히 답을 내릴 수 없고,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모두가 다른 대답을 하게 만드는 영화들이 있다. 이런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부를 수 있다면 박하사탕 또한 그 명예의 전당에 올라 마땅해 보인다. 나는 이런 영화를 두고 힘든 영화라고 부르는 편이다. 힘든 게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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